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최무성] 따먹는 연기? 적성에 안 맞아!
2013-03-28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연애의 온도>의 최무성

“오늘 드라마 촬영 있었나요?” “촬영하고 온 것 같죠. 인터뷰 사진 찍는다고 머리 만졌어요. 안 그러면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서 바보처럼 머리에 딱 달라붙거든요. 가르마도 원래 5:5고.” 최무성은 셔츠도 따로 두벌 준비해왔다. 하지만 셔츠가 커서 사진 촬영 땐 빨래집게로 옷을 고정해야 했다. 사이즈 때문만은 아니었다. 막상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평소 늘 입고 다닌다는 주름진 카키색 티셔츠가 깔끔하게 다림질된 셔츠보다 더 잘 어울렸다. 재밌게도 그의 연기가 그렇다. <연애의 온도>에서 최무성은 김 과장을 연기한다. 김 과장은 주인공 동희와 영의 직장 상사이자 손 차장(라미란)과는 불륜관계인 이혼 직전의 중년 남자다. 영화에서 김 과장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최무성은 있는 듯 없는 듯 제 몫을 다 한다. 바로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무기로 삼는 정량(定量) 연기다. 극단 연희단 거리패 등을 거친 연극배우 출신이자 <먼데이 P.M. 5> <사람을 찾습니다> <청소부> <나비 빤스> 등을 연출한 연극 연출가이기도 한 최무성을 만났다.

-<베를린>의 흥행으로 사람들이 꽤 알아보겠다.
=최근엔 누가 악수를 청하면서 ‘영화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네더라. “뭐 보셨어요?” 물으니까 <베를린> 봤다고. 그리고 <청담동 살아요>를 10개월쯤 해서 아줌마 팬들이 조금 생기긴 했다.

-그전엔 사람들이 주로 어떤 작품으로 알아봤나.
=아무래도 <세븐데이즈>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강한 캐릭터로 기억했다.

-<연애의 온도>의 김 과장은 생각보다 출연 분량이 적더라.
=어떻게 보면 <청담동 살아요>의 찌질한 남자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은데, 김 과장에겐 또 다른 지점이 있다고 봤다. 평범하면서도 약간 코믹 코드가 섞인 역할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분량을 떠나 굉장히 김 과장을 연기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연애의 온도>는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를 요하는 작업이었겠다.
=나한텐 그랬다. 유머 코드가 있는 영화라 내 몫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40대 남자가 찔찔 울면서 얘기하는 장면 같은 데선 신경이 좀 쓰였다. 기본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중년 남자로 보이려고 했다.

-일상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시나리오가 연기할 때 더 어렵지는 않나.
=디테일할수록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좋다. 또 그렇게 한번 그림이 그려지면 이후에 연기하기도 쉽다. <연애의 온도>는 연기하기 좋은 시나리오였다. 내 모습이 화면에 대사 없이 그냥 걸릴 때, 단체 회식 장면 같은 데서도 내가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할지 쉽게 떠올랐으니까. 그럴 때 김 과장은 주로 자고 있었다. 집에선 와이프한테 깨지고 회사에선 불륜관계인 손 차장과 관계가 썩 좋지 못하고. 그런 이혼 직전의 남자에게 술자리가 즐겁겠나. 그냥 자야지.

-자신의 등장 신에서 좀더 임팩트 있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욕심을 부리진 않나.
=나도 사람이니까 좀더 강렬하고 싶고, 돋보이고 싶고, 튀고 싶고, 기억에 남고 싶다. 그런데 경험상 욕심을 부려서 좋았던 적이 없다. 욕심 부려서 나온 연기는 결국 편집 거리가 되거나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없는 연기가 되는 것 같다.

-과욕을 부려서 창피했던 경험이 있나.
=연극할 땐 관객의 반응에 종종 흥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난 위축될 때가 더 많다. 들이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인지 몰라도, 넘칠 때보다 모자랐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너무 나대려고 하는 건 아닐까, 화려하게 연기하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위축됐던 경우들이 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조금 더 갔어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확실히 화려하게 연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리얼하게, 그 사람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어필할 수 있는 연기, 이른바 ‘따먹는 연기’를 잘 못한다. 쑥스럽기도 하고 계산도 잘 못한다. 뭔가 의도하면 연기할 때 내가 어색해진다. 어필하려고 했는데 그 연기가 잘 안 살면 무지 부끄럽다.

