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lk]
[김용균] 지옥에서 돌아왔다
2013-07-05
글 : 이주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더 웹툰: 예고살인>의 김용균 감독

<더 웹툰: 예고살인>(이하 <더 웹툰>)은 <와니와 준하> <분홍신>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이은 김용균 감독의 네 번째 영화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실패” 이후 4년 만의 재기작으로 김용균 감독은 공포영화를 택했다. 공포영화 장르는 <분홍신> 때 이미 충분히 숙지했다. 결과적으로 <분홍신>은 <더 웹툰>의 좋은 밑거름이 됐다. <더 웹툰>은 <분홍신>과는 정반대로 “자극적인 이미지보다 공감가는 이야기”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대중적인 접점을 고려한 이 선택이 흥행으로까지 귀결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지만 개봉 전 언론시사회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었다.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두고 만난 김용균 감독은 꽤 여유있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200% 만족한다. 이 작품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 김용균 감독에게서 이 여유의 이유에 대해 들었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실패를 딛고 일어난 사람의 표정이랄까. (웃음)

-언론시사, 일반시사 때 관객 반응이 좋았다.
=영화에 대한 첫 번째 리액션은 기자들에게서 온다. 언론시사가 있던 주에 제일 긴장했는데 다행히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제작사인 라인필름의 이상학 대표가 <더 웹툰>의 시나리오작가다.
=이후경 작가가 써놓은 초고가 있었고, 그걸 이상학 대표가 오랫동안 각색했다. 한양대 영화과 선후배 사이인데, <더 웹툰> 이전에는 연이 없었다. 이상학 대표와 나의 공통점은 만화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만화를 존중한다는 점이다. 웹툰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게 된 이상 소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좋은 그림으로 승화시켰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웹툰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막막했고 막연했다. 만화,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의 웹툰 신은 특정한 한 사람의 천재적인 재능으로만들어진 게 아니라 팀워크로 완성됐다.

4년 만의 야심찬 기지개

-지난해 여름 <더 웹툰> 현장에 취재갔을 때 ‘이 영화는 이야기가 탄탄한 공포영화’라고 자신있게 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분홍신>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더 웹툰>은 차근차근,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이다.
=완결성 면에서도 더 애쓴 티가 나지 않던가? <분홍신>에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 서사다. 과거 무용수의 원혼과 현재의 주인공 선재(김혜수)의 이야기가 잘 붙지 않았다. 과도하게 호러 신들에 집중하면서 서사를 뭉개버리는 우를 범했다. 그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그 뒤 당분간은 공포영화를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웹툰>의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더 웹툰>에는 비슷한 패턴의 몇 가지 사연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 각각의 사연이 우선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이 갔고, 구조적으로도 잘 짜여져 있었다. 거기에 호러영화에 어울리는 자극성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쇼에 그치지 않을 거란 느낌이 왔다.

-결국 진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죗값을 치르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죗값을 치르는 과정이 단죄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인물들의 죄의식을 좀더 깊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주인공 지윤(이시영)의 이야기에서 깊게 들어갔다고 본다.

-원래는 더 가볍게 풀려고 했나.
=지윤의 과거가 밝혀지는 지하실 화재 장면은 결과적으로 이 정도의 에너지로 완성될 줄 몰랐다. 시나리오상에선 그저 인과 장면으로만 그려졌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시영씨의 연기를 보고 판단을 바꿨다.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촬영이었다. 그런데 온 힘을 다 바쳐, 서현이 가진 재능을 탐하는 지윤의 모습을 이시영씨가 연기해줬다. 첫 번째 테이크를 지켜보는 순간, 그냥 지나가는 신으로 연출하면 안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공감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 장면을 통해 인물의 죄의식을 깊게 건드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 화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분홍신>과도 상통한다.
=피해자처럼 보이는 가해자가 주인공인 것은 클리셰이기도 해서 특별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지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못 가진 것을 강렬하게 욕망했던 것 같다. 나이도 들고 실패도 해보니까 그게 다 부질없었구나 싶다.

-호러 신들은 <분홍신>에 비해 덜 자극적이다.
=자극적이라고 해서 그게 과연 더 공포스러운가 생각해봤다. 아닌 것 같다. <분홍신> 때는 확실히 호러 신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과유불급이었다. <더 웹툰>에선 과유불급을 경계했다. 더불어 <분홍신>보다 더 대중적인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사람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무서운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 않았다. 대신 호러 신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도록 신경 썼고, 창의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염장이 조씨가 관 안에서 꽁꽁 묶여 죽는 장면은 백지상태에서 만들어낸 장면이다. 호러 신보다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의 리듬이었다. 최근의 호러영화가 스스로 관객의 신뢰를 깎아먹은 부분이 있다. 스스로 천대받는 장르가 돼버렸다. <더 웹툰>을 연출하면서 제일 크게 걱정했던 건 사람들이 아예 영화를 보러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었다. <분홍신>보다 더 재밌게 만들 자신이 있는데, 사람들이 호러 장르에 대한 편견 때문에 영화에 무관심하면 어떡하지 싶은 거다. 재밌다 혹은 재미없다 비판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영화를 안 볼까봐 그게 제일 공포스럽다.

