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서인국] Perfect Fit
2013-10-28
글 : 윤혜지
사진 : 최성열
<노브레싱> 서인국

서인국은 토너먼트에 강한 남자다. 2009년 여름, 오디션 프로그램인 Mnet <슈퍼스타K> 시즌1에서 72만명의 후보를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부터 그의 미래는 정해졌다. 데뷔의 발판을 마련해준 <슈퍼스타K>는 지금에 와보니 워밍업에 불과했던 것 같다. 얼마 전 그의 네 번째 출연작인 드라마 <주군의 태양>이 종영했다. 다시 새로운 트랙을 돌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지금, 가수 겸 배우로 진짜 슈퍼스타가 되어가는 서인국을 만나 숨차게 달려온 지난날에 대해 들어봤다. 그에게 배우의 삶을 열어준 드라마 <사랑비>부터 개봉을 앞둔 영화 <노브레싱>까지 서인국의 배우인생 토너먼트를 차근히 되짚어보기로 한다.

[몸풀기] KBS 드라마 <사랑비>의 김창모

시골에서 올라와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수룩하고 우직한 소년. 활달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친구들간의 관계도 균형 있게 조율할 줄 안다.

“첫 연기였고, 어디서 뭘 배운 적도 없었어요.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시놉시스만 백번 넘게 읽고 또 읽었죠. 대본은 서울말로 쓰여 있었어요. 생각을 하다가 감독님께 ‘사투리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했어요. 감독님이 무척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직 눈에 띄는 경력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다른 날 한번 더 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한번 더 준비해서 다시 뵀어요. 일부러 살도 찌웠냐고요? 시청자들이 날 못 알아보길 바랐어요. 배우들만 있는 판에 끼어든 게 죄송해서요. 가수 출신인 나로 인해 작품 이미지가 깎이거나 논란이 생기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머리도 더부룩하게 만들고, 커다란 뺑뺑이 안경을 쓴 것도 그래서였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을 좋게 보셨나봐요. 제법이라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덕분에 자신감이 조금 생겼어요.”

역시 관록은 무시할 수 없나보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로 가수 활동을 이어가던 서인국에게서 배우의 재능을 발견한 건 윤석호 PD였다. 울산 출신의 서인국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김창모 캐릭터가 호평을 얻자 서인국은 김창모의 조카인 김전설 역까지 따내 1인2역에 도전했고, 그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예선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윤윤제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소꿉친구인 성시원(정은지)을 누구보다 살뜰하게 챙기는 고등학생. 과묵하고 까칠하지만 사실은 속깊고 다정한 부산 사나이다.

“캐스팅할 때 실제로 경상도 출신 배우만 만나셨대요. 마침 제가 울산 출신이라 한번 보자고 하신 거죠. 은혜를 갚을 생각으로 시켜만 주시면 어떤 역이든 무조건 할 각오가 돼 있었어요. 지나가는 거지 역을 줘도 감지덕지겠다 생각했는데 윤제 역을 주신 거예요. 부담감도 심했고, ‘나 따위’가 멋있는 캐릭터로 주연으로 나선다니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티저가 나갔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이건 내가 판단할 게 아니구나. 난 최대한 완벽하게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구나. 신원호 PD님은 정말 은인이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절 이렇게 멋있게 만들어주셨으니까요. 그 뒤로 버릇처럼 생각하게 됐어요. 나는 서인국이지만 배우 서인국은 따로 있는 거라고요. 배우 서인국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자고요. 작품하기 전에 스탭들에게도 제가 아닌, 배우 서인국을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해달라고 부탁드려요.”

