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일반인의 도주극’ <런닝맨>
2013-04-03
글 : 주성철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런닝맨>은, 사실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가?>의 서울 시내 추격액션 버전이다. 카센터 직원이자 콜 전문 운전기사인 차종우(신하균)는 어린 나이에 ‘사고’를 쳐 얻게 된, 18살밖에 나이차가 나지 않는 아들 기혁(이민호)과의 관계가 소원한 철부지 아빠다. 하지만 열심히 돈을 벌어 아들과 단둘이 살 만한 집을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차에 태운 손님이 죽자 살인 누명을 쓰게 된다. 다음날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지만 지문과 CCTV로 인해 한순간 목격자에서 용의자로 전락하게 되고, 아무도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도주를 시작한다. 이미 그는 ‘별’ 4개의 전과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아버지를 의심부터 하는 천재적인 두뇌의 아들 기혁, 사건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열혈 기자 선영(조은지),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명예회복을 꿈꾸는 형사 반장 상기(김상호)가 의기투합해 사건의 배후를 쫓고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게 된다.

<런닝맨>의 두 가지 재미는, 실시간 추격극이라는 점과 궁지에 몰린 그저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먼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살인용의자가 된 종우는 경찰과 언론은 물론 정체불명의 이들에게까지 쫓기게 되고, 그것을 전 국민이 지켜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온몸으로 입증해야 한다. 두 번째는 종우가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제이슨 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기사’라는 점일 뿐이다. 물론 ‘도망 전문’이라 불릴 정도로 왕년의 실력이 살짝 남아 있지만, 어쨌건 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다. 여러모로 졸지에 폭탄을 배달하게 되는 이야기였던 조범구 감독의 <퀵>(2011)을 떠올리게 하는데, <퀵>이 추격극을 멜로로 풀어냈다면 <런닝맨>은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부자(父子)의 정(情)으로 풀어낸다. 결국 이 추격극은 아들에게조차 의심받는 상황에서, 누명을 벗고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는 소시민 가장의 반격이다.

그래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실시간의 긴장감 속에서 펼쳐지는 추격 액션의 드라마다. 조동오 감독의 전작 <중천>(2006)이 정우성과 김태희라는 배우의 존재를 떠나 컴퓨터그래픽이 지나치게 도드라진 작품이었다면, <런닝맨>은 작정하고 생생한 서울 도심을 누비며 아날로그 추격극으로 승부한다. 그 컨셉은 명확하다. 바로 ‘일반인의 도주극’이다. 제이슨 본(<본 아이덴티티>)과 이단 헌트(<미션 임파서블>) 등 최근 첩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공간의 지형과 구조물을 꿰뚫고 자신의 출구를 직접 마련하지만, 종우는 매번 어떡해야 할지 모르는 그저 ‘서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다소 엉성하게 종로 골목의 건물을 오르내리며, 맨몸으로 승용차에서 뛰어내리며, 심지어 카트와 자전거를 타고 도주를 거듭한다. <런닝맨>의 재미는 그렇게 콘크리트 바닥에 나뒹구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 철저한 현실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 가운데 ‘신 스틸러’ 김상호와 조은지의 가세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영화에서 핵심적인 정서로 작용해야 할 부자의 정이 오히려 그 스피드를 떨어뜨린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참고로 <런닝맨>은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해 2012년 도입한 글로벌 사업의 지원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이십세기 폭스가 메인 투자를 맡은 첫 번째 한국영화다. 각각 유니버설픽처스와 이십세기 폭스가 부분 투자사로 참여한 <박쥐>와 <황해>의 사례가 있었지만,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메인 투자사로 참여한 경우는 <런닝맨>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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