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질식할 정도로 강도 높은 액션이 신마다 들어찬 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13분짜리 자동차 추격신과 폭파신은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있는 미개통 국도에서 열흘에 걸쳐 만들어졌다.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폭파신을 위해 스턴트팀 팀장 장호중(38)이 직접 높이 6m의 도약대를 제작했고, 오토바이 리허설로 촬영이 시작됐다. 오토바이 리허설은 촬영기사로 하여금 실제 촬영시 자동차의 동선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스턴트 배우들에겐 도약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효과를 내기에 스턴트팀에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정.
공중에 뜬 자동차가 뒷부분부터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장면을 위해 그가 생각해낸 묘수는 트렁크에 벽돌을 잔뜩 넣는 것. 전륜구동이라 앞쪽의 엔진 무게가 맘에 걸렸지만 그렇게 하면 별탈없이 뒷부분부터 떨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도약대를 벗어난 차는 그대로 날아가 엄청난 속도로 처박혔고, 운전석에 타고 있던 스턴트맨이 크게 다치고 말았다. 차도 완전히 박살났다. 결국 재촬영마저 취소됐고, 몇몇 부분을 CG로 다듬은 뒤 그대로 쓰겠다는 감독의 결정으로 아쉬운 대로 촬영이 끝이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트럭이 부딪힐 때의 장면을 정말 리얼하게 잡은 부감숏이 있었는데, 찍고보니 카메라에 필름이 없어 결국 쓰지 못했다. 촬영 동안 폭발음과 마찰음으로 일대의 사슴농장에서 사슴들이 죽어 나자빠졌고, 그걸 무마하느라 제작부의 지갑이 홀쭉해졌지만, 덕분에 스탭들은 귀한 사슴피 구경에 입이 벌어졌다는 후문은 그가 들려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스피드와 기계에 대한 애착은 이미 그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것이었다. 5대 독자였던 그가 오토바이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이모부에게서였다. 심부름을 시킬 요량으로 가르쳤다지만 아버지는 내내 그 일을 질책하셨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신 분이었지만 오토바이를 사달라는 요구만큼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그렇게 반대하던 아버지마저 신혼 초 어머니 몰래 오토바이를 샀다가 이혼 위기까지 갔다는 사실을. 4대 독자였던 아버지도 알고보니 속도광이셨던 것이다. 그때 느꼈던 동질감이란.
대학교 1학년, 해병 특수수색대에 있던 친한 형이 스턴트 세계로 그를 안내했고, 이후 <본투킬>에서 정우성에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칠 때까지도 그에게 이 일은 취미이자 아르바이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후의 명작>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오기 비슷한 게 생겼다. 실력이 안 돼 외국 스턴트팀을 불러야 한다는 감독의 말 한마디가 한국 최고의 스턴트팀 ‘라이더스’(Riders)의 탄생 이유가 됐다고나 할까. 국내 자동차경주대회인 용인 스피드웨이와 금강산 랠리 등에서 1위 팀들이 가장 먼저 받는 전화가 그의 전화가 됐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의 바람은 외화 <드리븐>이나 <택시>처럼 온전히 라이더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 한편 만들고 멋지게 퇴장하는 것이다.
프로필
1965년생 <본투킬>(1996) <비트>(1997)
<주유소 습격사건>(1999)
<공포택시>(2000)
<불후의 명작>(2000)
현재 <라이터를 켜라>(2002) 촬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