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영향을 받아 탄생됐다. <킬 빌> 시리즈가 ‘쇼 브러더스’를 위시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아시아 액션영화 여행이었다면,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장고’를 경유하는 그의 스파게티 웨스턴 여행이다. 영화의 제목 역시 이탈리아 배우 프랑코 네로가 ‘장고’로 등장한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1966)에서 왔다. 하지만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흑인 장고를 내세워 노예제도라는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으로 깊숙이 들어가 헤집는다. 그렇게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의 정서를 덧씌운다. 타란티노식 ‘하이브리드’ 영화의 극치랄까.
왕년의 <장고>를 보며 한번도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심장을 겨누고 인생을 말하다>를 쓰기도 했던 스파게티 웨스턴 전문가 하워드 휴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이탈리안 웨스트>라는 책에서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를 정밀 분석한다. 할리우드 웨스턴 장르의 히어로들과 비교하며, 장고에 대해 장르적 컨벤션을 ‘폭로’(debunk)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고가 다른 웨스턴 히어로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에 대해 느릿느릿 관을 끌고 다니면서 절대 말을 타지 않는다고 말한다. 장고가 말을 타지 않고 늘 걸어 다닌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하지만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장고(제이미 폭스)는 신나게 말을 타고 다니며, 과거 장고의 주무기였던 가공할 기관총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는 흑인이다. 말하자면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장고>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장고라는 캐릭터와 오프닝의 낯익은 음악 정도만 빌려온, 그러니까 장고를 맥거핀으로 쓴 타란티노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다. 장고의 탈을 쓴 샤프트, 혹은 <재키 브라운>(1997)의 또 다른 변형이랄까.
장고가 돌아왔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기존의 정형화된 미국 웨스턴의 관습을 무참히 깨버린 일련의 이탈리아산 서부극을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탈리안 웨스턴’이라고 해야겠지만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용어가 주는 묘한 키치적 일탈과 전복의 쾌감을 이미 누릴 대로 누린 터라 학계에서도 보통 그냥 그대로 칭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 자신이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마틴 스코시즈도 “난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표현이 무척 싫다. 이탈리안 웨스턴이라고 하면 어떤 하나의 사조처럼 느껴지지만, 스파게티라고 하면 어딘가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 것처럼 낮춰 부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 말한 적도 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인기를 끌면서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됐다. 아련한 추억의 작명법이다. 물론 그전에도 독일에서 ‘유럽 웨스턴’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이탈리아 제작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4)가 최초로 미국에서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스파게티 웨스턴의 역사가 시작됐다.
<장고>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형을 만든 <황야의 무법자>풍 영화지만,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름 없는 남자’였던 반면, 후배인 <장고>의 프랑코 네로는 ‘장고’라는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각인시켰다. 이후 장고는 이름 없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물론 ‘튜니티’와 더불어 스파게티 웨스턴을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이름이 됐다. 프랑코 네로는 이후 <다이하드2>(1990)에서 비행기로 압송돼 오던 마약 대부 에스페란자 장군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레터스 투 줄리엣>(2010)에서 소피(아만다 시프리드) 할머니(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첫사랑이었던 할아버지로 등장해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당연히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도 카메오 출연했다. 악랄한 대부호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리처드 플레이셔의 <만딩고>(1975)를 연상시키는 흑인 노예들간의 처절한 싸움을 즐기는 또 다른 부호 아메리고 베세피로 출연했다. 그런 그가 바에 앉은 장고에게 “이름이 뭐지?”라고 묻는 장면이 흥미롭다. 할리우드 웨스턴을 교란시켰던 스파게티 웨스턴의 옛 영웅 장고가, 무려 201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시점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의 새로운 장고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건네주는 의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를 사랑한 타란티노
<장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스파게티 웨스턴과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cksploitation) 무비의 결합이라는 점이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는 1970년대 미국에서 흑인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흑인배우를 주연으로 해서 만든 다분히 상업적인 의도의 영화로, 범죄와 액션물들이 주류를 이루는 ‘익스플로이테이션’(착취) 필름의 일종이다. 아이작 헤이스의 주제가가 오스카를 수상한 고든 팍스의 <샤프트>(1971)가 그 시초로 여겨지는데,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장고가 구하려는 여자 브룸힐다 폰 샤프트(케리 워싱턴)의 이름에서 보듯, 타란티노는 바로 그 샤프트의 조상 얘기를 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존 싱글턴이 리메이크한 <샤프트>(2010)에서 샤프트를 연기한 새뮤얼 잭슨이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캘빈 캔디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악랄한 집사로 등장한다. 프랑코 네로의 카메오 출연만큼이나 흥미로운 캐스팅이다.
