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저녁, 어스름을 틈타 슬리퍼를 끌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집 앞 극장에 갔다. 극장은 한산했지만 그래도 부끄러워서 광고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한명씩 여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0대에서 50대를 망라하는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 김수현이 나오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상영관이었다. 우리는 서로 외면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맥락도 없이 웃통을 벗어 입장료 8천원의 최대 효용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삼동이(<드림하이>의 삼동이, 훤보다는 삼동이가 취향이다) 김수현을 보며 나는 아스라한 추억에 잠겼다. 남자 아이돌 그룹이라고는 신화와 god가 전부이던 시절, 미남 배우 보는 재미로 박봉을 견디던 영화 잡지사의 ‘일부’ 여기자들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월간 꽃미남>을 창간하는 꿈. 패션 잡지 기자들처럼 길거리 화보도 찍고 대학가로 모델 헌팅도 나가자고, 표지 선정 기준은 연기력이나 가창력이 아니라 오직 얼굴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면 월급을 내면서라도 회사에 다니겠다고, 밤새 키득거리곤 했다.
배우들의 얼굴만으로도 두 시간을 충분히 때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영화는 <젠 엑스 캅>이었다(그전까지는 그런 걸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설경구와 유오성, 송강호가 나타나기 전인 먼 옛날, 주연 배우=잘생긴 배우 등식이 90% 성립하던 시절에 자랐으니까). 잘생긴 사정봉과 안 잘생긴 이찬삼 말고는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배우들이 저기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영화가 끝나 있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1시간40분 동안 매우 즐거웠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상영시간 158분에 달하는 대작 <무사>도 나는 얼굴로 버텼다. 영화가 끝나고 모두 함께 주진모의 혀 짧은 소리로 “지금부터 공주를 구하러 간다!”를 외치며 놀았던 <무사>는 들인 돈에 비해 참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욕만 하기엔 뭔가 애매해서 어떤 영화 잡지는 기자와 평론가들에게 <무사>를 볼 것인가 보지 말 것인가 설문 조사를 했다. 그때 내 대답은 이랬던 것 같다. 정우성과 주진모의 얼굴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한 동료의 반응은 이랬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정원씨, 실망이에요.” 실망은 무슨. 나는 장국영 얼굴 한번 보겠답시고 영화 기자가 된 사람인걸, 타르코프스키 영화 한편도 안 봤다고 신인 감독한테 무시당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말한 그 어떤 영화도 전설적인 <늑대의 유혹>에는 댈 바가 아니다. 하도 산만하게 이랬다 저랬다 해서 영화 한편이 아니라 두세편을 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지만 주연이 강동원과 조한선. 배우들의 클로즈업이 한번 나올 때마다 극장 안은 눈이 부셨다. 강동원이 예뻐서가 아니라 객석에 앉아 강동원을 찍어대는 소녀들의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어떤 소설가가 내게 설경구와 유오성과 송강호처럼 미남은 아니지만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득세하는 한국영화의 현실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그러고 보니 나한테 그런 걸 왜 물었을까). 그래도 체통은 있어서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관객 확대 등에 대해 주워 섬기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왕 큰 스크린으로 보는 건데 정우성처럼 잘생긴 배우가 클로즈업으로 나오는 게 낫지 않아요?” 소설가의 얼굴은 낫지 않다고, 그러고도 네가 ‘생각이 있는 영화 주간지’ 기자냐고 말하고 있었다. 생각이 있는 건 영화 주간지이지 내가 아닙니다, 작가 선생님.
우리는 들어갈 때처럼 서로 외면하며 <은밀하게 위대하게> 상영관에서 나왔다. 서둘러 출구쪽으로 걷고 있는데 뒤에서 50대쯤 된 것 같은 아주머니의 행복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유, 어쩜 저렇게 잘생겼을까!” 아들보다 삼동이가 효자다. 8천원으로 그 정도면 괜찮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