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늙은 인디언이 1869년 벌어졌던 서부의 모험 이야기를 소년에게 들려주며 <론 레인저>는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상한 분장을 한 인디언 톤토(조니 뎁)와 어리숙해 보이는 신참내기 지방 검사 존(아미 해머)으로 둘은 악명 높은 살인마 부치 캐번디쉬를 잡겠다는 공통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부치 일당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이 악당을 힘들게 쫓는 동안 각 인물의 전사가 하나둘씩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고어 버빈스키의 전매특허인 화끈하고 유머러스한 액션이 끼어든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면 <론 레인저>는 제리 브룩하이머와 고어 버빈스키, 조니 뎁이 만든 ‘깔끔한’ 여름용 블록버스터로 보인다. 자연스레 서부를 배경으로 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론 레인저>는 마음 편하게 즐기기 어려운 영화다. 일단 이야기의 곁가지가 많다. 여기엔 악당에 대한 복수와 론 레인저의 탄생, 인디언 학살, 철도와 은광 개발을 둘러싼 개발 자본의 횡포,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제각기 존재한다. 이걸 다 얘기하려다 보니 한 이야기가 힘을 받을라치면 어김없이 다른 이야기가 등장해 흐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중 단연 최고의 걸림돌은 인디언을 그리는 영화의 두 가지 태도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톤토를 비롯한 영화 속 인디언들은 한없이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지만 어떨 때는 역사의 비극적인 피해자로 그려진다. 문제는 감독이 이 둘 사이를 마음대로 오간다는 것이다. 1분 전에는 비극의 분위기를 자아내더니 1분 뒤에는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톤토가 대표적인 예다. 결국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끝까지 메우지 못한 채 등장하는 엔딩 크레딧의 쓸쓸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론 레인저>는 올해의 괴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