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니콜라스 홀트] 상남자로 돌아오다
2013-03-11
글 : 이주현
<웜바디스>의 니콜라스 홀트

<어바웃 어 보이>의 꼬맹이, 드라마 <스킨스>의 브레이크를 상실한 청춘이 좀비가 되어 돌아왔다. 그냥 좀비가 아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좀비다. 영국 배우 니콜라스 홀트가 <웜바디스>에서 좀비 R을 연기한다. ‘인격을 가진’ 좀비를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홀트는 여유만만이다. 니콜라스 홀트의 좀비 되기 프로젝트를 전한다.

니콜라스 홀트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찍으며 제니퍼 로렌스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리고 얼마 전 두 사람은 결별했고,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올해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홀트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수상에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그녀가 상을 받아 무척 행복하다. 나 역시 흥분됐다.” 사적인 관계를 들추길 즐기는 할리우드 통신을 향해 꾸밈없이 속마음을 드러내는 그가 꽤 쿨해 보인다. <웜바디스>에서 호흡을 맞춘 여배우 테레사 팔머가 영화 촬영 전 사석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더라는 다소 굴욕적인 일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건 또 어떤가. 열두살에 휴 그랜트와 함께 <어바웃 어 보이>를 찍으며 일찌감치 스타덤에 올랐지만, 홀트에게선 자의식 과잉 같은 건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영리하지만 영악함과는 거리가 먼배우. 홀트가 여전히 순수한 청년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2002)

큐피드 화살을 든 좀비

<웜바디스>의 제작진도 홀트의 이런 이미지를 활용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장르간 이종교배의 끝을 보여주는 <웜바디스>에서 홀트는 따뜻한 심장을 지닌 좀비 R을 연기한다. 사실 어불성설이다. 좀비의 피는 뜨거울 수 없다. 인육을 먹는 좀비에게 로맨틱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작 마리온의 동명의 원작 소설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심장, 이 가련한 기관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중략) 나의 고요한 슬픔, 나의 모호한 갈망, 나의 드물게 깜빡이는 기쁨. 그것은 내 가슴의 가운데에 고여 새어나오고 있다.” 좀비에게도 감정이란 게 존재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R은 “순교적 낭만을 깨달을 정도로 감상적”인 좀비다. 그래서 R은 혼란스럽다. 인간인 줄리(테레사 팔머)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 그 자신도 몰랐을 테니까.

“유머와 로맨스, 액션이 한데 섞인 것도 흥미로웠고 캐릭터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R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곧바로 에이전트에 전화해 이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시체들의 새벽>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과 같은 고전 좀비영화들은 물론이고 <28일후…> <좀비랜드> 그리고 자신의 베스트영화 중 하나라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 등 최근의 좀비영화까지 두루 섭렵한 홀트는 자칭 좀비영화의 팬이다. 그는 <웜바디스>의 시나리오를 읽고 ‘이건 내 거다’ 싶었다고 한다.

한편 <웜바디스>의 제작진에게는 좀비 분장을 하고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조너선 레빈 감독은 <웜바디스>를 “<로미오와 줄리엣>과 <프랑켄슈타인>을 섞어놓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괴수영화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결국엔 절대적 사랑과 그 사랑의 힘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란 뜻이다. 그럴 때 남자주인공은 절대적 매력을 지녀야 한다. <웜바디스>의 특수분장을 담당한 에이드리언 모로는 R이 “제임스 딘과 닮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우수에 젖은 방황하는 좀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녀들을 설레게 할 수 있는 좀비를 원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R은 니콜라스 홀트의 몫이 됐다. 홀트의 매혹적인 육체와 섹스어필의 기운을 캐릭터의 개성으로 끌어들여 사용한 <스킨스>와 <싱글맨>처럼 <웜바디스>도 홀트의 매력을 최대한 뽑아내려 한다.

재밌게도 영화는 원작에서 묘사한 R의 말끔한 의상을 추레하게 바꾸어버린다. 소설에서 R은 검은 양복바지에 회색셔츠 그리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R은 청바지에 빨간색 후드를 걸치고 있다. 동네를 오가다 수시로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청년으로 전락해버렸다. 추측건대 제작진은 좀비 워킹이 모델 워킹이 될까 우려했던 것 같다. 190cm에 육박하는 홀트가 빨간 넥타이로 포인트를 준 슈트를 입고, 다크서클인지 스모키 메이크업인지 헷갈리는 분장을 하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누군가는 분명 런웨이 위의 모델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 <웜바디스>(2013)
영화 <스킨스 1, 2>(2007, 2008)

섹시한 당신, 소녀들의 남자

어쨌거나 홀트는 기꺼운 마음으로 좀비가 됐다. “좀비 분장을 하는 동안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레프트 4 데드> 같은 좀비 게임을 즐겼다. 인육을 시식하는 고어장면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찍었다. 식용 염료로 만든 피는 달콤했고, 인간의 뇌는 부드러운 복숭아 스펀지케이크 같았다.” 세 단어 이상을 연속으로 말할 수 없는 설정도 답답했을 텐데 “괴성에 있어선 전문가가 됐다”며 너스레도 떤다. “말을 하지 않고 으르릉거리면서 연기하는 게 처음엔 어색했다. 상대 배우와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연기하는데, 너무 웃겼다.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몰라 몇번이나 타이밍을 놓쳤다.” 완벽한 좀비로 변신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인간에서 좀비로 다시 인간으로 변해가는 R을 표현하는 것이 <웜바디스>에서의 핵심이었다. “R은 교감을 원한다. 줄리와의 교감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한다. 무언가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고 소통하길 원한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일단 로맨틱 좀비 R은 미국 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꾸준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홀트지만 <웜바디스> 이후 그의 걸음엔 더 가속이 붙을 것이다. 이미 여러 명의 블록버스터 제작자들이 홀트를 찜해뒀다. 브라이언 싱어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가 개봉을 하고 나면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4: 분노의 도로>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후속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홀트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돌연변이 야수 행크 맥코이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들과 재결합할 생각을 하면 설렌다.” 니콜라스 홀트의 필모그래피는 즐겁게 몰입했기에 가볍게 다음 목적지로 향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얘기하는 듯하다. 분명한 건 우리가 지금보다 더 자주 그의 이름을 마주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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