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귀신같이 따라붙는 공포 <컨저링>
2013-09-11
글 : 이화정

흥건한 피도, 경악할 만큼 공포스러운 비주얼도, 불쾌한 사운드도 없다. <쏘우> 시리즈의 제임스 완 감독은 <컨저링>에서 호러물에 흔히 남용되는 이 모든 요소를 제거한다(더군다나 <쏘우>의 연출가와 <하우스 왁스>의 각본가가 만든 걸 상기한다면 이건 엄청난 절제다). 심리적인 공포 분위기만 자아냄으로써 그 효과를 달성하겠다는 무모한 도전장인데, 결과적으로 제임스 완 감독은 엄청난 흥행으로 이 싸움의 승자가 됐다.

영화는 1970년대에 활동했던 미국의 유명한 초자연 현상 전문가 워렌 부부를 구심점으로 한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당시 그들이 겪었던 사건 파일 중 가장 미스터리하고 강력한 실화를 토대로 해 시작되는데, 새로 이사 간 집에서 기이한 현상을 마주하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페론 가족의 일화가 그것이다. <엑소시스트>류의 영화와 귀신들린 집을 소재로 한 <우먼 인 블랙> 같은 영화들이 당장 떠오를 정도로, 스토리라인으로만 봐서는 그닥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

제임스 완은 장르의 익숙한 설정을 차용하는 데 개의치 않아 보인다. 오히려 그는 그 지점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마음껏 요리하고 활용한다. 전반부에 공포의 실체가 등장하지도 않는데 분위기 조성만으로 관객은 마치 귀신들린 집에 영화 속 피해자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심리적인 압박을 받게 된다. 숨바꼭질, 오르골 같은 지극히 뻔한 소재가 주는 공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귀신같이 따라붙어 올 테니 기대해도 좋다. 영화 초반 짧은 퇴마 에피소드까지 합쳐져, 워렌 부부의 퇴마 활동상은 마치 <X 파일>의 멀더와 스컬리의 파트너십을 연상케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속편이 제작 중이다. 퇴마사 워렌을 연기한 베라 파미가의 연기가 압도적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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