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돌아온 무법자
2013-07-24
글 : 주성철
‘WANTED, 장고에서 장고까지’ 기획전 7월23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장고>

세상의 모든 ‘장고’를 모았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오는 7월23일(화)부터 8월1일(목)까지 마련한 ‘WANTED, 장고에서 장고까지’ 기획전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를 비롯해, 그 오리지널인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1966) 및 미이케 다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2007), 그리고 또 다른 변형 장고가 등장하는 1960∼70년대 한국의 ‘만주 웨스턴’ 등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서 변형된 장고와 서부극들을 소개한다.

장고는 튜니티와 더불어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가 낳은 대표적인 흥행 캐릭터다. <황야의 무법자>(1964)를 시작으로 세르지오 레오네가 ‘발명’했다고 얘기되는 스파게티 웨스턴은 기존의 정형화된 미국 서부극의 관습에 반기를 든 이탈리아산 서부극을 말한다. <영화 장르: 할리우드와 그 너머>를 쓴 배리 랭포드는 “서부극처럼 미국 삶의 상상계 구조에 너무도 촘촘히 짜여 있는 장르가 상이한 시기, 다른 나라의 내셔널시네마로 성공적으로 흡수된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름 없는 남자’로 등장했다면,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에서 프랑코 네로가 연기한 장고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대표하는 중요한 아이콘이 됐다. 한 마을에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과묵한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비슷하지만, 관을 질질 끌며 나타나 그 관 속에서 기관총을 꺼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악당들을 단숨에 궤멸하는 박력은 그보다 압도적이고 원초적인 쾌감을 선사했다. 정통 서부극의 영웅이었던 존 웨인과 달리 인상을 구긴 ‘귀차니즘’ 건맨들이 서부를 활보하게 된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서부극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임권택은 일제강점기의 만주를 무대로 한 이른바 만주 웨스턴 장르인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로 데뷔한 것에서 보듯 일찌감치 서부극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정창화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던 시절 조지 스티븐스의 <셰인>(1953)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공부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황야의 독수리>(1969)는 독립군 장(장동휘)과 그 아들을 자신의 양아들(김희라)로 키운 일본군 요시다(박노식)의 운명적인 대결을 그린다. 일본군 막사를 무대로 한 대결 신에서 임권택의 노련한 액션 연출을 엿볼 수 있다. <튜니티> 시리즈처럼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희극성이 극대화된 경우도 있다. 안일남의 <당나귀 무법자>(1970)에서 인기 코미디언 구봉서는 역시 이름 없는 남자로 등장해 조랑말을 타고 바에 찾아와서는 “막걸리 따블!”을 주문했고 시가 대신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직접적인 장르 크로스오버도 눈에 띄었다. 한(장동휘)이 강탈당한 독립군의 군자금을 되찾으려 애쓰는 김영효의 <황야의 외팔이>(1970)는, 두패 사이를 이간질해 큰 싸움이 벌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황야의 무법자>의 모방이자 ‘외팔이’라는 설정에서 홍콩 무협영화의 컨벤션까지 빌려와 접목했다. 장동휘, 남궁원, 허장강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력과 배신을 거듭하는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1966)의 변주이며, 이는 김지운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으로 이어진다.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에서 스키야키를 먹으며 카메오 출연했던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이 장구한 흐름을 마무리한다. 왕년의 오리지널 장고 프랑코 네로는 악랄한 대부호 칼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흑인 노예들간의 처절한 싸움을 즐기는 또 다른 부호 아메리고 베세피로 카메오 출연했다. 그런 그가 바에서 앞에 앉은 흑인 장고(제이미 폭스)에게 “이름이 뭐지?”라고 묻는다. 그렇게 백인 장고가 흑인 장고로 변주되기까지 거의 5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장르의 역사를 통틀어 왕년의 배우가 직접 등장해 이처럼 인종을 초월하여 캐릭터를 상속한 감동적인 예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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