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
[영하의 날씨] 앞에서 날아오는 돌
2013-09-30
글 : 김영하 (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 김현영 (일러스트레이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와 거스르는 자의 대결, <관상>

점을 보러 갔었다. 대학교 4학년 때니 벌써 꽤 오래전의 일이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나로서는 내 앞날이 꽤나 궁금했던 참이었다. 한 여대 앞에 있던 그곳은 여느 점집들이 그렇듯이 “사주, 팔자, 궁합, 관상” 등 그 업계에서 다루는 주 종목들을 다 다루고 있었고 겉으로 봐서 특별할 점은 하나도 없었다. 허름한 ㄷ자 모양의 단층 한옥의 문을 밀고 들어가니 키가 작고 통통한 젊은 여자가 접수를 받고 있었다. 이 집은 그 무렵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어리고 신통한 남자 점쟁이가 손님을 가려받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이 오면 바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여대생들 사이에 앉아 한 시간쯤 기다리자 내 차례였다.

명산의 이름에다 ‘도령’을 붙여 예명으로 삼은 그 점쟁이는 보기에도 남달랐다. 도령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머리를 길게 길러 땋았는데 발치에 닿을 정도였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크고 시원시원했고 손가락들은 희고 무척이나 길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나에 대해 좀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사주를 물어 그것을 흰 종이에 받아 적더니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사주를 받아 적은 종이의 여백에 알 수 없는 한자를 휘갈겨대더니 문진을 들어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의 첫 질문이었다.

“글쎄요. 혁명가?”

무슨 심사로 그런 장난기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령의 다음 행동을 보면 내 대답이 그의 흥미를 돋운 것은 분명했다. 도령은 접수를 받는 여자(누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를 불러 얼마 동안 손님을 받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입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이 들지요.”

때는 1989년이었다. 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지만 정작 그 선거로 뽑힌 것은 노태우였다. 노태우 정권은 임수경씨와 고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이어 전대협의 격렬한 통일 투쟁에 직면하자 공안 정국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학생운동이 기대고 있던 정신적 한축,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반면 한국 자본주의는 88올림픽 이후 호황을 구가하기 시작하는 그런 무렵이었다.

“여기 앉아서 하루 종일 어떤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될지를 궁금해하는 여대생들을 보고 있지만 저도 국운이라는 것을 봅니다.”

‘국운’이라는 말을 던질 때 그의 눈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

“이 나라가 앞으로도 꽤 흔들리기는 하겠지만 뒤집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도령의 단언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혁명가를 꿈꾸신다면 감방에나 들락거리다 인생이 끝날 겁니다. 당신 사주에는 그런 운이 없습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할 수는 있지만 힘이 든다는 게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는 자기가 적어놓은 해독 불가능한 한자들을 잠깐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나무입니다. 나무라서 물을 가까이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큰 바위가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화가 나겠지요. 당신은 지금 세상에 대해 무척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고 바위는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을수록 부드러워지고 유순해질 겁니다.”

나무와 바위의 비유는 꽤나 근사했다. 나는 언제나 비유와 대구로 이루어진 수사에 잘 설득되곤 했다.

“그럼 저는 어떤 일을 해야 되겠습니까?”

“사주에 말씀 언 자가 두개나 들어 있습니다. 말과 글로 먹고살게 될 겁니다. 그쪽으로 가면 40년 대운입니다.”

그와 나는 한 시간 반이 다 되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에 네명의 손님을 받는다는 그로서는 큰 선심을 쓴 셈이었다. 나 개인의 운명에서부터 이른바 국운까지 화제는 다양했다. 문득 이런 점쟁이 술친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오가는 김에 나는 그가 손님을 가려받는 이유도 물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꼼짝도 못하고 앉아서 손님을 받는 일인데, 관상이 너무 나쁜 손님이 들어오면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듭니다. 나쁜 얘기를 있는 그대로 해주자니 그것도 못할 짓이고 거짓말로 대충 둘러대는 것도 양심이 허락하지를 않고, 그래서 그냥 돌려보냅니다. 아예 듣지 않는 게 좋은 말도 있지요.”

밖에서 누이가 자꾸만 눈치를 주는 통에 우리의 대화는 그쯤에서 끝이 났다.

시간이 흐르자 그의 예언은 하나둘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듬해 나는 대학원으로 진학했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년 뒤쯤엔 잡지 등에 고료를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얼떨결에 단행본도 출간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작가로 등단을 했고 모교의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말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라디오 진행자나 교수, 시나리오작가 같은 일들을 거쳐 마침내는 전업 소설가로 먹고살게 되었으니 말과 글로 먹고살게 되리라던 그의 예언은 잘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어느샌가 나는 나를 짓누르던 바위의 압력도 더는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그 무엇에도 크게 분노하지 않는 유순한 인간이 되었다. 국운 역시 그가 예측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령을 만난 지 한 십년쯤 지났을 때였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문득 그가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그의 운도 그새 크게 달라져 있었다. 다 쓰러져가는 한옥에 들어 있던 그의 점집은 지하철역을 코앞에 둔 대로변의 빌딩으로 옮긴 상태였고 예약은 이미 3년치가 다 차 있다고 했다. 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죽은 사람 사주를 들고 몇몇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오직 그와 또 한명의 점쟁이만이 “왜 죽은 사람 사주를 갖고 장난을 치느냐?”라고 말해 갑자기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의 주인공 김내경(송강호)은 1989년에 내가 만난 도령처럼 자신만만한 캐릭터다. 시골 구석에서 나름 유명했던 그는 기회가 주어지자 거침없이 ‘국운’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 도령과 달리 김내경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그 분투는 결국 운명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관상>은 ‘인간은 운명을 절대로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하는 보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수양대군과 김종서쪽에서 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고 오직 극 안에서의 모습만 볼 때) 김종서는 관상, 즉 운명을 있는 그대로 믿은 자요, 수양대군은 과감하게 그것을 바꾸고 속인 자다. 영화 속의 수양대군은 예언이 가진 암시적 속성을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가로 자리를 잡은 뒤에 머리를 길게 땋은 그 도령의 점괘 얘기를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1989년에 나더러 ‘말과 글로 먹고살게 되리라’고 단언한 사람은 내 주변에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 오직 그 도령만이 예외였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정해진 운명을 읽어주듯 담담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나는 그의 말을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여기고 피하지 않고 맞았던 셈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설 따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암시가 꼭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서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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