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뒤 송대찬 프로듀서는 아는 프로듀서들한테 “감독들 눈높이를 이렇게 높여놓으면 이제 어떡하냐”는 원성을 들어야 했다. 감시자와 쫓기는 자의 시선을 매개로 영화의 주인공들은 강남 테헤란로, 이태원, 청계천, 여의도, 영등포, 종로 등의 대로를 종횡무진 활보한다. 한국영화에서 이 정도 스케일로 서울을 면밀하게 보여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감시자들>의 장점 중 8할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로케이션 뒤에는 송대찬 프로듀서의 주도면밀한 준비와 노력이 있었다. “어느 날 내 전화기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니 죄다 경찰이더라.” 송대찬 프로듀서, 그에게서 <감시자들>의 숨막히는 촬영 뒷이야기를 들었다.
-유내해 감독의 원작 <천공의 눈>에서 감시반원들의 노하우를 중시했다면, <감시자들>에서는 디지털 기기, CCTV의 활용도가 더 높아진 모양새다.
=양날의 칼이다. 자칫 잘못하면 휴대폰 내비게이션, 아이패드 같은 걸로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그러다 보면 관객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걸 포기해버리게 만들 수 있다. 감독님과 디지털 첨단 기기를 동원하되, 반은 그걸 보완할 아날로그적인 설정을 가져가자고 했다. 황 반장(설경구)이 오늘의 운세에 집착하고 2G폰을 쓰는데 새로 들어온 팀원 하윤주(한효주)는 스마트폰을 쓴다거나, 팀 작전은 말판으로 보여주는데, 하윤주는 옆에서 아이패드를 들고 있는 거다.
-도심을 횡적으로 이용한다는 면에서 ‘본’ 시리즈의 광장 추격 신의 영향도 커 보인다. 다양한 추적 스릴러를 텍스트로 삼았을 것 같은데,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참고 동영상만 모아놓은 게 1.6테라바이트였다. ‘본’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미드, 영드, 애니메이션 등 소문난 건 다 봤다. 벤 애플렉의 <타운>이나 미드 <보스>도 도움이 많이 됐다. 토니 스콧 영화는 상황실, 통제실이 항상 나와서 많이 봤다. 핵심은 이거였다. 좀더 한국적인 서울을 보여주자.
-원작이 좁은 홍콩의 마천루를 오가는 게임이라면, 서울은 지리적으로 폭이 넓은 모양새라 이 작품은 원작의 도심 활용과는 접근부터 달라야 했다.
=홍콩은 다 도둑 촬영했다더라. 숨어서 미니멀하게 찍은 게 화면에 다 보인다. 서울은 홍콩과 지형 자체가 다르다. 몰래 찍고 빠지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넓은 서울을 보여줄 방법이 필요했다. 강남 테헤란로는 다른 지방에서 도저히 재현이 불가능하다. 다시는 서울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못 보여준다는 각오로 임했다.
-영화 오픈 세트로서 ‘서울’의 커다란 장점은 무엇이었나.
=눈에 익숙한 곳이 많은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는 장소를 영화에서 보게 된다는 희열이 생각보다 크다. 서울은 겉에서 슬쩍 보는 것과 달리 골목마다, 지역마다 색깔이 다 다르다. 감독님이 본 곳과 내가 아는 데가 다 다르고 다양하다. 요즘은 로드맵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사무실에서 회의하다가도 바로 장소를 물색할 수도 있었다.
-촬영팀이 서울을 말 그대로 점거했다. 낮에 시민들의 발을 묶어두는 ‘만행’이었다.
=민폐 맞다. 엔딩 자막에 서울 시민과 경찰에 감사한다는 문구가 처음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잘되는 게 시나리오, 기획, 아이디어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스탭의 땀과 로케이션의 힘이 절대적이라고 본다. <맨 오브 스틸> 같은 할리우드영화는 우주인이랑 싸우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카메라 들고 길거리에 나가는 거다. 근데 다들 이해해준다. 해외에선 20분 편집본 보고 도대체 어떻게 서울에서 이걸 찍었느냐고 혀를 내두르더라.
-정말이지 그걸 어떻게 한 건가.
=5개월 전부터 철저하게 대안을 세웠다. 촬영 협조를 구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다. 누가 봐도 감동을 받을 수 있게 자료를 준비했다. 대충 촬영하고 빠지지 않는구나 느끼게 해야 한다. 안된다고 하면, 가능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그럼 맞춰보겠다는 자세로 접근했다.
-경찰청을 설득한 비밀 병기, 그 자료들이 궁금하다.
=공문은 간단했다. 일반적인 공문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성심껏 더한 자료는 협조를 구할 장면의 동영상 프리 비주얼과 상세하게 촬영 동선을 표시한 지도였다. 이 지도만 대략 40장이 넘었다. 이걸 만드는 팀은 아예 현장에 없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이 팀은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서소문 고가, 테헤란로, 가로수길 장면 모두 계속 상황을 체크하고 보완하면서 계획표를 만들었다.
-막상 촬영을 하다보면 도시가 그렇게 계획대로 움직여주는 똑똑한 배우는 아닐 텐데. 변수가 많았을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눈이다. 우리 영화가 10월28일에 크랭크인해서 3월4일에 촬영이 끝났으니 한겨울을 돌파한 거다. 계절감을 배제하려고 눈을 다 치웠다. 제작팀이 전날부터 가서 삽과 포클레인으로 다 치우는 거다. 유튜브에 군인들이 제작해 화제가 된 <레미제라블> 패러디 동영상, 딱 그 모양새다. (웃음) 오프닝 신인 테헤란로 촬영 때 특히 눈이 속을 썩였다. 전날부터 치웠는데 새벽부터 다시 오더라. 촬영을 시민들의 이동이 적은 주말이나 공휴에만 해야 하니 1월 촬영이 연휴인 3월2일, 3일로 늦춰졌다.
