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寤寐不忘 張國榮(오매불망 장국영)
2013-04-04
글 : 주성철
홍콩에서 사망 10주기를 맞은 장국영의 흔적을 더듬다

2013년 4월1일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의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그는, 홍콩 누아르의 거친 남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유약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그리고 내재된 우울한 정조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관금붕의 <연지구>, 첸카이거의 <패왕별희>, 우인태의 <야반가성>, 진가신의 <금지옥엽>, 그리고 왕가위의 <아비정전><동사서독><해피 투게더> 등 그는 홍콩영화의 포스트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허무와 고독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감독의 꿈, 오랜 동성 친구 당학덕과의 비밀스런 관계 등 그는 숱한 수수께끼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며, 최근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쓴 주성철 기자가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홍콩영화 속 장소들을 돌아봤다. <동사서독>의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내가 기억하는 영화 속 망치를 든 남자는 <올드보이>(2003)의 오대수(최민식)도 아니고 <드라이브>(2011)의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도 아니고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의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아닌 바로 <아비정전>(1990)의 아비(장국영)다. 계모(반적화)에게 붙어서 생활하는 ‘제비’를 화장실에서 만나서는, 망치로 유리를 깨고 벽을 치며 “제발 꺼져!”라고 위협한다. 계모와의 지루한 긴장 관계, 그리고 그 자신의 불안한 현재가 겹쳐 그는 늘 폭발 직전의 상태다. 그런 그가 부유한 여자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제비의 모습에서 바로 자신의 미래를 본 것이다. 1960년대 홍콩사회의 ‘반항아’를 일컫는 ‘아비’(阿飛)는 바로 장국영을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국내에서 <영웅본색>(1986)과 <천녀유혼>(1987)을 통해 최고 스타 자리에 올랐던 그가 왕가위 감독을 경유하여 ‘연기자’로서 다가온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배우 장국영의 화려한 90년대가 시작됐고, 이른바 ‘왕가위 신드롬’이 한국의 젊은 관객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화려했던 나날은 2003년 4월1일, 종말을 고했다.

<아비정전>
퀸스 카페 노스포인트 지점
퀸스 카페에서 만난 이인항 감독.

<아비정전>의 퀸스 카페

<아비정전>에서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미지는, 포마드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의 장국영이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던 눈빛이 퀸스 카페 노스포인트 지점.다. 그 장면이 촬영된 곳은 바로 동그란 시계가 인상적인 ‘퀸스 카페’다. 아비는 이곳에서 동네 친구(장학우)와 여자 친구 미미(유가령)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런 그들 앞에 계모가 나타나고 자리를 옮겨 싸움이 시작된다. “그렇게 친엄마를 찾고 싶어? 그 여자를 찾고 나면 나는 금방 잊어버리겠지. 그래 실컷 미워하거라.” 장국영도 지지 않는다. “친엄마가 어디 있는지 왜 말해주지 않는 거죠? 그렇게 불행하고 싶어요? 그럼 우리 같이 평생 불행하게 살아요!” 하지만 그런 계모를 두고 떠나지는 못한다. 술 취한 그녀를 들쳐업고 방에다 뉘어줄 때, 심지어 그녀는 트림을 하고 토사물 범벅이 된다.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아비의 신경질적인 표정에 가슴이 쓰리다. 사실 <아비정전>에서 어머니의 부재는 아비의 기행(奇行)을 설명하는 그 모든 것이다.

가슴속에 깊은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장국영은 늘 퀸스 카페에서 느릿느릿 돌아가는 천장의 선풍기를 바라보고 있다. <화양연화>와 <2046>의 ‘골드 핀치 레스토랑’이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영업 중인 반면(‘<화양연화> 세트’와 ‘<2046> 세트’도 판다), <아비정전>에 등장한 코즈웨이 베이의 퀸스 카페는 2000년대 들어 영업을 접었기에 장국영 팬들의 상실감은 컸다. 하지만 이후 퀸스 카페는 다행히 홍콩 여러 곳에 지점을 내며 영업을 재개했다. 노스포인트와 카우룽통에 지점이 생겼고 뒤늦게 코즈웨이 베이의 랜드마크인 타임스 스퀘어 뒤편의 ‘리 시어터’ 건물 13층에도 문을 열었다. 영화 속 모습과 가장 닮은 지점은 노스포인트의 퀸스 카페지만 역시 실제 퀸스 카페가 있던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리 시어터의 퀸스 카페에 더 애정이 간다. 너무 손님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지만.

