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소녀 안에 할머니 있다
2013-11-08
글 : 윤혜지
사진 : 최성열
<수상한 그녀>(가제) 촬영현장

오두리(심은경)는 사실 이 집에 처음 방문하는 상황이어야 하는데 영혼이 말순이니 제집 드나들 듯할 수밖에 없다. 거침없는 오두리의 기세에 반지하(진영)는 눈치 보느라 바쁘다.

뮤지컬 <친정엄마>를 하느라 한동안 영화를 떠나 있었던 나문희의 반가운 복귀다. 실제로는 걸음도 사뿐사뿐 걷는 천생 여배우지만 카메라만 돌아가면 억척스러운 말순으로 180도 돌변했다.

더위에 지친 연기를 하느라 얼굴을 잔뜩 찌푸렸어도 귀여움은 여전하다. 재능 있는 또래 배우들이 많지만 심은경만큼 몸사리지 않고 전투적인 태도로 연기하는 배우도 없는 것 같다. 유학을 마친 뒤의 복귀작이라 심은경에겐 더욱 의미 있는 현장이다.

성동일과 황동혁 감독은 무슨 얘길 저리도 긴밀히 나누는 걸까. 오늘 현철(성동일)의 대사는 “다녀올게요” 한마디였다. 성동일은 그 한마디 인사와 처진 어깨로 고단한 가장의 모습을 기막히게 잘 드러냈다.

생글생글 잘도 웃는 진영은 단연 촬영현장의 비타민 같은 존재다. 쉴 때도 틈틈이 동선을 체크하고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성실한 배우의 자세를 잊지 않는다. 그 모습이 기특했는지 황동혁 감독도 진영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워메, 더운 거~!” 청순한 소녀의 얼굴을 한 심은경의 입에서 시골 할머니한테나 들을 법한 구수한 사투리가 흘러나온다. <수상한 그녀>(가제)라는 영화 제목대로 심은경은 수상쩍기 그지없는 촌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은경이 연기하는 스무살 오두리의 몸속엔 나문희가 연기하는 74살 말순의 영혼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10월이지만, 영화에선 한여름이라는 설정이다. 북가좌동의 어느 주택가에 퍼즐처럼 각종 장비가 겹쳐 쌓여 있고, 쥐죽은 듯 조용한 골목엔 심은경의 고함만이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안에서 대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며 더운 듯 옷섶을 펄럭이다가 겨드랑이의 땀을 훔쳐내는 심은경의 애드리브에 스탭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다. “뒤를 돌아볼 땐 좀더 뇌쇄적으로!” 황동혁 감독의 디렉션에 스탭들은 웃음을 참기가 더 힘들어졌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박장대소를 터뜨리기 바쁘다. 현장에서 “액팅로봇”이라는 별명을 직접 붙여줬을 만큼 심은경의 오두리는 “차진 연기”며, “빼어난 노래실력”이며 여러모로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다.

서슬 퍼런 오두리의 고함에 잔뜩 당황한 채로 문을 열어준 이는 말순의 손자 반지하 역을 맡은 B1A4의 진영이다. 오두리를 좋아해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안절부절못하는 연기가 제법 자연스럽다. “진영아, 지금 그 표정 좋다.” 실제로도 사뭇 긴장한 듯 보였던 진영이 감독의 격려에 만면에 미소를 띤다. 마침 이날은 진영의 마지막 촬영일이다. 진영의 촬영분이 모두 끝나자 스탭들은 진영에게 제각기 준비한 꽃이며 축하인사를 건네느라 분주하다. 진영은 스탭과 어울려 한바탕 사진을 찍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촬영장을 떠났다.

심은경과 진영의 촬영 뒤엔 나문희의 촬영이 이어진다. 크랭크업이 가까웠기에 오늘 촬영분은 아들 현철(성동일)의 출근길을 정성스레 배웅하고 뒤돌아 며느리 애자(황정민)를 타박하는 짧은 장면뿐이다.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비오면 실제로 몸이 쑤실 정도로 맞았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나문희에겐 고생스러웠던 현장이다. “그렇게 터져본 건 연기하면서 처음이었다. 촬영 당일엔 괜히 진짜로 맞겠다고 했나 싶어 슬프기까지 했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겉모습은 소녀요, 속은 할머니인 ‘수상한 그녀’의 정체는 내년 초쯤 전모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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