-서소문 고가에서 벌어지는 액션장면은 어떻게 촬영을 한 건가. 다리를 통째로 통제한 통 큰 촬영이었다.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해서 다산콜 120에서 안내를 할 수 있게 했고, 교통방송과 내비게이션 업체에도 협조를 구했다. 남대문서, 서대문서, 경찰청 다 양해를 구해서 생각보다 안 막혔다. 물론 그럼에도 다리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항의가 적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촬영은 다시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찍었다.
-경찰에 연행됐다는 이야기는 또 뭔가.
=서소문 고가 소스(배경이미지)촬영을 나와 모형 헬기팀과 특수촬영팀이 추가로 했다. 촬영 끝내고 감자탕 먹고 있는데 스탭한테 연락이 왔다. 우리 차 근처에 군인들이 와서 총을 겨누고 있다는 거다. 가보니 수도방위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 서대문 경찰서, 남대문 경찰서가 총출동해 있더라. 6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 항공법에 청와대 반경 2km 내에 종이비행기라도 띄우면 쏠 수 있다고 하더라. 그것도 모르고 헬기를 띄웠으니…. 명동에서 주차장 폭발 신을 찍을 때는 소방차 22대가 출동했다. 미리 남대문 소방서에 협조를 구했지만 사람들이 연기 나는 걸 보고 119에 신고를 한 거다. 결국 벌금 냈다.
-황 반장과 하윤주가 땅에 발을 붙이고 도심에서 움직인다면, 제임스(정우성)는 주로 옥상을 이용해 도심을 꿰뚫는 또 다른 감시의 눈이 된다.
=뱅뱅사거리에는 워낙 개인 소유 빌딩이 많아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조차 힘들다. 이유진 대표님 인맥을 다 동원했다. 옥상에서 활동하는 제임스가 등장하는 장면은 사실 영화적 장소가 가장 많았다. 설정이 테헤란로라면, 일단 테헤란로에서 걷는 장면을 찍고 계단은 상암동으로 가서 찍고, 명동 가서 옥상을 찍은 뒤 이걸 다 조합해서 한 장면으로 만드는 거다. 빌딩 장면은 대부분 다 이렇게 동선을 쪼개 촬영해서 많이 힘들었다.
-감시반원이 활동하는 좁은 도심 도로에서 촬영한 장면의 비중도 크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게 스테디캠이다. 할리우드영화나 미드를 보면 안정적으로 스피디하게 동선을 활용하는데 그게 다 스테디캠의 몫이다. 우리에게도 아시아 최고 스테디캠 전문가 여경보 촬영기사가 있다. 여경보 기사가 촬영 4개월 내내 25년간의 본인의 노하우를 다 풀어내주셨다. 지하철에서 뛰어가는 장면, 비좁은 통제실, 정보분석실 모두 스테디캠으로 촬영했다. 여경보 기사도 이렇게 전체 영화에 매달리긴 처음이라더라. 아니나 다를까 다른 현장에서 항의하더라. 여경보 기사를 너희가 독점하면 어떡하냐고. (웃음)
-오해도 많이 사고 싫은 소리도 많이 들을 자리다. 조의석 감독 말로는, “송 프로듀서는 똑 같은 말을 해도 욕먹고 오해 사는 스타일”이라더라. (웃음)
=감독, 촬영감독, 무술감독, 배우를 대신해 누군가는 이쯤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오지랖이 넓은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런 순간 내가 나서는 편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게 중요하지 욕먹는 건 무섭지 않다. 64회차로 이 촬영을 끝낼 거면 급하고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조의석 감독은 그래서 좋다더라. 나서서 나쁜 역을 대신 해주니.
=그런데 난 감독님한테도 막 한다. 너무 재미없다고 막말한다. (웃음)
-<초능력자>(2010)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강제규 필름과 봄을 거쳤고, 이유진 대표가 영화사 집으로 독립하면서 같이 왔다. <그놈 목소리>(2007)부터 <행복>(2007),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전우치>(2009), <내 사랑 내 곁에>(2009) 제작부로 참여했다. 대표님이 5년만 버텨봐라 했는데, 지금 생각은 뭐하러 나가서 영화사를 차리나 싶다. (웃음) 그만큼 한국에서 제작을 한다는 게 힘들다는 거다. 집도 이제 중견 제작사가 됐다. 투자사나 배우도 당연히 신생 제작사보다는 우리에게 더 관대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검열이 더 필요한 때다.
-준비 중인 작품은 무엇인가.
=우리끼리 뽑은 최우수 팀으로 제작팀이 뽑혔었다. 서울을 막은 공로가 크단다. 크랭크업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마디했다. 당분간은 좀 쉬려고 한다. 정말 힘들었다. (웃음)
인터뷰 때 송대찬 프로듀서가 촬영 과정의 이해를 돕겠다고 챙겨온 ‘13회차 영등포 유흥가 거리’의 촬영 자료를 봤다. 몇 십장의 지도에 촬영 동선부터, 배우 지침 사항, 스탭 간식 차 위치, 인근 화장실 위치는 물론이고 촬영에 협조적인 곳, 섭외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건물주에 대한 특징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감시자들>의 매 장면은 이렇게 편집증에 가까운 조사가 낳은 자료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