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친숙한 공간을 위기에 몰아넣을 때 관객이 호응한다
2013-05-23
진행 : 김성훈
정리 : 정예찬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화이트 하우스 다운>으로 내한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을 윤제균 감독이 만나다

“<투모로우>(2004)를 능가할 것.” <해운대>(2009)의 후반작업 때 윤제균(오른쪽) 감독은 <투모로우>를 레퍼런스 영화로 꼽으며 적지 않은 부담감을 드러냈다. 두 영화 모두 쓰나미가 도시를 덮친다는 설정인 까닭에 윤제균 감독 입장에서는 5년 앞서 개봉한 <투모로우>가 신경쓰였을 것이다. 결과는? 알다시피 ‘윤제균표 쓰나미’는 해운대를 제대로 집어삼켰다. <투모로우>를 비롯한 <인디펜던스 데이>(1996), <2012>(2009) 등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를 주로 만들어온 롤랜드 에머리히(왼쪽) 감독이 신작 <화이트 하우스 다운>(6월 개봉)의 홍보차 내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윤제균 감독을 떠올렸다. 그래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과 윤제균 감독의 만남을 어렵게 주선했다. 바쁜 홍보 일정을 쪼개 윤제균_감독과의 만남에 응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과 신작 <국제시장>(출연 황정민, 김윤진)을 준비하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윤제균 감독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재난 블록버스터의 두 대가는 만나자마자 서로의 영화를 본 소감부터 털어놓았다.

롤랜드 에머리히_어제 <해운대>를 봤다. 아주 좋았다.

윤제균_<해운대>를 만들 때 가장 참고했던 영화가 <투모로우>다.

롤랜드 에머리히_<해운대> 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 때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전에 캐릭터를 먼저 소개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수월해진다.

윤제균_나도 리얼리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운대>에서도 큰 비용을 들인 장면이 많다. 하지만 관객은 돈이 많이 들어간 쓰나미 시퀀스보다 피서객이 도망가다가 쓰나미에 휩쓸리는 장면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것 같다.

롤랜드 에머리히_그 점에서 <해운대>는 <투모로우>나 <2012>와 비슷한 영화인 것 같다.

윤제균_사실 적은 예산으로 <투모로우>를 능가하는 시각효과를 선보이는 게 당시의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해운대>가 개봉하기 전 <2012>의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해일이 히말라야를 집어삼키는 장면이 압도적이었다. 좌절감을 느꼈다. 그 당시 <2012>의 개봉일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운대>가 <2012>보다 먼저 개봉하길 원했다. 다행스럽게도 <해운대>가 먼저 개봉했다.

롤랜드 에머리히_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운대>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그리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현지 영화가 더 실감나기 마련이다.

윤제균_물론 <해운대>의 드라마는 <투모로우>나 <2012>와 다르다. <투모로우>가 한국에서 흥행했던 까닭에 <해운대>는 모든 점에서 <투모로우>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2012>의 비주얼 이펙트(VFX)와 비교될까봐 그런 걱정을 했던 거다. <투모로우>를 만들 때 참고한 작품이 있나.

롤랜드 에머리히_없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책에서 출발했다. 기후 변화가 생기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다루는 <The Coming Global Superstorm>이라는 제목의 논픽션이다.

윤제균_재난 블록버스터는 어떻게 보면 전쟁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주인공의 관점으로 영화 속 사건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영화 속 등장인물의 희생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 외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상황을 가급적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롤랜드 에머리히_당신의 말이 맞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계속 보여줄 필요는 없다. 나도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관객은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수 있다. 아무리 영화가 현실처럼 보여도 영화는 영화다.

윤제균_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화가 사람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 일단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롤랜드 에머리히_<해운대>에서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은 컨테이너 박스들이 광안대교 위에 떨어지는 시퀀스다. 아찔아찔하더라. 그 장면을 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1993)에서 주인공 아이 둘이 공룡 랩터와 쫓고 쫓기는 장면이 생각났다. 유머와 위기 상황들을 적절하게 뒤섞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윤제균_주로 재난 블록버스터였던 전작과 달리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액션영화에 가깝더라. 미국의 상징적인 공간인 백악관이 위기에 처한다는 점에서 미국 관객에 실감나게 다가갈 것 같다.

롤랜드 에머리히_대체로 영화의 공간을 설정할 때 사람들에게 친숙한 공간을 선호하는 편이다. 백악관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이고,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는 공간이다.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슈퍼 파워를 미루어봤을 때 백악관이 테러당하는 설정은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

윤제균_<화이트 하우스 다운>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니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다. 나 역시 예전에 청와대가 테러를 당하는 아이템을 개발한 적이 있다. 나도 장소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해운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휴양지인데 그런 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롤랜드 에머리히_고향이 부산이라고 들었다. <해운대>도 부산에서 촬영했더라.

윤제균_부산이 고향이라 공간의 정서와 디테일까지 잡아낼 수 있는 장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고향이기 때문에 부산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공간은 이야기에 맞게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롤랜드 에머리히_나도 독일을 고집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영화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은 빔 벤더스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같은 감독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를 꿈꿔왔다. 그러던 중, 할리우드에 와서 편안함을 느꼈다. 원하는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미국의 환경이 좋았다.

윤제균_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재난 블록버스터를 찍지 않겠다”고 말했다던데.

롤랜드 에머리히_<2012>보다 더 스펙터클한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을까 싶더라. 요즘 나오는 영화를 보면 재난영화의 장치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재난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말은 ‘순수한 재난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다음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 규모가 큰 영화라 들었다.

윤제균_<국제시장>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주인공 덕수(황정민)와 아내 영자(김윤진) 부부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전작과 달리 처음으로 주인공 중심의 영화를 하게 됐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 역시 대통령 역을 맡은 제이미 폭스와 그를 경호하는 채닝 테이텀 두 남자가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이더라.

롤랜드 에머리히_물론 두 사람뿐만 아니라 중요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제이미 폭스와 채닝 테이텀이 이야기를 이끌고 간다. 이런 경우는 나 역시 처음이다.

윤제균_<국제시장>은 상당 부분을 부산에서 찍고, 일부 장면은 독일에서도 찍는다. 주인공 덕수와 영자가 만나는 장소가 독일이다.

롤랜드 에머리히_촬영할 때 꼭 한번 초대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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