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만화가 원작인 영화로, ‘테르마이’는 로마의 대중목욕탕을 일컫는다. 목욕탕 설계사인 루시우스(아베 히로시)는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욕탕에서 수영을 하는가 하면, 잡상인이 활보하는 혼잡스러운 목욕탕에 환멸을 느낀다. 어느 날, 소란스러움을 피해 탕 속으로 잠수를 한 그는 욕조에 구멍이 있는 걸 발견한다. 구멍에 손을 넣고 어찌 된 영문인지 조사하던 순간, 강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구멍 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잃었던 그는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현대 일본의 대중목욕탕이다. 처음 듣는 언어에 생김새도 희한한 일본인들을 보고 루시우스는 변방에서 온 노예들이라고 생각한다. 루시우스는 목욕탕을 둘러보기 시작하고 노예의 목욕시설에 깜짝 놀란다. 욕실 벽면의 그림, 수도꼭지, 선풍기, 마사지 벨트 기구 등 신기한 물품들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그는 다시 정신을 잃고 눈을 뜨자 로마로 돌아오게 된다.
루시우스는 신비로운 경험을 토대로 획기적인 목욕탕을 만들게 된다. 그가 만든 목욕탕은 로마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그의 명성은 높아진다. 루시우스의 이런 기이한 체험은 몇 차례 되풀이된다. 그 과정에서 개인 욕조, 월풀 욕조, 노천 온천, 비데 등 진화된 목욕 시설을 접하게 되고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로 로마의 목욕 문화를 개척하게 된다. 루시우스는 날로 유명해져 황제의 부름까지 받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은 무거워져간다. 자신의 고유한 창작이 아닌, 그것도 노예의 목욕 문화를 모방했다는 생각에 떳떳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문제 해결을 위해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체험을 자초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배경은 서기 128년, 로마 제14대 황제인 하드리아누스 통치 시절이다. 이 영화는 판타지 코미디물이자 팩션(faction)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로마인들은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고 굵직한 사건 역시 사실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로마 시민의 단결을 위해 노력했다거나 사랑하는 미소년을 이집트 나일강에서 잃고 크게 상심했다거나 하는 에피소드는 역사적 기록과 일치한다. 하지만 루시우스의 활약으로 후계자가 바뀐다거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허구다. 주인공과 로마의 주요 인물의 배역은 일본 배우가 맡고 있고 로마인들이 일본어를 쓴다. 정작 루시우스가 일본에 출현하는 장면에서는 라틴어를 쓰고 있어 재미있다. 과거와 현재, 로마와 일본을 오가고 일본어와 라틴어가 뒤섞여 있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 불편함은 전혀 없다. 감독의 전작 <노다메 칸타빌레>를 떠올리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