낯익은 ‘Queens Cafe’라는 간판 바로 옆에는 한국 식당 ‘서라벌’이 붙어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바로 이곳 퀸스 카페에서 장국영과 함께 <성월동화>(1999)를 함께했던 이인항 감독을 만난 적 있다. 너무나도 뜻밖의 만남에 자연스레 장국영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장국영이 <해피 투게더>(1997) 이후 필모그래피의 하락세에 접어든 것이 사실이라면 <성월동화>와 <유성어>(1999)는 그의 변화 의지 혹은 배우로서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장국영이 <해피 투게더>로 왕가위와 작별한 이후 이전만큼의 에너지를 뿜어내지는 못했지만, 분명 배우로서 새로운 도약점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인항 감독의 얘기도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어왔던 장국영의 모습과 사뭇 달라서 놀랄 때가 여러 번이었다”는 그는 “장국영은 현장에 아무런 메이크업이나 특별한 준비 없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면도도 안 하고 나타났다. 당시 그는 배우로서 가식적인 것에 싫증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계속 변화를 모색했다. 말하자면 ‘감독 장국영’의 새로운 작품을 보지 못한 것보다 ‘배우 장국영’의 신작을 보지 못한 안타까움이 더 크다. 언젠가 그가 왕가위와 다시 만나거나, <색, 계>(2007)의 양조위처럼 혹시 리안 감독과 함께할 기회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성탄쾌락>과 <시티 보이즈>에 등장한 브라이어 애버뉴.
<성월동화>
<영웅본색>

<시티 보이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브라이어 애버뉴

장국영은 원래 ‘우울한 아비’라는 느낌보다 ‘귀여운 바람둥이’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 쾌활한 남자였다. 가령 허관걸과 함께 부른 <신최가박당>(1989) 주제곡 <아미경과>에서 그가 부르는 대목은 ‘여자 만나면 바로 작업 시작!’이라는 가사다. 장국영의 첫 번째 빅히트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위니종정>(1985)에서도 그런 이미지였고, 따지고 보면 <영웅본색2>(1987)에서 언더커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여자 꼬이는’ 기술로 보스(석천)의 딸을 유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아비’로 출연한 유국창 감독의 <시티 보이즈>(1992)는 <아비정전>을 경유하여 그런 그의 이미지를 집대성한 마지막 작품이다. 원제가 <람강전지반비조풍운>인데 홍콩 경찰 내에서 불량청소년의 비행을 단속하는 수사반인 ‘반비조’(反飛組)의 람강(향화강) 반장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으로, 이미 30대 중반의 나이였던 장국영이 비행청소년들의 우두머리로 나온다. 강직한 성격으로 경찰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던 람강 반장은 강등되어 불량청소년 단속반에 배치되고, 그곳에서 패거리의 리더인 아비를 만나게 된다. 아비는 겉은 반항아 기질이 강했지만 어머니(엽덕한)와 여자 친구 아민(주혜민)에게만큼은 그 누구보다 따뜻하다. 그런데 그의 라이벌인 샘이 아비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급기야 아민의 얼굴에 황산을 뿌리고 그녀의 친구마저 죽인다. 이후 아비는 복수에 나서고 사건을 매듭지으면서, 그렇게 장국영은 아비 캐릭터와 작별인사를 나눈다.

