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이 엠 샘>을 보고 나서 숀 펜이라는 배우가 앞으로 이보다 더 내 가슴을 아프게 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처럼 늘 진지하고 심오한 배우가 나를 웃길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고. <아버지를 위한 노래>에서 그 두 예감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쉰이 넘은 숀 펜- 솔직히 난 그가 예순도 넘은 줄 알았다- 은 파마머리에다가 립스틱을 바르는 늙은 로커로 변신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나를 울리고 웃겼다.
숀 펜이 연기한 셰이앤은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왕년의 록스타다. 아침에는 습관적으로 화장을 하고, 오후에는 무료한 얼굴로 벌어놓은 재산을 주식으로 불리며, 가끔 자신의 우울한 노래로 인해 자살했던 청년들의 묘소에 찾아가 속죄하며 시간을 보낸다. 음악과는 담을 쌓았음에도, 화려한 치장만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고, 영원히 나이 들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은근히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특이하고 애처롭지만, 그중 백미는 그가 늘 끌고 다니는 가방이었다.
도무지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장보러 가는 할머니들이 갖고 다닐 법한 카트를 늘 끌고 다닌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느라 집을 떠나온 뒤에는 여행 캐리어가 카트를 대신한다. 넝마주이도 아닌데 발견하는 쓰레기를 죄다 주워 모아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강박증 환자나, 누가 자기 물건을 빼앗아갈까봐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 정서불안 아동처럼 그는 늘 가방을 끌고 다닌다. 난 대체 그는 왜 가방을 놓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가방은 사람에게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가방만큼 오랜 시간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도 드물다. 옷은 매일 갈아입어도 가방은 웬만큼 멋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대개 들고 다니던 것을 항상 들고 다니기 쉽다. 책을 넣고 다니는 학생의 가방이든, 서류가 든 보험외판원의 가방이든, 각종 연장이 들어가 있는 인부의 가방이든, 가방은 마치 그들 몸의 일부처럼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주인을 닮아가기도 한다.
말하자면, 일 욕심이 많거나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은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에 이것저것 다 넣고 다니는 경향이 있고, 가방이 작고 그 안도 깔끔한 사람은 이상하게 여유롭고 인생이 심플하게 풀린다. 생뚱맞고, 우스꽝스러운 셰이앤의 카트와 캐리어는 과거에만 머물러 현실의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그의 쓸쓸한 인생을 너무나 잘 대변한다.
한번쯤 자신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면, 들고 다니는 가방의 면면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가방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 주인의 성격과 운명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 그렇다면 비우고 비워도 짐이 넘쳐 할머니용 카트는커녕 대형 손수레가 필요한 내 인생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