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인생은 침대에서 시작되어 침대에서 끝난다” <베드>
2013-01-16
글 : 이기준

B는 번듯한 직장에 그림 같은 집, 젊고 아름다운 아내까지 가진 남부러울 것 없는 남자다. 하지만 그는 행복을 만끽하며 살기는커녕 삶에 대한 의욕조차 없어 보인다.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한 B의 표정 뒤에는 결혼 전 짧지만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던 유부녀 E에 대한 고통스러운 갈망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며 사는 여자 E는 B와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 별탈없이 잘 살고 있다. B는 매정하게 돌아선 E에 대한 집착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며, B의 아내 D는 자신과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박철수 감독은 <301/302>를 거쳐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까지 섹스와 삶의 여러 측면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함수관계를 탐구해왔다. 이번 영화 <베드>는 ‘침대’라는 사물을 매개로 ‘베르테르의 침대’, ‘에로틱한 욕망’, ‘편안한 꿈’ 세개의 챕터를 통해 B, E 그리고 D라는 세 남녀의 섹스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인생은 침대에서 시작되어 침대에서 끝난다”라는 인상적인 문구로 시작한다. 허나 침대를 상징으로 해 삶을 이야기하기에는 시간상으로도, 장면의 분량상으로도 ‘베드신’이 영화의 다른 모든 맥락을 압도해버린다. 정작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침대는 남녀의 성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몇몇 좋은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장면마다 현실성의 층위가 너무 달라서 연출한 의도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자유분방함’이 감독이 전작(前作)에서 내걸었던 질문, 즉 “영화적 엄숙주의, 영화적 형식주의를 깨뜨릴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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