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공간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면
2013-09-03
글 : 윤혜지
사진 : 오계옥
<숨바꼭질> 조영욱 음악감독

Filmography

<깡철이>(2013), <숨바꼭질>(2013), <베를린>(2012), <신세계>(2012), <전설의 주먹>(2012),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부당거래>(2010), <이끼>(2010), <박쥐>(2009), <비열한 거리>(2006),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가을로>(2006), <친절한 금자씨>(2005), <혈의 누>(2005), <발레교습소>(2004), <올드보이>(2003), <클래식>(2002), <공동경비구역 JSA>(2000), <텔미썸딩>(1999), <해피엔드>(1999), <접속>(1997)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린 시절 즐겨부르던 동요가 스릴러영화의 테마곡으로 등장한다면 어떨까. 조영욱 음악감독은 “너무 뻔한 선곡이라 개인적으로는 반신반의했다”지만 관객은 어린아이가 부르는 섬뜩한 숨바꼭질 노래에 단단히 홀린 것 같다. 그는 <숨바꼭질>에 김미희 프로듀서와의 끈끈하고 오랜 인연으로 참여하게 됐다. “데뷔작이라 조심스러웠는지” 허정 감독은 “공간의 차이를 음악에서도 잘 표현해달라”는 요구 외엔 첨언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테마곡을 최소화하고 영화의 호흡과 리듬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음악을 만들어갔고, 관객은 그의 의도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레코드판을 모았을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레코드회사 서울음반에서 일하다 영화 제작에 흥미를 느껴 영화계 근처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명필름의 심보경 프로듀서가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던 그를 찾아왔다. <접속>의 음악을 맡아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결국 제작자가 아닌 음악감독으로 영화계에 데뷔하게 된 그는 데뷔작인 <접속> O.S.T 앨범을 70만장이나 팔아치우며 유명세를 탔고, 이후 “절친”이기도 한 박찬욱 감독 등과 협업하며 현재까지도 국내영화음악계의 한축을 든든하게 지탱해오고 있다.

“어려서부터 빌보드 차트 순위를 외워가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온 그의 선곡 기준은 무조건 시나리오다. “영화음악 작업은 영화의 음악, 사운드, 대사를 섞어 음반 위에 또 하나의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라 굳게 믿는 그의 첫 번째 원칙은 “시나리오에서 음악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이다. “화면에서 느껴지는 건 음악으로 구구절절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화면에서 느끼기 어려운 것들을 표현해내는 것이 음악의 역할 아니겠나. 박찬욱 감독이 만든 화면은 그래서 음악을 입히기가 좋다.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니까.”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조영욱 음악감독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언제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다. 한 작품 끝내면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멋도 모르고 (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만큼만 아니까 느끼는 어려움도 그만큼이다. 하지만 (두손을 모아 원을 만들며) 이만큼 알게 되면 똑같이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 싫증내지 않고 영화음악을 하게 만드는 동력이고, 매력이다. “O.S.T 앨범을 만들 땐 곡 순서와 배열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사운드와 대사도 섞어가며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창작물이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옛날엔 사람들이 음반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영화의 감흥을 되새겼는데 지금의 관객은 대개 한두곡의 음원을 선택해 듣는다.” 앨범을 만드는 수고가 점점 희석돼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그는 영화음악이 닿을 수 있을 또 다른 영역을 찾는 중이다. 한국영화 중에선 드문장르인 SF를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도 그래서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깡철이>의 믹싱 작업을 위해 녹음실로 들어갔다. “신파가 되지 않도록 덤덤한 느낌의 음악”을 입힐 생각이다. “깡철이가 어떻게 삶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되는지”는 그가 녹여넣은 음악으로 더 생생하게 알게 될 것 같다.

에릭 홉스봄의 저작들

90년대 후반, 조영욱 음악감독이 영화음악을 시작할 무렵 접한 책들이다. 20세기를 온전히 몸으로 겪어낸 홉스봄의 저작들을 통해 그는 세상을 읽는 시선을 길렀다. “영화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인문학적 소양이다.” 그의 음악인생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이 책들을 후배들에게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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