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인간의 눈은 테크놀로지의 진화에 적응할 것인가
2012-12-18
글 : 김성훈
48프레임을 사용한 HFR 시스템으로 제작된 <호빗: 뜻밖의 여정>이 미치는 영화산업의 변화
<호빗: 뜻밖의 여정>

“확실히 화질은 뛰어난 것 같다. 그런데 48프레임으로 구현된 피사체의 움직임이 낯설었다.” 12월10일 CGV왕십리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호빗>) 언론시사가 끝나자마자 상영관을 나온 업계 관계자들은 <호빗>으로 첫선을 보인 하이 프레임 레이트(High Frame Rate, 이하 HFR) 상영에 대한 관전평을 내놓기에 바빴다. 저마다 의견이 조금씩 달랐지만 위의 반응만큼은 공통적이었다. 알려진 대로 12월13일 개봉하는 피터 잭슨의 신작 <호빗>은 전세계 최초로 초당 48프레임으로 촬영됐고, 여섯 가지 버전(2D, 3D, HFR, 3D HFR, 3D HFR 아이맥스, 아이맥스 3D)으로 극장 개봉한다. 언론시사 때 공개된 버전은 3D HFR 아이맥스 상영 버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HFR 시스템은 일반영화에 비해 해상도가 월등히 뛰어났다. 호빗이 사는 마을, 원정대가 지나는 공간의 자연 풍경을 한데 담아낸 익스트림 롱숏이나 인서트컷 그리고 패닝숏은 더없이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HFR의 진면목은 정적인 장면보다 동적인 장면에서 더욱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의 초반부, 용 스마우그와 맞서는 난쟁이족의 전투를 비롯한 광대한 평원에서 펼쳐지는 오크족과의 추격전, 거대한 미로 같은 고블린의 동굴에서 벌어지는 전투,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크족과의 소나무숲 전투까지 카메라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전투 신은 격렬하되 부드러웠다. 골룸의 움직임 역시 부드럽고 리얼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3D에서 피사체의 움직임이 빠를 때 나타나는 번짐 현상과 깜빡임 현상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해상도가 뛰어나다보니 딥포커스숏(Deep Fous Shot,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에 상관없이 초점을 중앙에 맞춘 까닭에 화면의 모든 부분이 포커스가 맞춰진 숏) 같은 시각 정보량이 많은 숏은 여러 생각이 들게 했다. 호빗 빌보 배긴스의 작은 집에 10명이 넘는 난쟁이족과 간달프가 함께 모이는 영화의 초반부. 피터 잭슨은 몇개의 클로즈업숏을 제외하고 이 시퀀스의 대부분의 컷을 딥포커스로 촬영했다. 화면의 뒷부분이나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촛대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까닭에 시각 정보량이 그 어떤 시퀀스보다 많을 수밖에 없었고, 방대한 시각 정보량에 압도되다 보니 눈을 피사체에 둬야 할지, 배경에 둬야 할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본 사람마다 그 정도가 제각기 다르겠지만 그 어떤 장면보다 눈이 피로했던 시퀀스였다. 분명한 건 HFR 시스템이 일반영화에 비해 화질이 선명하고 움직임이 훨씬 부드러웠다는 것, 그간 사람의 눈이 24프레임에 맞춰진 까닭에 48프레임으로 촬영, 영사된 화면이 다소 낯설게 다가온 것이다.

60프레임으로 촬영하는 <아바타2>까지 염두해둔 극장 영사 시스템 업그레이드

48프레임으로 촬영한 <호빗>이 기존의 영화에 비해 화질이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설명하기 전에 프레임 레이트의 의미를 먼저 짚고 넘어가자. 프레임 레이트는 초당 사람의 눈에 보여지는 이미지의 숫자를 뜻한다. 보통 영화는 초당 24프레임이다. 물론 처음부터 24프레임이었던 건 아니다. 초기 영화사에서 사람들은 일정한 속도(최소한 초당 사진 10장 내지 12장 혹은 50장 그 이상)로 촬영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재현하려고 했다. 무성영화 시절이었던 1920년대, 초당 16프레임이라는 영사가 일반화됐다고는 하나 실제 상영 시의 속도는 16프레임과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초당 24프레임이 영사 관례로 자리잡게 된 건 일정하게 정해진 속도로 재생되어야 하는 동조 사운드트랙의 도입 이후, 그러니까 유성영화 시대가 열리면서부터다. 24프레임은 필름으로 촬영, 상영하던 시기에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제와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속도로 인식된 기준이 되었다.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48프레임으로 촬영한 영화가 보통 영화보다 화질이 좋고 피사체의 움직임이 부드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초당 이미지의 숫자가 보통 영화보다 두배나 많기 때문이다.