<시티 보이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해피 밸리의 ‘브라이어 애버뉴’(Briar Avenue)다. 앞서 <성탄쾌락>(1984)에서는 배달원으로 출연한 장국영이 맥향(맥가)의 집이 있는 이곳으로 와서 맥향의 딸(이려진)에게 한눈에 반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브라이어 애버뉴에서 <시티 보이즈>의 아비는 어머니, 아민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샘 패거리의 공격을 받는다. 평화롭게 드라이브를 하는 세 사람 앞에 샘 패거리가 차를 몰고 나타나 나이 든 어머니를 빗대 “할머니도 꾀냐?”며 아비에게 시비를 건다. 그들은 차 안으로 쥐를 던져넣기까지 하는 악랄한 짓을 일삼으며 브라이어 애버뉴에 다다른다. 브라이어 애버뉴의 끝인 동그란 원형 우회로에 이르러 차에서 내린 샘 패거리는 세 사람을 마구 공격한다. 아비와 아민은 야구배트에 맞고 쓰러지고 어머니는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한다. 급기야 여러 마리의 쥐가 담겨 있는 자루를 얼굴에 씌우자 어머니는 그만 바지에 소변을 지리고 만다. 그날 이후 아비와 어머니는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고된 생활을 이어간다. 원래 어머니는 한푼도 벌지 않고 아비가 주는 돈으로 도박만 하는 철없는 엄마였다. 거의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표정으로 파지를 줍던 어머니는 아비에게 “넌 원래 착한 애야. 그런데 네가 감옥에 가면 어떡하냐. 다 이 어미가 너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야”라며 땅을 친다.

<아비정전>의 모자 사이와 비교하면 참으로 훈훈한 광경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장면으로 이어진다. 웬 정체 모를 두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둘 중 하나가 네 아빠란다. 꼭 찾으렴”, 게다가 ‘엄마인 나에게 잘해야 한다’는 요지로 “네가 13살 때 처음 몽정했을 때 팬티를 5개나 사줬던 거 기억나니? 내가 끝까지 모유를 줘서 네가 잘생겨진 거야”라는 민망한 얘기도 서슴지 않는다. 할리우드영화 <아메리칸 파이>(1999)에서 아들의 성적 호기심을 너무나 진지하고 근엄하게 챙겨주던 아버지와 비교해도 이 엄마는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다. 압권은 매일 싸움질하느라 경찰서에 끌려가게 생긴 아들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얘기다. “널 감옥에 보낼 순 없어. 감옥에 가면 못된 것만 배우게 돼. 게다가 넌 잘생겨서 다른 남자들한테 강간당할지도 몰라.”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장국영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한 사람이 있었나 싶다. 실제로 어려서부터 유모와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 어머니와 소원한 사이였던, 평생 어머니와 같은 집에서 지낸 시간이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장국영으로서는, 철부지 엄마라도 그렇게 늘 엄마와 부대끼며 살길 원하지 않았을까.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백발마녀전>

장국영의 위패가 있는 보복산

<시티 보이즈>의 철없는 엄마는, 유덕화와 함께 출연한 허안화 감독의 <심플 라이프>(2012)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엽덕한이다. 허안화는 이전부터 장국영과 꼭 영화를 함께할 것이라고 얘기해왔던 감독이다(두 사람이 영화로 만난 건 <금지옥엽2>에서 장국영이 타는 비행기에 허안화가 스튜어디스로 카메오 출연하며 이뤄진 적 있다). 그래서 <심플 라이프>의 유덕화도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장국영이 출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처럼 장국영의 존재가 지워지면서 홍콩영화의 커다란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이제 ‘중국영화’에 밀려 멸종될 위기에 처한 ‘홍콩영화’ 안에서 그는 언제나 비스콘티의 만년필 혹은 글렌 굴드의 낡은 의자 같은 존재였다. 말하자면 그의 죽음은 이제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게 된 홍콩영화의 거대한 결핍이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닿은 곳은, 그의 위패가 있는 샤틴의 ‘보복산’(寶福山)이다. 조그만 동산 하나로 이뤄진 거대한 납골당인데, 보복산 내의 보선당(寶禪堂) 965호 방의 695번이 바로 장국영의 자리다. 965호 방에서 그의 왼쪽으로 나란히 모셔져 있는 두 인물이 궁금할 것이다. 그의 위패는 생전 너무도 가까웠던 나문, 심전하와 함께 마치 긴 하나의 위패처럼 사이좋게 모셔져 있다. 1945년생 나문은 ‘광둥팝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알란탐, 장국영이 등장하기 이전 1970년대 화려한 의상과 무대 매너로 홍콩 음악계를 사로잡았던 가수다. 당시 모든 음악상을 독식한 것은 물론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과 뉴욕의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첫 번째 홍콩 가수다. 무대에서 여장을 한 적도 있고, 잡지에 누드 사진을 실은 적도 있다. 여러모로 장국영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장국영은 가수 초기에 창법이나 스타일 등에서 ‘나문을 모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아주 가벼운 우정출연 외에는 영화배우로 활동하지 않았고 1996년 은퇴했다. 우리에게는 <영웅본색>에 삽입된 구창모의 <희나리>를 ‘기허풍우’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른 가수로 유명하며, 안타깝게도 2002년 10월18일 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에 장국영 역시 크나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로부터 5개월 뒤 그도 세상을 뜬 것이다.

