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국 극장가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2편이 한달 차이로 나란히 도착하고 있다. 5월23일 개봉한 <비포 미드나잇>이 18년간의 긴긴 산책을 마무리한 로맨스영화였다면, 6월20일 개봉할 <버니>는 링클레이터가 지난 15년간 매달려온 야심찬 블랙코미디다. 의문투성이인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블랙코미디는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문 사이를 맴돌며 천천히 인생의 부조리한 진리에 다가가는데, 그 발걸음이 자못 진지하다. 링클레이터의 영화세계를 능수능란하게 이해할 만한 유머감각은 쥐뿔도 없으나 그의 유머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고 싶었던 한 관객의 글을 여기 싣는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독자 분들은 영화를 보신 후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리처드 링클레이터식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버니 티드는 누구인가? 마을에 떠도는 소문을 요약하자면, 그는 (지금도) 텍사스주 카시지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의사다. 흠잡을 데 없는 방부처리 솜씨,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줄 아는 남다른 재능, 주말 예배를 더욱 충만하게 하는 출중한 노래 실력. 그 모두를 갖춘 30대 후반의 버니는 평화로운 고령화 마을 카시지의 슈퍼스타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에게 빠져든 수많은 미망인들 중 한명은 이런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카시지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천당에 가야 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당연히 버니가 맨 위에 오를 거예요.”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사내 버니. 그는 어째서 수년간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81살의 마조리 뉴전트 부인을 총으로 4발이나 쏘게 되었으며, 어쩌다 그녀를 죽인 뒤에도 냉동고에 9개월이나 보관하게 되었고, 급기야 자신에게 무조건 면죄부를 내려줄 마을 사람들로부터 80㎞ 떨어진 샌 오거스틴 법정에서 종신형까지 선고받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신의 놀이터에서나 그 답을 주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 사내의 비극적인 사연을 기묘한 희비극으로 승화한 영화 <버니>만을 다루고자 한다.
죽음도 삶도 일종의 연극
링클레이터는 어떻게 의문투성이인 실제 살인사건을 기묘한 희비극으로 옮겨냈는가. 어떤 영화보다 영화적인 삶을 산 버니의 덕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버니의 이야기를 실제에 근접한 극영화로 재가공해낸 링클레이터 특유의 연출력도 높이 살 만하다.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한편의 영화로 얽혀들었는지 더듬어보자면, 먼저 버니와의 조금 이상했던 두번의 만남에서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
버니와의 첫만남은 그가 방부처리 특강을 위해 찾은 그의 모교에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시체를 손질해 보이는 그는 대단히 초연한 태도로 죽은 사람에게 온화하고 안정된 표정을 만들어주고자 강력접착제를 활용해 눈과 입술을 한치의 실수도 없이 꼼꼼하게 붙이는데, 그 광경을 카메라는 타이트한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한참 뒤 이 장면들은 버니가 차 사고로 죽은 고등학생의 시신을 운반하는 신과 포개진다. 그는 시체가 마치 설치미술작품처럼 전시된 현장으로 걸어들어가 아직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남아 있는 남학생 한명을 들것에 싣는데, 그때 정신을 잃고 실실거리는 남학생에게 “웃으면 안된다”고 지시하면서 동시에 그를 주시하는 관중을 향해 이것이 얼마나 참담한 비극인지를 거듭 강조하듯 “이렇게나 어린데”라고 반복해 읊조린다. 이 두 장면에서 버니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서늘함을 안긴다.