<응답하라 1997>은 ‘배우 서인국’을 논하는 데 절대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드라마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첫 드라마 주연작인 데다 배우 서인국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서인국의 두 번째 브라운관 도전기는 <슈퍼스타K>로 인연을 맺은 신원호 PD의 참신한 기획, 상대배우 정은지와의 완벽한 궁합과 제대로 맞아떨어져 더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뒤이어 MBC 주말극 <아들 녀석들>에서는 타고난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 이혼 당한 철부지 남편 역을 맡아 호평받았고, 최근 종영한 SBS 수목 미니시리즈 <주군의 태양>에서는 군인 출신의 보안팀장으로 분해 지고지순한 짝사랑의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본선 1차전] <노브레싱>의 조원일

어릴 땐 주목받는 수영 천재였으나 수영선수였던 아버지를 잃고 트라우마로 수영을 그만둔 한량. 자신을 돌봐주는 재석(박철민)의 도움으로 명문 체고로 전학 가 과거 라이벌이었던 정우상(이종석)을 다시 만난다.

“첫 번째 영화예요. 조용선 감독님은 현장에서 수시로 ‘우리 것’이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그 말이 좋더라고요. 그냥 출연작 중 하나가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내 것인 거예요. 당연히 하나하나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런데 제가 좀 그래요. 시키는 대로 잘 따라가는데 캐릭터에게 이게 맞겠다 싶으면 일단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봐요. ‘내’ 캐릭터에 욕심이 많은가봐요. 원일이를 하면서 한없이 밝아질 수 있었어요. 속내에 아픔이나 스트레스를 갖고 있으면 얼굴빛부터가 변하는데 원일이를 하면서는 내내 즐거웠어요. 감독님도 절 볼 때마다 ‘야, 원일이 같다!’고 하셨거든요. 그만한 칭찬이 어딨겠어요. 아마추어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어머니 아들이라 그런지 바다 수영은 곧잘 했어요. 그래도 정석으로 수영을 배우려니 힘들더라고요. 처음엔 25m 풀에서 해도 반도 못 가는 수준이었는데 이젠 수영선수들이 연습 때 쓰는 50m 풀에서 수영해도 거뜬해요.”

호흡을 멈추고 물살을 가르는 영법, 노브레싱. 경기의 맨 처음 또는 최후에 전속력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수영 방법이나 자칫하면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실제로 노브레싱을 시도하는 장면을 찍으며 서인국은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감독은 힘들면 나오라고 했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조금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숨을 참다가 심장에 무리가 왔다. 큰일날 뻔했는데도 “머리까지 울리는 느낌이었는데 살짝 어지러워서 물에서 나왔다. 신기한 경험을 했구나 싶다”며 배짱 좋은 말을 늘어놓는다. 몸을 격하게 쓰는 스포츠영화이다보니 자잘한 사고도 속출했다. 간단해 보이는 입수도 전문 선수가 아닌 배우들이 해내기엔 고달픈 구석이 있었다. “스타트를 잘못하면 머리를 땅에 박곤 한다. 다른 친구는 코를 박았고, 나도 팔꿈치를 박아 어깨를 다친 적이 있다. 뒤꿈치를 부딪쳐 크게 멍이 든 적도 있었다.” 강렬한 감정도 함께 표현해야 했던 액션 신에선 파워를 조절하지 못해 상대 배우를 다치게 한 적도 있단다. 서인국이 “예고편만 봤는데도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울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휴식]

“저요?” 질문이 끝날 때마다 자신을 향한 말이었는지 재차 물어오는 이상한 말버릇이다. 간혹 사람 서인국에게 묻는 것인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게 묻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고 한다. 배역에 대한 깊은 몰입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배우의 자질은 연기력만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것만으로 아직 서인국의 가능성을 완벽히 장담할 순 없겠다. 다만 서인국이 집중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연기자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음악과 연기 중 어느 것도 놓치기 싫다는 욕심에 쉼 없이 예선과 본선을 치러냈으니 그에게도 슬슬 숨돌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도통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이 휴식이 길진 않을 모양이다. 당장 구체적인 계획은 연말에 첫 단독 콘서트를 연다는 것뿐이다. 어쨌든 터치패드는 눌렀으니 서인국에겐 이제 거친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은 듯하다.

스타일리스트/박지영, 박지혜/헤어 정수경/메이크업 테미, 박법준/의상협찬 알레그리, 시스템, 디젤, 나우로그라프니by.비커, 카이아크만, 아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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