물론 이러한 결합 시도는 이미 마리오 반 피블스의 <파시>(1993)가 있었다. 여전히 흑인 노 예제도가 있던 1887년 미국을 배경으로, 기병대는 쿠바를 놓고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흑인 용병부대를 쓴다. 하지만 백인들은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용맹스런 흑인 총기병들을 함정에 몰아넣어 몰살시키려 하고, 이를 눈치챈 흑인 용병들은 리더 제시 리(마리오 반 피블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금을 빼돌려 서부로 도망친다. 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에서 네드(모건 프리먼) 또한 매력적인 흑인 건맨으로 남아 있으며, 존 싱글턴의 <로즈우드>(1997) 역시 기억해둘 만하다. <로즈우드>에서 나무에 목 매달린 채로 그 줄마저 끊고 탈출하는 듬직하고 날렵한 흑인 영웅(빙 레임즈)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영화에서 띄엄띄엄 존재했던 흑인 건맨의 역사를 다시금 복원시키는 작품이다.
타란티노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잭 힐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 <코피>(1973)의 주인공이었던 팸 그리어는 <파시>에도 출연했고, 이후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의 주인공으로 발탁됐으니 타란티노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의 인연은 깊다. 어려서 옆집 흑인 형의 청바지를 탐내고 흑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TV시리즈에 열광했던 그는 ‘블랙 컬처’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심지어 흑인 뱀파이어가 등장했던(아프리카 왕자 마누왈데가 노예제도 종식을 요구하며 유럽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드라큘라를 만나 노여움을 사게 되는) <브라큘라>(1972)도 그가 사랑했던 영화다. 그러다 보니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들의 유행이 지나갔을 무렵 ‘더이상 볼 영화가 없다’며 엄청난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학살의 역사를 잊지마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이탈리안 웨스트>에서 하워드 휴스는, 장고가 관을 끌고 다니는 모습은 <장고>가 웨스턴만큼이나 이탈리아 호러영화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KKK단의 변형으로 보이는, 붉은 머플러를 한 악당들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이탈리아 호러영화의 거장인 마리오 바바의 <킬, 베이비…킬!>(1966)의 영향이다. 그렇게 그는 <장고>에 대해 “기존 웨스턴영화들과 비교해도 선정적인 색채와 침울한 조명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랑 귀뇰(Grand Guignol,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살인이나 폭동 따위를 다룬 공포극.-편집자)을 연상시킨다”고도 말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궁금해하는 관 속에서 기관총을 꺼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악당들을 단숨에 궤멸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심지어 라스트에서 악당들의 말발굽으로 양손이 짓뭉개져 망가진 장고는, 기어이 그 손으로 악당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스파게티 웨스턴이 보여준 극단적 잔혹함의 백미이자, 스파게티 웨스턴 내에서도 극강의 (특정 집단을 겨냥해 고도의 선정성을 무기로 삼는) 익스플로이테이션 무비였다. 그러니까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스파게티 웨스턴과 블랙 무비 사이에서 진짜 익스플로이테이션 무비가 무엇인지 경쟁하는 영화다.