버니에게 죽음은 일종의 연극이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그는 마조리의 주식중개인에게도 “장의사”라는 말 대신 “장례식 연출가”(funeral director)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지시키는데, 그러고 보면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꾸며놓고 장례식을 치르는 행위 자체도 근본적으로는 연극이다. 그의 라디오 부고 멘트들이 청취자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그의 타고난 연극적 재능에 있었을 것이다. 버니는 방송에서 죽은 남학생의 부고를 이렇게 전한다. “어린 샷웰군한테 죽음이 몰래 다가왔네요. 얕은 안개처럼 부드럽게 말이죠.” 삶과 죽음이 제시하는 잔인한 진실을 버니는 사람들이 보고 듣기 편한 형식으로 가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죽음도 일종의 연출된 현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영화 속 버니의 태도는, 링클레이터의 영화 세계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링클레이터의 인물들은, 죽음은 아니더라도, 삶도 일종의 연극으로 받아들여왔다. 시기적으로는 가깝지만 언뜻 전혀 다른 계열의 영화처럼 보이는 <비포 미드나잇>(2013)만 해도 그렇다. 어느새 쌍둥이 딸을 키우며 7년차 부부로 살고 있는 제시와 셀린느는 크고 작은 일대일 연극을 통해 관계를 이어나간다. 연극을 통해 그들은 서로에 대한 욕망을 확인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환멸을 직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시기적으로는 멀어도 많은 평자들이 <버니>와 가장 가까운 링클레이터의 영화로 꼽는 <뉴튼 보이즈>(1998)는 어떤가. 세명의 동생들을 이끌고 어마어마한 수의 은행을 턴 전무후무한 은행 강도범 윌리스 뉴튼은 종종 돈보다 극적 행위로서의 강도짓에 홀린 것처럼 보인다.
삶도 죽음도 하나의 거대한 연극이라 여기는 그들의 태도는 감독 링클레이터의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하루에 세번쯤은 “이거 영화 되겠는데!” 싶은 아이템이 보인다는 링클레이터의 사무실에는 방대한 양의 스크랩 자료가 주제별로 분류돼 있다고 한다. 그중 카메라로 방부처리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기민한 감각으로 골라내는 것이 그의 재주라면 재주다. 1998년 1월 <텍사스 먼슬리>에 게재된 버니의 이야기 또한 링클레이터에게 그런 식으로 찾아왔다. 스킵 홀랜드스워스의 기사를 읽은 뒤 재판을 방청했을 정도로 그는 이 믿거나 말거나 한 살인사건에 강력한 매혹을 느꼈고, 홀랜드스워스에게 공동 각본 작업을 제안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떤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 만한 것인지 실은 나도 잘 모른다”고 밝혔지만, 인생의 불규칙하고 불공정한 진실에 정통한 작가의 기막힌 시나리오라고 믿는 편이 훨씬 그럴듯한 <버니>는 그의 안목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히치콕 스타일 대신 선택한 수다스러운 ‘소문’의 향연
링클레이터에게는 그러나 종종 이야기의 재료만큼이나 이야기의 형식 또한 중요하다. 다소 무리를 감수하고 말하자면, 그는 늘 현실에 극도로 근접한 허구를 통해 현실을 소화해온 작가다. <슬랙커> <패스트푸드 네이션> <비포 선라이즈> 등 그의 대표작들을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자주 주변 환경이나 직간접적인 경험으로부터 영화를 추출해왔다. <버니>에서도 그는 텍사스 출신 감독이란 장점을 십분 살려 실제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요한 영화적 형식으로 끌어들였다. 그렇게 완성된 <버니>에 대해 어느 기자가 “왜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않았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기자적인 접근법을 갖고 있다. 영화 속 인터뷰들에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다 대본으로 만들어지고 리허설을 거친 것들이다.” 링클레이터의 말대로 어떤 사건도 어느 정도의 서사적 재구성 없이 인간의 뇌를 통과할 수는 없기에 <버니>에서도 소문이라는 형식이 중요하다.
그 형식 때문에 <버니>가 오랫동안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각본만 놓고 본다면, 투자자들이 히치콕 영화를 예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프랑스영화더라고 불평을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원래도 수다스러운 영화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는 링클레이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문의 형식을 고집했다.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에 내레이션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작은 남부 마을의 가십처럼 다루어야 했다. 그것이 나를 비롯한 모두가 이 이야기를 흡수한 방식이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의 말, 말, 말이 ‘착한 가해자’ 버니와 ‘나쁜 피해자’ 마조리의 이야기를 실어 날라야만 했다. 그렇듯 사태의 표면에 집중한 형식은, 모호한 진실과 적정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더욱 섬세한 블랙코미디를 완성하는 데도 일조했다.