또 다른 이웃 심전하는 홍콩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여배우였다. 나문과 동갑이며 늘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특유의 ‘뚱보’ 캐릭터로 ‘페이페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토크쇼 진행자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니 ‘홍콩의 오프라 윈프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전남편이 바로 <초류향> 시리즈로 유명한 정소추다. 그녀는 장국영이 죽고 난 한참 뒤인 2008년 2월19일 오랜 투병 끝에 간암과 만성질환으로 세상을 떴다. 장국영이 죽기 직전까지 준비했던 자신의 장편 데뷔작 <투심>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니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모두가 서로 다른 곳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을 테지만, 이제는 사랑했던 이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됐다.

이후 장국영의 10주기를 맞아, 그동안 만나왔던 홍콩 영화인들의 인터뷰와 자료들을 모아봤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잘 아는 의사를 소개시켜줄 걸 그랬다’라든지 ‘잘 지내는지 종종 연락해보지 못해 미안했다’는 식으로 미안함 이상의 ‘내가 그를 위해 뭔가 해주지 못했다’는 일종의 공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들 그의 죽음에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책하는 풍경을 본 것은 드문 일이다. 모두 그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니까 그것은 장국영이 홍콩 영화계에서 너무나 사랑받는 존재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면서, 잔인하게 말하자면 그의 죽음이 동료 영화인들에게 떨칠 수 없는 원죄의식을 심어준 사건이다. 나는 그것이 장국영의 죽음 이후 홍콩영화가 활력을 잃어버리며 중대한 국면 전환을 맞게 된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홍콩영화의 시대가 저물었고, 우리의 90년대도 끝났다.

나문, 심전하와 함께 장국영의 위패가 모셔진 ‘보복산’.

우리 모두 그 1분을 기억합니다

4월6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장국영 10주기 추모 특별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4월6일(토) 하루, <아비정전>(13:30)과 <백발마녀전>(16:00)을 상영한다. <아비정전>은 ‘발 없는 새’라는 말과 함께 언제나 장국영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영화다. 실제로 그가 세상을 떴을 때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라는 그의 대사는 무던히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장국영의 대사들 중 베스트1을 꼽으라면 언제나 선정될 ‘1분’의 대사. “내 시계를 1분만 같이 봐요… 1960년 4월16일 오후 3시, 우린 1분 동안 같이 있었어. 난 그 1분을 기억할 거야. 우린 이제 친구야. 이건 당신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이미 지나간 과거니까.” 그렇게 아비(장국영)와 수리진(장만옥)의 사랑이 시작됐다. 하지만 “난 전에 그랬었지. 내가 정말 사랑한 여인이 누군지 평생 모를 거라고”라고 얘기했던 아비와 달리 <백발마녀전>의 탁일항(장국영)은 마교의 살수 연예상(임청하)만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의 오해로 인해 그녀의 머리가 백발로 변해버리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천설봉의 꽃이 피기만을 10년이나 기다린다. 그 꽃으로 그녀의 머리를 다시 검게 해주기 위해. 우인태 감독 특유의 유려한 프로덕션디자인이 돋보이는 <백발마녀전>은 그가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했던 영화다. 물론 장국영의 팬들에게는 장국영의 멋진 파마 머리, 그리고 임청하와의 에로틱한 폭포수 정사 신으로 또렷이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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