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상업영화를 준비 중이던 이병헌 감독은 자신이 겪은 제작 분투기를 독립영화로 만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은 것만으론 모자라 자비까지 털어넣었다. 페이크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힘내세요, 병헌씨>에는 ‘감독 이병헌’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겪는 고충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제목의 긍정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영화 <과속스캔들>과 <써니>를 각색한 이병헌 감독은 시종일관 이 ‘비극적’ 상황을 비틀고 희화화한다. 정신없이 웃다보면 왠지 내 모습 같아 씁쓸한 영화. 공감백배의 영화를 연출한 이병헌 감독을 만났다.
-입봉하지 못한 많은 감독들이 겪을 법한 이야기다. 그래서 다들 영화로 만들 생각은 안 하는데, 허를 찔렀다.
=2009년에 상업영화를 준비했는데, 계속 지연되더라. 이런 경우에 허송세월하는 감독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놀기도 뭣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쓰다 보니 재밌더라.
-영화 못 만드는 이야기를 그렸는데, 정작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이 됐다.
=건방진 생각이 있었다. 상업영화 잘해서 내가 하고 싶은 영화도 만들자. 그런데 상업영화로 안 풀려서 결국 독립영화를 하게 됐다. 너무 내 고민에 빠져 있지 말고 대중영화의 감을 가져가자 생각하고 만들었다.
-페이크다큐멘터리 형식을 활용했다.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다. 장난기, 농담 같은 톤이 내 영화와 잘 어울리더라. 영화를 하다보면 누구나 카메라 포지션이나 화면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만, 이 장르라면 그 부분은 좀 접고 들어갈 수도 있다.
-휴먼다큐멘터리 <인간극장>류의 제작기를 소재로 했는데, 내용은 영화계 생태에 대한 비판이다.
=큰 틀은 전형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신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비틀어보는 거다. 그렇게 만들다보니 내 스타일이 나온 것 같다. 웃을까 말까의 상태.
-본인의 실명 ‘이병헌’을 내걸었다. 페이크라고 하지만 실제 경험담도 다분히 반영됐을 것 같다.
=각색 과정에서 고민이 되더라. 어느 부분은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 않나 싶은. 그런데 개의치 말자 싶었다. 거의 대부분 영화계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이라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각색 작가로 꽤 잘나갔는데, 영화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국제통상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뒤 하릴없이 있다가 우연히 시나리오를 썼다. 공모전 상금이면 술값 제대로 벌겠다 싶었다. 당연히 떨어졌다. (웃음) 7전8기로 붙었고, 처음 쓴 작품은 제작사에 팔렸다. 좀 쓴다는 입소문이 퍼지니 아예 직업이 됐다. 글 작업을 하다보니 연출 욕심도 생긴 거고. 그래 천천히 준비하자, 영화과 들어갔다 치고 4년 투자하자, 했다.
-성공한 ‘강형철 감독’을 보면서 극중 이병헌은 자괴감을, 부러움을 느낀다. 실제 상업영화 입봉에 곤란을 겪어온 감독으로서의 의견을 말해달라.
=정말 말도 안되는 영화가 나오면 비판한다. 눈먼 돈이 아까워서 속 쓰리고 욕이 나올 때도 있지만, 잘 인정하고 타협하는 편이다. 다만 자본의 입김이 점점 세지는 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어쨌든 신인감독의 입봉에 중요한 건 결국 시나리오다. 내 시나리오에 ‘훅킹’이 없나 보다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다음엔 좀더 잘하자는 고민을 하면서.
-이병헌 감독이 고향집에 갔을 때 아버지가 돈을 쥐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인물이 카메라를 향해 “감상적인 음악은 깔지 말라”고 요청하며 감정적 몰입을 깬다.
=내 이야기인데 신파적으로 갈 수는 없었다. 병헌이 ‘난 할 수 있어!’ 하고 다시 결심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코믹한 분위기를 노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영화인들의 상황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접근이란 점에서 감상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장편을 만들었다. 이번 제작 경험을 토대로 비슷한 방식의 작업을 계획 중인가.
=이런 작품은 당분간 못할 것 같다. 사람들에게 도움의 빚을 너무 많이 졌다. 원래 우리나라 최초의 응원단장을 다룬 가족드라마를 기획 중이었는데 제작 규모가 커서 투자가 잘 안된다. 각색을 다시 해볼까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