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으로 제주도에 서연의 집을 지은 것이 불과 1년여 전, 명필름이 이번엔 파주 출판단지에 학교와 미술관을 짓는다. 바닥 면적 1천평, 여기에 각각 200평 정도의 학교와 기숙사, 미술관, 사옥이 들어선다. 규모는 커졌지만, 결국 이번에도 집을 지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학교의 책임자인 명필름의 이은 대표가 “이번에 만들고 나면 정말이지 건축사업해도 될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인다. 학교와 미술관 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명필름 문화재단은 이미 지난 2006년 명필름이 파주 조합에 가입할 때부터 ‘명필름 20주년’이 되는 2015년에 맞추어 구상해온 사업이다. 파주 출판단지를 총괄한 승효상 건축가가 참여하고 이제 막 설계 시작 단계에 있다. 4층 건물 두동이 연결된 스케치 속 모습은 화려함보다 모던하고 소박한 인상을 풍긴다. 이곳을 통해 배출될 영화인과 작품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건 역시 명필름이 지난 17년간 남긴 한국 영화계의 발자취 때문일 것이다.
-문화재단 발표 기자간담회 파장이 컸다. 하루 동안 기사와 SNS에서 명필름의 결단에 대한 지지가 끊이질 않았다.
=평소 만나던 친구들이 칭찬을 해주니 약간 당황스러우면서 부담스러운 하루였다. (웃음) 곧 명필름이 20주년이 되는데 학교의 형태로 영화인과 후배가 함께하고, 미술관을 통해 관객과 함께 만나는 구도를 만들고 싶었다. 굉장히 예쁜 그림의 시스템이다. 다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걸 현실화하고 입증하는 게 목표다. 우리의 작은 시도가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면 더 좋은 일이 될 거다.
-문화재단의 주요 사업은 역시 영화학교다. 2년 과정의 기숙학교로 전액 무상으로 운용되는 꿈의 사관학교다.
=거창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시작은 공간이었다. 파주 조합에 가입하고 사옥을 구상하다보니 영화 만들고 사는 공간 외에 공간이 남게 되더라. 이 공간을 영화하는 후배들,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영화시장은 미국영화가 지배했는데 한국영화가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했다. 더 깊고 넓게 팔 필요가 있고, 그러자면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간 과장하자면 미래의 한국영화 전사를 키운다는 목표다. <300>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웃음) 300명이 2만명을 이기더라.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래서 학교에 들어오려면 체력부터 보고 뽑자고 했다.
-기존의 영화학교가 가진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하자는 의도도 있었을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제점보다는 좋은 점을 발견했다. 그간 학교와 일선 현장에서 배출한 좋은 영화 인력들이 많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이 대표적이다. 실력있는 젊은 영화인이 많으니 이들에게 조금만 뒷받침을 해주면 굉장히 도전적인 영화 인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출 2인, 다큐멘터리 연출 1인, 제작, 촬영, 편집, 미술, 사운드 등 주요 분야의 스탭을 포함해 한 기수에 총 20명의 학생이 배출된다. 학교가 가진 성격이 궁금하다.
=누굴 가르쳐서 세상에 내보낸다는 개념은 아니다. 그보다 좋은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쪽에 가깝다. 연출자의 경우, 내가 이 학교에 와서 어떤 졸업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 우린 그 계획을 심사하고 면접하고, 현실성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이 재단을 주도하는 나나 심재명씨 때문에 명필름의 작품과 비슷한 측면도 있겠지만, 선생님들의 색깔이 더해지면 달라질 거다.
-강사진은 아무래도 그간 명필름과 일해온 스탭들이 참여할 것 같은데, 어떻게 구성되나.
=전임교수와 전임조교가 상근을 하고 나머지는 객원교수들이 전공 분야별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류성희(미술), 김우형(촬영), 임재영(조명), 김상범(편집), 신재호(특수분장), 정도안(특수효과), 김석원(사운드) 등을 섭외 중이다. 희망사항이고 아직 협의를 해봐야 안다. 일선 현장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이 참여하게 될 것 같다.
-사재를 털었다. 차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재단 운용비를 충당하게 되는 건가.
=심재명씨와 5억여원을 투자했고, 내년 1차로 30억원 정도의 사재를 출연한다. 건물을 짓는 데 드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지, 1년에 20명이 먹고 자고 하는 비용이니 큰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운용비 마련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나와 심재명씨가 관객에게 사랑을 받아서 벌게 된 돈을 쓰는 방법이다. 앞으로도 명필름이 작품을 만들고 이익을 창출하니 그 돈을 다시 투자할 수 있다. 학교가 배출한 학생들의 졸업작품의 부가가치도 수익원이 될 수 있다. 또 지인들이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파주 단지에 들어오는 회사들이 작품을 만드는 데 지원할 수 있다. 촬영장비 대여라든지 후반작업이 지원되면 결국 적은 예산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일종의 산학연계 시스템이 되는 거다. 명필름이 그간 33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갖고 있는 노하우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파주에 들어가는 여러 장인들의 도움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졸업작품들도 이 노하우를 통해서 완성될 것 같다.
-영화학교 외에 미술관, <건축학개론>에 나온 ‘서연의 집’이 카페로 활용된다.
=미술관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지하에 예술영화 전용관이 들어가고, 카페 겸 공연 홀도 들어설 거다. 아울러 우리가 최종 믹싱으로 심사할 수 있는 활용도 검토 중이다.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는 좀 고민해봐야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서연의 집은 올레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카페 겸 영화의 기억들을 공유할 수 있는 갤러리로 활용할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파주를 중심으로 한 서북부 벨트와, 부산 지부, 제주도라는 세 거점이 생기게 된다. 파주는 본사와 사택까지 같이 있어 뼈를 묻는 마음으로 가는 거다. 부산 지사는 재단인가를 받으려면 전국에 지부가 세곳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이참에 지부를 내게 됐다. 지금까지 부산이 문화적인 측면에서 영화를 육성해왔다면 이제는 산업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2015년 개강이니 아직은 준비할 것도 많고, 지켜봐야 할 것들도 많이 남아 있다.
=아직은 준비가 덜 됐다. 따지고 보면 내년이나 그 뒤에 발표해도 된다. 미술관도 구체적인 게 없다고 말해야 하는 실정이니, 평소 명필름 성격으로 보자면 퍽 쑥스러운 발표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계획을 발표한 건 오로지 학교 때문이다. 내년에 학생들을 뽑아야 하니 일단 알려야 한다. 학생들이 미리 이 기사를 보고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준비할 시간을 줘야겠다 싶었다. 빨리 신호를 보내는 거다.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당장 준비할 이들에게 합격의 지침을 준다면.
=연출자의 경우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프로젝트의 현실성, 완성도를 보고 뽑게 되니까. 그외 스탭들은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눈여겨봤던 인재들이 학생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오랜 조수 생활을 한 이들이 영화계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려 한다. 졸업할 때까지 작품을 완성하는 일을 우리와 선생님들이 매진해서 도와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