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들었는데 철은 들지 않은 자식들이 꾸역꾸역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다. 명색이 영화감독이지만 데뷔작이 망한 뒤 실업자 신세가 된 둘째아들, 벌써부터 엄마 집에 더부살이 중인 반건달 큰아들,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 하는 문제의 딸, 그 딸이 낳은 되바라진 어린 딸. 이렇게 엉터리 삼대가 모여 ‘고령화가족’을 이루자, 치고받고 얼싸안는 야단법석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송해성 감독은 전작 <무적자>를 만들고 가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문득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인 혁과 철이가 밥먹는 장면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라고. 그의 차기작의 운명은 이미 시끄러운 밥상으로 기울어 있었던 모양이다. <고령화가족>이야말로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가족을 들여다보는 마음에 대해 감독에게 물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쩐지 이걸 만든 사람의 가족사가 궁금해졌다.
=딸 일곱에 아들 하나 있는 집, 그 집의 장남이자 막내가 나다. 돈보다 가족 수가 많다보니 항상 북적북적했다. 거기에서 태어난 놈이 이렇게 영화감독이 되어 흥하기도 하고 말아먹기도 하며 살고 있다. 음, 근데 여기까지만 하자, 더 깊이 들어가진 말자. (웃음) 어쨌거나 가족이란 누구라도 문득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고령화가족> 같은 가족 말이다
-근래 한국영화 중에 콩가루 가족 또는 막무가내 가족 이야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바람난 가족> <좋지 아니한가> <가족의 탄생>, 계층은 다르지만 <돈의 맛> 등. 이 작품의 경우는 어떤 것이었나. 영화의 원작이 된 천명관의 원작 소설을 읽고 어떤 관심이 생겼던 것인가.
=실은 아주 개인적인 계기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13년 동안 영화 여섯편을 만들었으니 적게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작품의 실패와 성공을 떠나 영화를 만들며 늘 이런 고민을 했다. 왜 나는 영화를 찍으며 행복해하지 못하는가. 애초에 가졌던 꿈이나 목표에 비해 밥벌이의 수단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과정이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자괴감 말이다. 우연이지만, 그런 반성을 하고 있을 때쯤 <고령화가족>을 읽게 된 거다. 그러자 이 하자 많은 가족을 통해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 계산으로는 따질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이 가족의 이야기로 그려보고 싶어졌다. 비교하자면 <우묵배미의 사랑> 같은 걸 생각했다. 거칠고 촌스럽고 찌질한 인생들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영화와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들며 정말 행복했다.
-원작자 천명관은 각본가이기도 하다. 그를 각본가로 기용할 마음을 가져본 적 있나.
=실제로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쪽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웃음) 하여간에 나 말고도 영화하고 싶다며 감독들이 천 작가에게 전화를 많이 했다더라. 모 감독은 판권을 사기도 전에 시나리오 형태로 미리 써서 천 작가에게 보냈다고도 하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다들 이렇게 말했다는 거다. 이게 다 자기 얘기라고.
-<고령화가족> 외에도 원작 소설 영화화의 경험이 유독 많은 것 같다. 그 방면의 방법론 같은 게 있을 것 같다.
=소설의 입장과 영화의 입장은 다르다. 내 경험상 보면 원작자들은 오히려 자기 원작과 영화가 다르게 나올 때를 더 선호한다. 홍경표 촬영감독하고 그렇게 얘기했다. 우리 촌스럽게 찍자고. 픽스로, 원숏으로. 클로즈업보다는 좀더 빠져서 거의 미디엄 사이즈의 영화를 찍은 거다. 옛날 느낌이 나는 이야기니까 촬영도 그 느낌으로 한숏마다 집중해서 찍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배우나 나나 집중력이 더 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방식의 모범적인 영화를 찍었다는 생각에 조금 뿌듯한 감도 있다.
애들은 원래 밥상머리에서 크는 거야
-이야기의 흐름상 가족이 모이는 초반부 분위기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형성할 것인가가 일단 중요했을 것 같다.
=영화를 거의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었는데 그러다보니 한 인물을 통해 그다음 인물 그리고 또 그다음 인물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는 어떤 선이 생기더라. 그때마다 인물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는데 느낌이 짜릿했다. 인물들의 몽타주라고 해야 하나? 그게 일어나는 걸 느꼈다.
-그 말에 해당하는 재미있는 장면 하나가 있다. 형 한모가 동생 인모를 처음 만났을 때다. 인모가 닭죽을 먹고 있는데 한모가 더러운 손으로 김치 한 조각을 집더니 인모 밥그릇에 무심하게 휙 하고 던지는 장면이다.
=배우들과 모여서 인모와 한모가 처음 만나는 그 장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난 뒤 한모가 김치를 갖고 와서 던지는 지문을 추가했다. 처음엔 두 배우 다 웃더라. 하지만 나는 그게 바로 두 형제가 나누는 애정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무심하고 나빠 보이지만 동시에 동생을 아끼는 마음도 드러나는. 가족이 을왕리 횟집에 나가서 싸우는 장면도 그런 맥락이다. 영화에 밥 먹는 장면이 하도 많아서 동네는 지겨우니 외곽으로 한번쯤 나가 먹자는 생각에 만든 장면이다.
-그 야유회에서 가족은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남들과도 싸운다.
=난장판이 되는 가족 야유회 장면이라면 역시 이창동 감독님이 징글징글하게 찍으셨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의 싸움이 싸우는 게 아니라 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뭔가 몽환적인 느낌으로 찍고 싶었다. 그 장면에서 애들은 싸우는데 엄마는 별거 아닌 양 혼자 묵묵하게 소주를 마시고 있지 않나. 어쩌면 그게 <고령화가족>의 핵심일 수도 있다. 애들은 원래 저러고 크는 거야, 하는 거다.