-연극으로 경력을 시작한 배우들 중엔 명암이 도드라지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즘은 연극판의 연기가 그렇게 양식적이지 않다. 발성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영화나 TV 연기와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연극하는 친구들의 액션이 강하게 보일 순 있을 거다. 영화나 TV는 카메라가 잡아주지만 연극은 배우가 알아서 클로즈업을 시켜야 한다. 스스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당겨야 한다는 얘기다.

-노덕 감독이, 연출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편안한 배우라고 얘기하더라. <연애의 온도> 은행 워크숍 장면 촬영 때도 2박3일 동안 기다리기만 하다가 결국 촬영을 못하고 서울로 돌아간 적이 있다고 들었다.
=나도 연극연출을 하니까 안다. 배우들한테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2시간만 연습할게, 하고 4시간 연습하고. 오늘 끝난다 했는데 내일모레 끝나고.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니까 노덕 감독한테도 나 신경 쓰지 말고 연출하라고 했던 거다.

<연애의 온도>
<청담동 살아요>
<악마를 보았다>

-<베를린>에선 국정원 직원으로 출연해 한석규와 호흡을 맞췄다. 베를린의 한식당에서 한석규와 대화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선 직업적 특수성은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다.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은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수 있는 갈등이다. 자기가 키우다시피한 후배가 자기를 넘어선다든가, 자기보다 어린 친구가 높은 자리로 올라간다거나 하는 일은 허다하게 있으니까. 그런데 한석규 선배님 목소리가 너무 달콤해서 연기할 때 약간 집중이 안됐다. (웃음) 농담이고, 촬영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 장면을 꽤 긴 시간 찍었는데 ‘명배우와 내가 이렇게 만나 단둘이 작업을 하다니’ 그런 생각도 들더라. 즐거운 기억이다.

-평범하게 생긴 듯하지만 <세븐데이즈> <악마를 보았다>를 보면 범죄자, 악인 캐릭터에 최적화된 배우처럼 보이기도 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워낙 강렬해서 출연 이후 여파도 컸을 것 같다.
=그 뒤로 <악마를 보았다>의 캐릭터보다 더 세고 흉측한 인물들에 대한 제의가 좀 들어왔다. 유아를 유괴해서 죽이는 역할 같은 것.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도 신경 쓰였지만 심정적으로 이입이 잘 안돼서 거절했다. 연기를 떠나서 하기가 싫더라.

-연극과 영화만 쭉 해오다가 최근엔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첫 드라마는 <공주의 남자>였고, 그다음에 <청담동 살아요>를 10개월 정도 찍었다. 일단 <청담동 살아요>의 김석윤 감독님과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같이 해서 인연이 있었다. 감독님이 <풍산개>를 보시고 <청담동 살아요>에 캐스팅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난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또 시트콤을 좋아한다. 시트콤은 방송에서만 가능한 포맷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전원일기>나 <수사반장>은 십몇년간 꾸준히 방송되면서 시청자의 일상이 된 드라마들이다. 영화나 연극으로는 절대 소화할 수 없는 거지. 최근엔 시트콤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현대인들의 일상을 자극적이지 않고 친근하게 위로해주니까. 영화나 연극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품일 것 같아서 <청담동 살아요>에 출연했다.

-지금도 드라마 촬영 중이라던데.
=5월 말에 JTBC에서 방송 예정인 <언더커버>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다. 깡패 역이다. 경찰이나 공무원은 많이 연기해봤는데 깡패 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를 함부로 다룰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깡패다. 무섭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고 머리 회전도 빠르고 순정도 있고 조직 세계에 약간 염증도 있는 좀 복잡한 인물이다.

-최근에도 연극 작업을 병행하고 있나.
=5월쯤 공연 예정인 <친애하는 에두아르>를 프로듀싱하고 있고, 예전부터 생각해뒀던 두 작품을 올해 연출할 것 같다.

-연극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인다.
=연극은 관객과 직접 마주해야 한다. 그 순간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된다. 최근에는 연극 연출을 주로 하고 있어서 배우들이 그 순간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집중하는 편인데, 연극을 하면서 생생한 자극을 계속 받는다. 사람이 일을 하다보면 타성에 젖거나 자만하게 되거나 지겨워지거나 하는 때가 오지 않나. 그럴 때 연극이 영화 작업에 탄력을 주고, 영화 작업이 다시 연극에 탄력을 준다. 연극이 생계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지만 뭉뚱그려보면 결국 그게 다른 작업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니까 마이너스가 아니고 플러스인 거다. 연극 연출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영화 출연 계획은 없나.
=아직까진 없다. 7월까지는 <언더커버>에 집중할 생각이다. 딴 거 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청담동 살아요> 찍으면서도 시간 내서 <베를린> 찍었으니까 올해도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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