군대에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서울역에서 인력거나 끌며 살아가던 내가 본토인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겠는가? 나는 애당초 ‘나라 잃은 설움’ 같은 거랑 거리가 먼 놈이다. 나라만 되찾으면, 반상의 차별이, 귀천의 구별이 없어지나? 나 같은 놈이 바닥에서 기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내가 그날 마라톤 대회 시상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건, 나랑 친한 준식이가 실격으로 1등을 놓친 게 너무 분해 꼭지가 돌아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그게 전부였다.
걱정했던 것보다 훈련소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인력거 끄는 일에 비해 총 들고 훈련 받는 일이 덜 고된 데다, 끼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어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특히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군복이었다. 매일 일조 기상 뒤 연병장에 나서기 위해 군복을 착용한 뒤 종아리에 각반을 묶을 때면, 태어나서 내 몸뚱이가 이만큼 대접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허구한 날 땀내에 찌들고 꾀죄죄한 헝겊 쪼가리만 걸치고 다녔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모던보이 행세하던 부잣집 도련님들의 맞춤양복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각이 잘 잡힌 군복에는 나름 귀태가 흘렀다. 군복만 입고 있으면, 정말로 “대동아 건설을 위한 성전”에 나선 신민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대 배치를 받을 때도 천운이 따라준다고 생각했다. 몽골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만주 변방의 관동군 부대였다. 한창 전쟁 중인 중국 본토로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사소한 충돌이야 있겠지만 천하의 황군에게 몽골군 따위가 쉽사리 덤벼들지 못할 테니, 국경이나 지키면 되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는 이내 산산조각 났다. 부대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몽골군의 뒷배를 봐주던 소련군이 대규모 병력을 전진 배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고, 아니나 다를까, 사령부로부터 포위 섬멸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선제공격을 감행한 그날, 나는 처음으로 탱크라는 놈을 보았다. 두꺼운 쇠붙이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두꺼비 모양의 괴물, 그 괴물이 무리를 지어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아군 진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넋나간 시선으로 반격에 나선 적의 탱크들을 바라보면서, 지옥의 문이 열렸음을 직감했다. 얼마 뒤 나는 그 괴물들이 땅바닥에 남긴 바퀴 자국을 보았고, 탱크의 기관총이 난사해대는 탄환에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병사를 보았으며, 탱크에 깔려 하반신이 뭉개진 채 비명을 지르는 병사를 보았고, 몽골 기병대가 휘두르는 초승달 모양의 칼에 목이 날아간 병사를 보았다. 그 병사들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피에 굶주린 살상 기계들의 울부짖음만이 전장의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결국 아군 지휘관은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날의 전투 이후로 나는 대일본 제국이 천하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탱크와 대적하라고 내 손에 쥐어준 것은 고작 화염병이었다. “황군은 혼백이 되어서도 진격한다”는 말은 그 괴물, 소련의 탱크 앞에선 그저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