-말한 대로 <고령화가족>에는 함께 모여 밥 먹고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때문에 그 장면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하는 고심이 따랐을 것이다.
=밥 먹는 장면에서 내가 제일 찍고 싶었던 건 된장찌개에 숟가락 5개가 한꺼번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숏이었다. 식구란, 밥 식(食)에 입 구(口) 아닌가. 가족이 촌스러운 밥상에 모여 한자리에서 먹는 걸 원했다. 그래서 밥 먹는 장면은 숏도 비교적 많이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인물들 단독 숏이나 클로즈업 등은 이 가족에 위기가 올 무렵부터 많이 썼다.
-소설과 영화의 큰 차이 중 한 가지는, 소설에서는 인모가 거의 절대적 화자인 데 비해 영화에서는 한모가 얼마간의 감정적 중요도를 나눠 갖는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오한모는 꽤 흉포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 영화에 그런 인물상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따뜻한 이야기니까. 이 가족이 아무리 서로 싸운다고 해도 일단은 우애가 좋아 보이기를 원했던 거다. 윤여정 선생님 말이 생각난다. “인모 역할은 누구야?” 하시기에 박해일이라고 했더니 “어, 나 걔 좋아” 그러시더라. “그럼 한모는 누구야?” 해서 윤제문이라고 했더니 “에이, 걔는 좀 그렇다” 그러시더라. (웃음) 그런데 영화를 함께 찍어 보시더니 “쟤 너무 귀엽다”고 하시더라. 한모라는 인물은 확실히 소설보다 훨씬 귀여워졌다.
-인물들이 소설보다 전반적으로 좀 착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인모는 사실 별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 인물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그게 박해일인데 그다지 미워 보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배우가 만드는 캐릭터의 매력이란 게 있으니까. 한모는 양상이 좀 다르다. 소설 속 한모는 나이도 오십이 넘고 하다못해 강간죄까지 갖고 있는, 폭력이 습관화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원작 그대로 가져갔다가는 영화 속 인물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결과물을 놓고 보면 잘된 것 같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오한모를 전부 귀엽다고 말한다.
회복도 없고 파국도 없다
-인물로 치자면 엄마도 좀 특이하다.
=소설 속 엄마는 리얼한 엄마의 상이다. 영화에서는 다르다. 윤여정 선생님께서 엄마 역할을 많이 해보셨다고 하시기에 그렇게 말씀드렸다. 방목형 엄마를 하는 건 처음일 거라고.
-인모가 한모 때문에 고초를 당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거의 한국형 누아르처럼 연출됐다. 그 장면만큼은 전작인 <무적자>를 의식하고 찍었나.
=그렇진 않았다. 그 장면이 톤이 달라 보일 수는 있다. 그전까지 날것들이 통통 튀는 것처럼 보이다가 그 장면에서 형제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나는 그 부분이 나빠 보이진 않는다. 사실 그 장면의 필요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을 안 했는데, 이유는 인모와 한모의 우애를 위해서 인모가 꼭 거기 끌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장르의 혼종이 아니라 이 캐릭터가 해내야 하는 역할 때문에 그 장면이 있어야만 했다.
-그 장면에서 인모가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일장 훈계하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통쾌했다.
=나도 통쾌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지금 이 영화를 찍는 거야, 라고 박해일에게 말했을 정도다. 우린 지금 수년째 존엄이 부서진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나. 넓게 보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장면은 테이크도 두번밖에 안 갔고 크랭크업하기 전날 찍은 장면이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마지막 장면인 셈이다. 그걸 찍고 나니 이 영화 이제 다 찍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인모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이 말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버텨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등급은 어느 정도나 고려했나. 뭔가 어른들 이야기로 더 갈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나이 어린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인상을 좀 받았다.
=초기부터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청소년 관람불가로 갈 것인가. 15세로 갈 것인가. 처음 대본은 지금 나온 거보다 더 셌지만 수정했다. 기본적으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걸 성인만 보게 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모든 영화에 전부 주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에는 주제가 있어 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하나를 말하는 게 좋겠다. 박해일과 박근형 선생님이 라면 먹는 장면이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좋다. 이게 우리의 22세기 가족이기 때문이다. 박근형 선생이 연기하는 인물 구씨는 사실상 박해일이 연기하는 인모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지금 앉아서 같이 라면을 먹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가족의 형태를 이루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삶은 어디선가 계속된다”는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정리된다. 회복되는 건 없지만 파국을 맞게 되는 인물도 없다는 점에서 이건 해피엔딩일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다. 어디서든지 삶은 계속되는 거다.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포기하지 말고 살자는 거다.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게 실은 그렇게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고. 물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고 끌어준다는 걸 생각하면, 삶은 쉽게 포기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행복한 사람들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들에게 이 영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 송해성 감독은 인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해일을 기다렸다. 기다리며 그가 말했다. “우리는 싸우기도 자주 싸우지만 뭉치기도 자주 뭉친다”고. 얼마 뒤에 박해일이 왔고 자리가 무르익었을 즈음 송해성 감독이 박해일에게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르게 넌지시 말했다. “오늘 (윤)제문이 <개그콘서트> 녹화하는 날인데 여기 끝나면 거기 한번 가볼까?” 박해일을 보니, 가자고만 하면 당연히 갈 표정이다. 그들이 그날 밤 또 한번 뭉쳤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고령화가족>의 감독과 배우들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가족의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