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19세기 런던의 뒷골목 <도리안 그레이>
2013-05-29
글 : 이기준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고 런던으로 돌아온 도리안 그레이(벤 반스). 젊고 아름다운 데다 큰 저택과 막대한 유산까지 갖게 된 그는 금세 귀족들의 주목을 받으며 런던 사교계의 별로 떠오른다. 하지만 도리안 그레이는 느긋한 쾌락주의자 헨리 워튼 경(콜린 퍼스)과 함께 아편굴과 매음굴을 드나들게 되면서부터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촉망받는 화가 바질 홀랜드(벤 채플린)가 그린 아름다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점점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게다가 약혼녀가 도리안 그레이의 변심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도리안은 죄책감을 잊기 위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더불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형상으로 변질되어간다.

올리버 파커 감독은 <이상적인 남편>(1999)과 <임포턴스 오브 비잉 어니스트>(2002)로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두 차례 영화화한 바 있다. 하지만 <도리안 그레이>를 통해 감독은 밝고 유쾌한 시대극의 분위기에서 탈피하여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음침한 런던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신예 작가 토비 핀레이는 탐미주의 문학의 고전을 현대의 상업영화에 걸맞은 이야기로 각색해냈다. 원작이 과도한 자기애와 경박한 환락의 위험을 경고하는 신비로운 우화였다면, 영화는 인물간의 대립과 섹스 그리고 폭력을 전면에 드러내는 오락용 호러영화에 가깝다. 촬영감독 로저 프랫은 화려한 연회장과 어두운 아편굴의 대비를 적절하게 살려내고, 루스 마이어스의 시대의상은 무난하고 자연스럽다. 선량한 이미지의 콜린 퍼스가 펼치는 냉소적인 데카당스 연기도 훌륭하지만, 끝없는 타락과 권태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도리안 그레이를 연기해낸 벤 반스(그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에서 캐스피언 왕자를 연기했다)의 변신이 더욱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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