<와니와 준하>
<분홍신>

<분홍신>은 <더 웹툰: 예고살인>의 밑거름

-스타 배우들과 주로 작업해왔다. <더 웹툰>에선 영수 역의 현우, 서현 역의 문가영 두 신인배우의 탄탄한 연기가 돋보인다.
=크게 알려진 작품이 없어서 그렇지 두 배우가 신인 아닌 신인이다. 내가 이들을 발굴했다고 잘난 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웃음)

-배우에게 구체적으로 연기 디렉션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던데.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누군가 현장에서 내가 연출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아무나 감독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현장 진행도 조감독이 다 하니까. 영화의 핵심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배우나 스탭들의 시도를 존중한다. ‘이건 아닙니다’ 하고 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들도 다 준비된 프로니까 믿고 가는 거다. 각각의 영역에선 그들이 나보다 더 전문가다. 그들이 맘껏 날아오르게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부추긴다. 더 좋은 생각이 없냐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당신이 디렉션을 해도 좋습니다’ 그런다. 배우들에게도 완급조절이나 리듬에 대해서만 코치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내가 연출하는 영화에 합류해서 놀라운 연기 코칭을 받고 연기 잘하는 배우로 거듭날 일은 없다. (웃음) 자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부추기고 거기에 내가 또 자극받고, 그런 과정을 <더 웹툰>에서도 경험했다. 중요한 건 팀워크다.

-CG를 이용해 웹툰의 레이어를 나누고 무빙을 주는 작업은 전에 해본 적이 없었을 텐데, 이러한 기술적 시도가 영화와 어떻게 잘 붙을지 걱정이 되진 않았나.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웹툰을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으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콘티 작가, 웹툰 작가, 촬영감독 등 각 파트의 사람들이 모여 무수한 회의를 거친 끝에 나온 결과물이 <더 웹툰>이다.

-<와니와 준하> 때는 애니메이션을 삽입했고,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선 게임룩 CG를 접목했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시도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은 있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결과적으로 실패를 했고. 그런데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새로운 시도들을 좋아한다. 그런 작업들이 재밌다. 그래서 ‘이런 거 해보자, 이런 장면이 잘 나오면 얼마나 좋겠어’라고 제작사, 투자사, 스탭들을 설득한다. 그리고 요구한다. 아이디어를 더 내달라고. 나는 원하는 목표만 얘기한다. 이 정도의 고퀄리티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러면 놀랍게도 다들 어디서 레퍼런스들을 찾아온다. 난 그걸 취사선택해서 발전시켜나가는 것뿐이다. 처음 새로운 기술을 시도할 때는 막막하고 두렵다. ‘이 짓을 내가 또 해야 하나. 굉장히 무모한 거 아닌가’ 잠깐 의심을 한다. 그런데 작업에 들어가면 이내 너무 재밌다. 연출자로서 그런 게 내 취향이고 개성인 것 같다.

-‘실패를 딛고 일어난 감독’이라고 반복해서 말하는데,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흥행 실패가 차기작을 준비하는 데 큰 마음의 짐이 됐나.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내용적으로 지지를 받았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잖나. 어찌됐건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핵심은 멜로다. 액션 신이나 게임룩 CG에 대한 아쉬움이 영화에 끼친 데미지보다 왕후와 이름 없는 무사의 감정을 설득력있게 풀어내지 못한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멜로를 잘 풀어내지 못한 게 연출자로서 뼈아팠다. 진짜 죽다 살아난 것 같은, 지옥에 갔다 돌아온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웃음)

<와니와 준하>를 뛰어넘기 위해 오늘도

-진짜 좋은 공포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또다시 공포영화를 연출할 생각이 있나.
=그럼. 진짜 좋은데 왜 안 하겠나. (웃음) 알다시피 뛰어난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만나기가 정말 힘들다. 내가 정말 자신없고 할 생각도 없는 장르는 코미디다. 유머러스한 드라마는 좋지만 100% 코미디영화, 웃겨야 한다는 강박을 가져야만 하는 영화는 할 생각이 없다. 예전에 뮤지컬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 뮤지컬 멜로장르를 해보고 싶은 바람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다. 아직 구체화된 건 아무것도 없다. 뮤지컬이 워낙 쉽게 덤벼들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와니와 준하> 같은 멜로영화를 다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나.
=있다. 그런데 상업대중영화 감독으로서 계속 고민하는 지점이 이런 거다. <와니와 준하>는 심심한 영화다. 영화에 애니메이션 장면을 삽입한 것도 이 심심한 영화를 어떻게 하면 덜 심심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거였다. 순하고 자극성이 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뮤지컬 장르 얘기를 한 것도, 음악적 요소와 순정멜로가 섞이면 덜 심심해질 것 같아서였다. 아직도 사람들이 나의 대표작으로 <와니와 준하>를 얘기한다. 데뷔작 <와니와 준하>를 뛰어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계속 노력한다. 다만 언제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더 웹툰>은 내용적으로 <와니와 준하>를 뛰어넘은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든 4편의 영화 중에서 관객이 제일 영화적으로 재밌다고 말할 것 같은 영화가 <더 웹툰>이 아닐까 싶다. <더 웹툰>을 하면서 첫 번째 목표가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거였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름 재기작이니 흥행으로도 검증받고 싶고. 당분간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그런 욕심을 더 내고 싶다. 재밌는 영화를 계속 만들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대표작도 바뀌어 있지 않겠나.

<불꽃처럼 나비처럼>
<더 웹툰: 예고살인>

“그렇게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이런 질문을 하시면 어떡해요. (웃음) 저에겐 비수와도 같은 질문인데. 이 기자님 호러영화의 주인공 해도 되겠는데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실패가 가져다준 상처에 관해 물어볼 때였다. 조심스레 물어본다고 했는데 그 조심스러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보다. 그 자리에서 사과 아닌 사과,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기자가 본디 액션이 크지 않고 리액션에 무척 서툰 사람이라고. 그러자 김용균 감독은 인생 선배로서 표현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었다. 결국 연애건 영화건 표현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대화는 매듭지어졌다. 김용균 감독의 영화에 왜 매번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는지 알 수 있는 대화이기도 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