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크리스마스이브에 저는 솔로대첩이 벌어지고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에 나와 있습니다. 눈을 씻고 둘러봐도 온통 남자들뿐입니다. 그럼 저기 목에 금목걸이가 딱! 양복바지 엉덩이에 장지갑이 딱! 앞머리에만 브리지가 딱! 들어간 참석자 한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안녕하세요, 뿌잉뿌잉~ 저는 실미도에서 온 영기라고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무엇이 가장 소중하냐고 물으신다면 사랑이라고 답하고 싶은 건강한 대한민국 스물네살 청년입니다!
-저는 한번 둘러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묻지 마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기분인데요. 여자라곤 찾아볼 수도 없고 군데군데 남자들끼리 모여 짤짤이를 하거나 강강술래를 하고 있는 무척 공포스러운 현장입니다. 이미 저쪽에서는 족구를 하다 판정문제로 주먹다짐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곳에 나오신 거죠?
=며칠 전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윤희씨와 이곳 타워스카이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처음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녀와 함께 클래식한 작업의 정석대로 오싹한 로맨스를 즐길 생각입니다.
-처음 만나면 상당히 어색할 텐데, 어떤 식으로 대화를 풀어가실 생각인가요?
=저는 스포츠를 무척 좋아합니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로 그녀의 마음을 녹여볼 계획입니다. 깜짝 선물로 최신가요 컴필레이션 테이프와 종이학 천 마리도 준비했죠. 그런 다음 혼자서 24인용 텐트를 쳤던 얘기를 멋지게 들려주면 제게 넘어올 것이 확실합니다!
-앗, 그런데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타워스카이에서 지금 불이 났습니다. 어떡하죠. 불길이 어마어마합니다. 저와 인터뷰하시느라 못 들어가게 생겼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안됩니다. 저는 불길을 헤쳐서라도 윤희씨를 만나러 꼭 타워스카이에 들어가야 합니다. 죽여도 좋고 패도 좋습니다. 타워에만 들여보내주십시오!
-이것 보세요, 타워스카이의 화재로 인해 제1회 솔로대첩은 최악의 참사로 끝날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아닙니다. 아프니까 청춘입니다. 천번을 불에 데어야 어른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전 이만, 윤희씨 뜨거워도 조금만 참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