처음 선보이는 영사 시스템인 만큼 극장은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했다고 한다. HFR은 영사 시스템이 기존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CJ CGV 영사기술팀 엄우석 과장은 “48프레임을 소화할 수 있는 디지털 서버가 디지털 프로젝트 안에 새롭게 장착되어야 한다”며 “비용도 비용이지만 상영관마다 영사 환경이 다른 만큼 일일이 최적화된 설정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CGV의 영사 시스템 업그레이드는 단순히 <호빗>뿐만 아니라 60프레임으로 촬영한다는 <아바타2>까지 염두에 둔 극장 전체적인 업그레이드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호빗>을 수입/배급한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호빗> 상영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전국의 각 상영관에 전달, 점검했다”고.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국내 상영관에 요구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스크린의 크기가 가로 14m 이상이어야 하고, 스크린의 밝기가 4.5램버트(밝기의 cgs 단위) 안팎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스크린의 밝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밝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 조건만 충족되면 아이맥스 상영관이든, 일반 상영관이든 HFR 상영을 감상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배급팀 이정준 부장은 “현재 <호빗>의 HFR 상영을 확정한 국내 스크린은 워너가 정해둔 이 조건을 모두 통과한 극장”이라고 설명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호빗>의 HFR 상영관으로 전국 100여개의 극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HFR 상영 시스템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극장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관객이 여전히 많다. 그런 관객을 대신해 전문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호빗>은 꼭 아이맥스에서 봐야 하는 것일까. CGV 엄우석 과장은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달리 <호빗>은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작품이 아니”라며 “테스트 결과, 아이맥스에서 보든, 일반 상영관에서 보든 HFR 시스템을 감상하는 데 큰 차이는 없다”고 알려왔다. 그러니까 스크린의 크기가 HFR 감상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굳이 CGV상암이나 왕십리의 아이맥스관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HFR 시스템을 감상하기 위해서 어떤 극장을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관객의 의견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6가지 개봉 버전 중 HFR이라는 단어가 적힌 상영 버전을 예매하면 된다. 꼭 HFR 시스템로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객은 HFR, 3D HFR, 3D HFR 아이맥스 등 세 가지 상영 버전 중 취향에 맞게 골라보면 된다.

실제로 때려야 할 만큼 정교한 프로덕션이 필요한 48프레임 촬영

<호빗>의 48프레임 촬영 및 상영은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기존의 영화보다 화질이 좋고, 움직임이 보다 부드러워진 것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그게 향후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일단 두고 볼 일이다. 카메라의 프레임 설정만 바꾼다고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2월14일 롯데시네마 청량리에서 열린 ‘2012 영화기술 컨퍼런스’(주최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흥미로운 작품이 공개됐다. <소림사주방장2>(감독 이경식, 촬영 신경원)라는 작품인데, 초당 60프레임으로 촬영된 3D단편영화다(제작진은 리코필름 이춘영 대표가 사들인 HFR 3D용 카메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러닝타임이 26분이고, 총 컷 수가 656컷이다. 상업영화로 치면 3천컷이 넘는 액션영화다. 이경식 감독은 “디지털이라 프레임 레이프를 높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닌”데 “문제는 화질이 선명해지는 만큼 감독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피사체 뒤에 배치된 소품을 비롯한 화면에 드러나는 모든 것들이 정교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감독은 “처음에는 액션 합에 따라 연기 연출을 했는데, 그것이 연출이라는 게 카메라에 다 드러나더라. 그래서 배우들끼리 진짜 때려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화질이 선명해지는 만큼 프로덕션이 보다 정교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제작 비용의 증가를 전제로 한 얘기다.

무엇보다 인간의 눈이 24프레임과 48프레임 그리고 앞으로 선보이게 될 60프레임의 차이를 얼마나 쉽게 구분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그건 인간의 뇌에서 작용하는 잔상효과(일련의 정지영상을 고속으로 움직일 때 하나의 움직이는 영상으로 간주하는 눈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HFR로 상영된 <호빗>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가득 던지는 작품이다. 일단 HFR이라는 새로운 상영 시스템부터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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