결국 <버니>의 관객에게 주어진 것은 진실을 대체한 소문뿐이다. <비포 선셋>에서 제시의 소설이 시간에 부식된 기억을 대신했듯 말이다. 그 결과 소문과 진실, 허구와 실제 사이의 위계는 희미해지고, 인생은 링클레이터의 말마따나 “고등학교나 다름없는” 곳이 된다.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으면 뭘 해도 잘되고, 인기가 없으면 뭘 해도 망하는 거다.” 어쩐지 저 ‘인기’라는 단어에 ‘팔자’라는 우리 표현이 겹쳐 들린다면 과장일까. 카시지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사”로 통했던 버니가 마조리를 죽였다고 자백한 뒤에도, 마을 사람들은 진실과 상관없이 그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그런가 하면 마조리는 불쌍하게 죽은 뒤에도 여전히 “성격 더러운 늙고 못된 년”이며, “콧대가 너무 높아서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작자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5달러만 주면 대신 죽여줄 수도 있다고 했다니까요.” 소문이 그녀를 두번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인생이 소문에 좌지우지되는 고등학교 생활과 다를 바 없다면, 혹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한편의 연극이라면, 도덕이며 윤리가 다 무슨 소용인가. 버니를 주인공으로 한 이 부조리한 상황극이 허무주의적 결론으로 치달을 찰나, 영화는 다시 법의 이름으로 그런 허무주의에 제동을 걸려는 듯하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심지어 목사까지도 버니의 무죄를 주장하는 카시지에서는 제대로 된 재판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대니 벅 검사는 샌 오거스틴 카운티 법정으로 재판을 옮기는 데 성공하고, 버니를 잘 모르는 배심원들로부터 종신형까지 이끌어낸다. 그러나 재판은, 적어도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다. 버니에게 적당한 형량은 몇년인지, 마조리가 얼마나 지독한 인간이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버니의 삶처럼 그 재판도, 우리의 인생도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객에 의해 엔딩이 결정될 수 있는 한편의 연극이라는 사실뿐이다. 제대로 된 미소를 걸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마조리의 입술 사이로 어떤 진실이 새어나오고 있다면, 그것뿐이다.
텍사스 유머를 알아?
텍사스 출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로컬영화에 대해
문득, 얼마 전 사석에서 모 선배가 “미국영화는 지리학의 영화, 유럽영화는 기후학의 영화”인 것 같다고 거칠게 나누어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모든 미국영화와 유럽영화에 적용 가능한 명제는 아니겠지만, 링클레이터가 유럽적인 감독이라는 편견을 희석시키기에는 제법 요긴한 인용문일 듯하다.
링클레이터는 미국에서 종종 유럽적인 감독으로 분류되어왔지만 실은 누구보다 미국적인 감독 중 하나다. 한국 관객이 그의 ‘화술’에 홀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정보 중 하나가 그가 미국 남부 텍사스 출신의 감독이라는 사실. 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20대에 오스틴으로 이사해 친구들과 ‘오스틴 필름 소사이어티’를 결성했으며, 데뷔작을 내놓은 뒤에는 ‘디투어 필름프로덕션’이란 영화제작집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텍사스주 경계 내에서 영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데뷔작 <독서로 낙제하는 법을 배우긴 불가능해>부터 <버니>까지 그가 만든 작품 절반 이상이 텍사스에서 만들어졌다.
텍사스에서 만들었다고 다 텍사스영화는 아니지만, 링클레이터의 영화들은 그 지역의 특별한 문화나 사회현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의 초기작들(~<서버비아>)은 대부분 실험적인 형식 아래 텍사스 청년들의 삶의 이모저모를 다루었다. 그런가하면 텍사스의 전설적인 은행 강도단 형제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뉴튼 보이즈>나 텍사스를 발판으로 한 도축산업의 병폐를 극영화로 다룬 <패스트푸드 네이션>도 있었다. 소재와 무관하게, 그는 할리우드 주류영화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뭉뚱그려 이야기되어온 남부인들의 문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해왔다.
<버니> 역시 그가 텍사스 출신 감독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영화다. 동부 텍사스 카시지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으는 일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미묘한 터치로 편집해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그가 텍사스인으로서 지닌 감수성이 요구됐다. 영화 완성 뒤 카시지와 오스틴에서도 시사회를 가진 그는 “그 지역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디테일한 유머가 있다. 그런 걸 알아줄 때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혼한 부모 아래서 자란 소년의 성장과정을 다룬 그의 차기작 <보이후드> 역시 텍사스에서 촬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