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겸손한 사기꾼들
2013-08-27
글 : 주성철
사진 : 최성열
<감기> 특수분장 셀(CELL) 곽태용, 피대성

Filmography

<군도: 민란의 시대>(2013), <감기>(2013), <베를린>(2012), <연가시>(2012), <하울링>(2011), <악마를 보았다>(2010), <황해>(2010), <박쥐>(2009),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해부학교실>(2007), <괴물>(2006) 등

<감기>가 보여주는 인간 살(殺)처분의 처참한 광경은 단연 압권이다. 구제역 파동 때 수백만 마리의 돼지를 구덩이로 몰아넣던 광경에 충격받은 김성수 감독은, 그것이 언젠가 인간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대재앙이라 여겼다. 밖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종합운동장 안에서, 굴착기가 비닐로 포장된 사체들을 구덩이로 쏟아붓는 장면은 실로 끔찍하다. 감염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비닐을 다 구하지 못했기에 각기 다른 색깔의 비닐들로 무질서하게 보디백이 만들어졌고, 개중에는 살아서 꿈틀대는 비닐까지 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가져온 대한민국의 지옥도다. <감기> 특수분장의 핵심도 바로 거기 있다. 하지만 ‘15세 이상 관람가’를 위해 보디백이 뜯어져 아수라장이 되는 컷들은 아쉽게도 편집되고 말았다. 감염과 훼손 정도에 따라 A급, B급 더미가 80여구 만들어졌고 그저 싸여져 있는 보디백은 400개 정도가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더미의 종합선물세트를 꿈꿨다.

동료였던 곽태용, 황효균이 지난 2003년 공동대표로 설립한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CELL)’은 사실상 지금의 한국영화 특수분장을 도맡아 하고 있는 메인 중의 메인이다. <쓰리, 몬스터>(2004)를 시작으로 <괴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 등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의 영화를 언제나 함께해왔으며 지금도 개봉예정인 <화이>를 비롯해 <군도: 민란의 시대> <친구2> <역린> <해무> <협녀>를 동시에 작업 혹은 준비 중이다. <설국열차>의 경우는 ‘스카이프’로 화상회의를 진행하며 초반 진행을 맡았다가, 이후 현지 스탭들이 합류하며 효율성 차원에서 하차했다. 그처럼 언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과거 특수분장 팀원으로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에 참여하며 더미에 눈을 떴던 곽태용 대표에게 <감기>는 ‘초심’을 일깨우는 작업이었다. ‘현장에서 호랑이 같았던 김성수 감독이 세월이 흘러 유순해진(?)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낯선 즐거움이었다.

셀에서 <검은집>(2007) 작업으로 시작해 특수분장 7년차에 접어든 피대성 팀장은 양산 이마트와 종합운동장, 행신 지하차도 등을 누비며 <감기>의 실질적인 현장업무를 도맡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의외로 대규모 작업이 아니라, 영화 속 미르(박민하)의 병세가 심해졌다 호전되는 상황을 각종 얼굴의 발진을 통해 미세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내가 민하의 얼굴에 붓으로 표현하면, 민하도 똑같이 내 얼굴에 낙서를 하려 했다. 내 얼굴을 민하의 스케치북으로 희생하며 병세를 표현했다”면서 웃는다. 또한 의외의 작업은 방역 마스크였다. “특수소품 제작도 우리의 중요한 일이다. <감기>에서 주요 인물들의 방역 마스크를 직접 만들었는데, 마스크를 쓴 채 무리없이 대사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정도 보이게끔 투명도 등 여러 실험을 거쳤는데 이질감 없이 기성품처럼 보이는 게 중요했다”는 게 곽태용 대표의 얘기다.

특수분장은 진짜 같은 가짜를 향한 열정의 세계다. 곽태용 대표는 “우리가 친사기가 잘 먹힐 때 무한한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올드보이>(2003)를 보며 특수분장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피대성 팀장은 “특수분장은 정답이 없는 세계다. 또한 개인적인 성향을 많이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셀의 모토는 겸손”이라고 입을 모았다. 감독과 관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우리의 실험도 포기할 수 없다는 다짐이었다.

<인류멸망보고서>(2011)의 로봇

“첫 회의 때 로봇 의상으로 가자고 했는데, 며칠 밤새워서 애니메트로닉스(원격조종으로 움직이는 기계장치)로 제작해 봤다. 내(곽태용) 욕심으로 그렇게 한 건데, 김지운 감독도 그 실험에 흔쾌히 시간과 비용을 허락해주셨다. 몇날 며칠 밤을 새우면서도 즐거웠던 작업이다.” 애니메트로닉스 분야와 본격 크리처물을 향한 셀의 포기할 수 없는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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