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여대생의 죽음을 둘러싼 공방 <분노의 윤리학>
2013-02-20
글 : 이영진

한 여대생이 자신의 집에서 목졸라 살해된다. 경찰은 여대생과 불륜 관계였던 대학교수 수택(곽도원)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잡아들인다. 죽은 여대생의 옆집에 사는 교통경찰 정훈(이제훈)은 살인범이 수택이 아니라 여대생의 전 남자친구인 현수(김태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곧바로 신고하지 못한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카메라로 훔쳐봐왔기 때문이다. 수택이 검찰로 송치되어 조사를 받는 동안 현수는 죗값을 치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정훈이 설치한 마이크를 발견하고, 정훈은 자신이 설치한 몰래카메라를 빼내려다 여대생을 괴롭혀온 사채업자 명록(조진웅)에게 붙잡히면서, 여대생의 죽음을 둘러싼 공방은 미궁 속으로 흘러간다.

<분노의 윤리학>은 살인자를 끝까지 뒤쫓는 스릴러가 아니다. 현수가 여대생을 죽였음을 일찌감치 보여준다. 관객에게 부여된 역할은 수사관이 아닌 판관이다. 여대생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는 네명의 남자들 중 ‘누가 가장 나쁜 놈인가’를 지목하는 판결은 아니다. 정훈의 도청과 수택의 간음과 현수의 살인과 명록의 협박 중에 어떤 이가 저지른 죄가 가장 무거운지는 누가 어떤 기준을 갖고 재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보다는 죄를 행한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훈은 자신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수택은 아내와 여대생, 두 여자를 모두 사랑했다고 우긴다. 현수는 사랑해서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울부짖고, 명록은 내가 진범을 잡았다고 우쭐댄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거나 전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얼굴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변호한다. <분노의 윤리학>이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은 건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공통의 죄를 따져 묻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현수는 평소엔 평범하고 착한 사람이다. 정훈은 수줍음이 많다. 명록은 귀여운 면이 있다. 수택은 부드러운 사람이다.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 않으면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박명랑 감독은 이전에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캐릭터들이 지닌 이중성을 최대한 끄집어내 보여주겠다고 말한 적 있다. 한 장면에서 어떤 인물이 극단적인 양면성을 내보일 때의 충격은 꽤 크다.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수택의 아내 선화 역의 문소리를 포함해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상반된 감정은 때론 여러 편의 사이코 드라마 무대를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도 전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쇼크 효과는 인물들을 번갈아 보여주는 구조 아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감소한다. 별다른 굴절 없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인물간의 충돌과 갈등을 언쟁의 형태로만 드러내는 방식 또한 어느 지점부터 한계를 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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