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심심하다. 딸과 남편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렸다. 남편은 고단하다. 소극적인 아내와 고된 업무로 부부 관계도 시들해져버렸다. 다시금 연애 초 설렘으로 돌아가고 싶은 낭만파 남편은 아내에게 익명의 연애편지를 보내기로 작정한다. 남편이 보낸 연애편지는 뜻하지 않게 부부간의 심리적 문제로 비화된다. 남편은 자신이 편지를 보냈음을 알리지 않고 아내가 상상 속에서 다른 남자의 연애편지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엿본다. 한편 아내는 남편이 편지를 보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조금씩 흔들리며 낯선 남자와의 불륜에 대한 주저와 기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낭만적 소망에서 시작된 편지는 부부 사이의 의심과 고통의 빌미가 되고 남편과 아내는 최종 결단 앞에 서게 된다.
영화는 부부가 결혼이 지닌 숙명의 불가피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 어떠한 발견이나 숙고도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권태의 반복, 바깥의 남편, 집 안의 아내라는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는 영화 바깥이 없기 때문이다. 연극적 무대를 활용한 한국적 <도그빌>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라스 폰트리에의 작품에는 추상적 공간을 압도하는 시대와 공간적 맥락이 강력하게 존재한다. 영화는 연극 무대만 빌렸을 뿐 연극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형식상 시추에이션 드라마에 가깝다. 소설 문체를 잘 살린 내레이션은 너무도 과도하여, 왜 우리가 이 소설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줄곧 가시지 않는다. <낭만파 남편의 편지>는 1천만원의 예산으로 7회차에 완성한 영화다. 13평의 소극장 무대 공간은 적은 예산으로 효율적으로 찍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원작은 안정효의 동명 소설이다. 고 박철수 감독의 마지막 기획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