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가 고독한 영웅이 되어 돌아온다. 4월11일 개봉하는 조셉 코신스키의 신작 <오블리비언>에서 그는 황폐한 지구에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드론 조종사 잭 하퍼를 연기한다. 그가 수많은 전작에서 선보였던 ‘곤경에 처한 남자’들과 <오블리비언>의 잭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막 돌아온 톰 크루즈의 이야기를 전한다.
올해 여름이면 톰 크루즈도 51살이 된다(그의 생일은 7월3일이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던 이 꽃미남 스타 배우의 미간에도 어느새 가느다란 주름이 겹겹이 잡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화끈한 액션장면을 장착한 블록버스터영화의 주인공이다. 동갑내기 배우 브래드 피트가 레드카펫을 자주 밟을 수 있는 예술영화로 눈을 돌리고, 역시 비슷한 나이의 톱스타 조니 뎁이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만화적인 캐릭터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으며 중년의 위기를 돌파할 때, 톰 크루즈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진 얼굴로 20년 전에도 맡았을 법한 액션 블록버스터영화의 주인공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의 행보는 노쇠한 육체를 유머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액션배우 브루스 윌리스와도 다르다. 톰 크루즈는 그렇게 어떤 남자배우도 개척하지 못한 아름다운 미답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오블리비언>의 예고편에서 산꼭대기 위에 고고한 자태로 앉아 있는 잭 하퍼의 모습이 그를 연기하는 톰 크루즈의 현재와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블리비언>의 감독 조셉 코신스키는 “깊은 고독감이 영화 전반에 짙게 깔려 있고, 이야기의 훌륭한 배경으로 작용한다”고 말한 바 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잭 하퍼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드론 조종사다. 60년 전 인류의 명운을 건 외계인과의 전쟁으로 지구는 완전히 초토화됐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세운 하늘 위 도시로의 완전한 복귀를 앞두고 잭은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안에서 잭의 과거를 알고 있는 미스터리한 여인 줄리아(올가 쿠릴렌코)를 만난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잭의 동료들은 그에게 등을 돌린다. 잭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과거를 되찾고 지구를 사수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가 처한 곤경을 고집스럽게 돌파하는 주인공을 톰 크루즈만큼 유려하게 소화해낼 배우도 드물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이단 헌트는 물론이고 <바닐라 스카이>의 데이빗과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 <작전명 발키리>의 슈타펜버그 대령까지 그가 성공적으로 연기해낸 수많은 캐릭터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톰 크루즈가 전작들을 통해 이뤘던 이 연기적 성취가 관객이 <오블리비언>의 잭 하퍼에 몰입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톰 크루즈의 잭은 역시 잊고 지내던 과거를 되짚어가는 <바닐라 스카이>의 데이빗과는 어떻게 다를 것이며, 걸작 항공영화 <탑건>의 파일럿과는 어떻게 다른 모습을 선보일 것인가. <오블리비언>에서 톰 크루즈가 감내해야 했던 건 아마도 자기 자신이 이뤘던 성취와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필모그래피만 나열해도 A4 용지 한장을 가득 채울 톱스타의 업보랄까.
그러나 “한번 빠져들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올인하는” 성격의 톰 크루즈는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으로 <오블리비언>에 임했다. 자신의 몸에 꼭 맞게 디자인된 항공기 버블십을 직접 운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모터바이크 점프 연기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는 제작진의 증언이 잇따랐다. 심지어 스턴트 감독 로버트 알론조는 “톰은 우리와 같은 스턴트맨이다. 믿어도 좋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스턴트만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턴트 장면을 직접) 하는 거다. 어떻게 내가 관객을 액션에 몰입하게 할지, 어떻게 이야기에 빠지게 할지가 관건이다. 나는 항상 이런 관점에서 역할에 접근한다.” 톰 크루즈의 말대로 그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더라도 블루 스크린과 안전한 와이어 대신 흙먼지 자욱한 세트장에서 뛰고 구르는 아날로그 방식 연기의 미덕을 여전히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진짜 연기’가 <오블리비언>을 보는 관객을 감응시킬 수 있을까. 톰 크루즈라는 보증 수표를 다시 한번 믿어보자.
<오블리비언>을 보기 전 톰 크루즈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 사실
1. 톰 크루즈는 <오블리비언>의 잭 하퍼와 마찬가지로 실제 파일럿이다. 그는 1994년 파일럿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에게 비행 레슨을 해준 사람은 <더 펌>(1993)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났던 시드니 폴락이다.
2. 비행 경험이 풍부한 톰 크루즈는 <오블리비언>의 제작진들이 버블십을 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에 따르면 크루즈는 “페달과 조종 스틱 등 버블십의 리얼한 디테일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3. 톰 크루즈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은 P-51 항공기다(말이 장난감이지 진짜 항공기다). 그가 2000년에 구입한 이 항공기의 이름은 ‘키스 미 케이트’. 이 명칭에 대해 크루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 부인(케이티 홈스)과 영화를 뜻하는 이름”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지난해 부부에서 남남으로 갈라선 케이티 홈스의 키스를 그가 다시 받을 일은 없겠지만.
4. <오블리비언>은 그가 출연하는 세 번째 SF영화다. 그의 첫 번째 SF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만든 <마이너리티 리포트>, 두 번째 작품 역시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이다.
5. 톰 크루즈는 <오블리비언>의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조셉 코신스키의 이야기와 비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