하지만 그런 장르의 하이브리드 속에서 홀로코스트의 시대를 관통하는 타란티노의 집념을 잊어선 곤란하다. 그는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흑인들을 지칭하는 만딩고의 학살과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겹쳐놓는다. 바로 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 잔인한 독일군 한스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왈츠를 현상금 사냥꾼으로 등장시켜 장고와 파트너를 이루게 한 것이다. 그가 보기에 남북전쟁 2년 전의 미국과 당시의 유럽은 그리 다르지 않은 악랄한 제국의 시대 다. 물론 그것을 비꼬는 방식은 타란티노답다. 남북전쟁 뒤에 생겨난 인종차별주의적 극우비밀조직 쿠클럭스클랜(Ku Klux Klan), 일명KKK단을 “두건의 눈 구멍이 작아서 앞이 잘 안 보여. 이거 누가 만들었어?”라는 식의 대사를 내뱉는 우스꽝스러운 집단으로 묘사한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흑인인 걸 아나?”라는 대사도 인상적이며, 그 최종 라스트는 ‘화이트 하우스’의 대폭발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타란티노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브래드 피트가 있었다면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다. 이제 마틴 스코시즈의 페르소나나 다름없는 디카프리오를 끌어들여 선배와의 적극적인 만남을 모색한다. 그가 연기하는 캘빈 캔디는 영락없이 샘 레이미의 <퀵 앤데드>(1995)에서 그 마을의 권력자(진 해크먼)의 아들이었던 풋내기 건맨 ‘더 키드’가 성장한 모습과 다름없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만큼이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쓰고 있던 모자가 너무 커 보였던 그 키드가 어느덧 아버지를 이어 만딩고 싸움을 즐기는 사디스틱한 절대 권력자가 돼 있다. 그렇게 타란티노는 장르와 계보를 모두 아우르려 한다. 탐식가 타란티노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블랙 카우보이의 전설
흑인 최초의 건맨 배우 우디 스트로드(1914~94)
<파시>가 시작하면,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한 흑인 노인이 나와 “역사란 우스운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과거 카우보이들의 3분의 1이 흑인이었어. 노예해방이 이뤄지자 모두 서부로 몰려갔는데 LA 정착민 중 반수 이상이 흑인들이었지. 하지만 그런 역사는 숨겨져 있어”라며 탄식한다. 그 노인은 바로 할리우드영화 사상 최초의 흑인 건맨 배우로 기억된 우디 스트로드다. 마리오 반 피블스가 흑인 카우보이가 주인공인 <파시>를 만들며 우디 스트로드에게 바치는 오마주인 것이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우디 스트로드는 시드니 포이티어(1927년생)와 비슷한 시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흑인 배우다.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인 ‘우디’의 이름이 그에게서 왔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일화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스팔타커스>(1960)에서 그물에 삼지창을 들고 스팔타커스(커크 더글러스)와 싸우다 이겼음에도,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왕에게 달려들다 의로운 죽음을 맞았던 ‘드라바’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존 포드와 수많은 영화를 찍었는데,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 주인공 존 웨인의 일을 도와주는 폼피로 나와 리 마빈 일당에게 총을 맞아 부상당한 제임스 스튜어트를 부축해 날랐다.
이후 액션영화에서 비중있는 역할들을 꿰차며 리처드 브룩스의 <4인의 프로페셔널>(1966)에는 활쏘기에 능한 전사였고, <살라코>(1968)에서는 숀 코너리와 호흡을 맞췄으며,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에는 찰스 브론슨을 처치하기 위해 보내진 도입부의 세 건맨 중 하나였다. 한참 세월이 흘러 <퀵 앤 데드>에도 카메오 출연했다.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버팔로 대대>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존 포드의 <러틀리지 상사>(Sergeant Rutledge, 1960)다. 스트로드는 백인 소녀를 강간하고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 미 기병대의 흑인 군인 러틀리지 상사로 분해,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에 <서부의 불청객>이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출시된 <케오마>(1976)에서 오리지널 장고인 프랑코 네로와 함께 출연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옛 노예 ‘조지’로 나오긴 했지만, 그와 함께 악당들을 처치해 나가는 장면들의 쾌감은 상당했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무려 100살의 나이라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타란티노는 우디 스트로드와 프랑크 네로를 다시 한숏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