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의 도쿄. 사창가에서 일했던 여인(에구치 노리코)은 일을 그만두고 소설가(나가세 마사토시)와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육체적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관계에서만 약간의 자극을 느낄 뿐이다. 한편 전쟁터에서 오른팔을 잃은 군인(무라카미 준)은 겨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내에게 ‘육체적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몸이 ‘특정 상황’에서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날부터 쌀을 미끼로 다른 여인들을 성폭행하기 시작한다. 패전이 확실시된 가운데 여인과 소설가는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서로의 몸을 탐닉하고, 군인은 계속해서 여인들을 폭행한다. 과연 이 세 사람의 잔혹한 운명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육체의 쾌락에 탐닉한다는 주제는 영화나 문학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일본 영화사만 한정해도 오시마 나기사, 마스무라 야스조, 이마무라 쇼헤이 등이 삶의 끝에 몰린 사람들이 어떻게 성에 집착하는지 그려왔다. 신예 이노우에 준이치 감독의 <전쟁과 한 여자> 역시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한 사람들이 어떻게 섹스를 통해 삶에 매달리는지 처절하게 그려낸다. 이들에게 섹스는 생을 포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붙잡는 지푸라기와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보여주는 몸부림은 전혀 에로틱하지 않고, 위태로운 느낌을 줄 뿐이다. 특히 피학적인 관계에서만 쾌락을 느끼며 자신의 몸조차 장난감으로 여기는 여인의 태도나 자신이 기절시킨 여자들에게만 성욕을 느끼는 군인의 모습은 이들의 욕망이 얼마나 죽음과 맞닿아 있는지, 동시에 죽음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지 드러낸다.
그리고 이들이 죽음에 집착할수록, 또는 죽음을 경유해서 삶에 집착할수록 선명해지는 건 몸의 이미지이다.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불감증에 걸린 여인의 몸과 불구가 된 군인의 몸, 마약에 찌든 소설가의 몸은 그 자체로 이들의 캐릭터를 설명할 뿐 아니라 일본사회에 대한 비유로도 읽힌다. 이러한 알레고리 자체가 지나치게 직접적이고 상투적이지만 영화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육체를 반복해서 그리며 익숙한 동어반복조차 낯설게 만든다. 결국 그 끝에 남는 것은 만신창이가 된 이들의 몸이며, 이들에게 남는 것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산다는 것 그 자체이다. <전쟁과 한 여자>는 그렇게 삐걱대는 몸을 가진 자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통해 일본사회의 어두움은 물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까지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