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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연기, 수영, 잠수… 모두 처음이었고 전부 좋아하게 됐다
2013-01-01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라이프 오브 파이> 주인공 파이 연기한 수라즈 샤르마

참 맑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이와 연륜의 문제가 아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 수라즈 샤르마에게는 요즘 청춘 배우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이 있다. 계산과 과장된 표현이 없는 그의 연기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감화시킨다. 가족을 잃은 소년이 호랑이와 함께 망망대해를 떠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있을까. 수라즈 샤르마를 뉴욕에서 두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후반작업이 한창일 때 진행된 지난 7월의 매체 인터뷰, 그리고 올해 뉴욕영화제 개막작 상영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실제로 겪은 모험담을 들려주듯, 영화 속 모습 그대로 기자들과 마주했던 수라즈 샤르마의 말을 전한다.

-리안 감독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바뀌었나.
=완전히 바뀌었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바뀌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고, 인간의 가장 강한 점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도 배웠다. 개인적으로 자신감도 갖게 됐다.

-가장 처음 파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떤 설명을 들었나.
=처음에는 동생이 지원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함께 오디션을 보라고 해서 보게 됐다. 6개월 뒤에 연락이 와 오디션을 다시 보게 됐는데, 마지막에는 뭄바이로 가서 감독님을 직접 만나게 돼서 신났었다.

-얘기를 듣자하니, 파이 역에 3천명 넘게 오디션을 봤다던데.
=그렇다고 알고 있다. 오디션 볼 때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을 봤는지 전혀 몰랐다. 배역을 맡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누가 장난하는 줄 알았다. 진짜인 줄 알고는 잠시 멍해 있었다. (웃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지 않나. 아마 너무 행복해서 할 말을 잊은 듯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일이었고, 운이 좋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오디션에선 별로 잘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기뻐해줬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당신에게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데.
=(웃음) 모든 게 새로웠다. 수영을 할 줄 몰랐고,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인도를 떠나본 적도 없고, 그렇게 다른 나라 사람을 많이 만난 적도 없고, 직장을 가져본 적도 없다. 너무 많은 것이 새로웠기 때문에 한 가지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웃음) 영화 때문에 수영을 배웠고, 이제는 수영을 너무 좋아하게 됐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알게 됐다. 다른 배경에서 왔지만, 함께 모여 기름친 기계처럼 완벽하게 일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받았다. 모인 사람들이 워낙 열심히 하니, 나 역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원작 소설의 느낌은 어땠나. 배역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
=쉬운 소설은 아니지만, 계속 읽어가면서 점점 몰입하게 되더라. 다 읽은 뒤에는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영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내가 워낙 초보이다 보니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었다. 그저 촬영장에서 한 장면 한 장면 찍을 때마다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임했다.

-첫 영화에 출연한 소감이 궁금하다. ‘리처드 파커’(호랑이)와 함께 촬영하지 않은 것은 안다. (웃음)
=거대한 수조 탱크(대만에서 제작한) 안에서 촬영했는데, 파도도 셌고, 수중 촬영도 많아서 재미있었다. 호랑이는 상상해야 했다. 동물들과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세트 자체가 나에게는 ‘리얼’한 장소였으니까. 감독님과 어떤 감정으로 이 장면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직접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지시는 안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감독님의 연출 스타일이었다. 감독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통해 그분이 원하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연기수업을 받았는데, 명상시간을 많이 갖게 해주셨다.

-촬영 중에 동물이 없었으면,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나.
=촬영장에는 동물이 있었지만, 함께 촬영하지는 않았다. 촬영장 다른 쪽에서 동물이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는데, 그쪽에 자주 가서 트레이닝하는 것을 지켜봤다. 극중 4마리의 호랑이가 등장한다. 사이즈나 성격이 확연히 다른 호랑이들이었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움직임을 많이 배웠고, 비디오 자료를 참고했다.

-세트장에 실제로 조난당한 경험자도 방문했다던데.
=70여일간 바다에 조난당한 경험이 있던 분이 촬영장을 방문했다. 그분에게 궁금한 점을 많이 물었는데, 가장 궁금했던 것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떤 느낌이 들까 하고. 그런데 아무 생각이 안 든다고 하더라. 비어 있는 캔버스 같아서 극적인 감정의 변화는 그리 심하지 않다고 얘기하더라. 그분의 조언이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원래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촬영에 많이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축구를 좋아하고, 9년 동안 가라테를 배웠다. 달리기도 잘하고. 힘이 세고 그런 건 아니고, 일부 운동에 경험이 있는 정도다. 영화 촬영을 위해 여러 가지 트레이닝을 받았다. 토할 정도로 세게 트레이닝을 받았다. (웃음)

-리안 감독과의 관계는 어땠나.
=인도에 ‘구루’(guru: 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라는 뜻.-편집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감독님과 나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나에게 감독님은 멘토나 스승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분이다. 나의 모든 결정과 행동을 전적으로 믿고 지원해주셨다. 물론 감독님으로서 경이로운 분이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리안 감독님 또한 상당히 놀라운 분이었다. 언제나 나를 안정시켜줬고, 필요할 때 항상 곁에 있어주셨다. 촬영장 밖에서도 말이다. 늘 보호받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이 연기할 때도 큰 도움이 됐고, 촬영을 마친 뒤에도 계속 연락을 드리며 가깝게 지내고 싶다. 감독님 주위에는 늘 ‘안정’이라는 아우라가 발산되는 것 같다.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사실은 대학 진학에도 큰 도움을 주셨다. 진로에 대해 상담을 많이 했다.

-그럼 앞으로 뭘 하고 싶나.
=글쎄, 연기를 계속할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분명한 건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거다. 영화학과에 진학하고 싶고, 감독님이 졸업한 뉴욕대 진학도 심각히 고려 중이다. (웃음) 잘은 모르지만, 감독님처럼 카메라 뒤에 서고 싶다. 이번 작품을 하기 전부터 감독님의 <와호장룡>을 좋아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 중 수중에서 장시간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맞다. 그 장면 나 혼자 다 한 거다. (웃음) 수영을 못하니, 당연히 잠수도 못했다. 처음에는 15초 정도 잠수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2분30초까지 잠수가 가능했다. (기자들 탄성) 이제는 잠수가 너무 좋다. 물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바깥세상의 고민도 다 잊고. 아름답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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