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회를 맞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11월7일부터 12일까지 6일간 씨네큐브광화문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104개국 3959편이라는 역대 최다 출품편수가 말해주듯, 국내 최초의 국제경쟁 단편영화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초청된 작품들과 프로그램의 구성 역시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매년 새로워지려는 영화제의 노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가브리엘 고쳇의 <더 매스 오브 맨>은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 청년이 사망하면서 촉발된 2011년 런던 폭동을 영감의 출발점으로 삼아, 영국의 청년실업 문제, 사회계층간의 갈등 문제들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2012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대상,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최고단편상을 수상했다.
올해부터 ‘코리안 프리미어’ 규정을 새롭게 도입하여 경쟁력을 재정비한 국제경쟁부문에서는 총 29개국 46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소재가 주는 몰입도와 집중력을 잘 살려낸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소녀가 자신의 핏줄을 찾아 돼지코를 가진 인도네시아 남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아넬리스 크루크의 다큐멘터리 <돼지코 아빠를 찾습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이 초고층 건물꼭대기에서 내세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그려낸 크리스토퍼 러스의 <거대한 도약>, 세명의 남자가 들려주는 소비에트 연방 이야기, 트리스탄 도우스의 <세 마리 곰에 대한 동화> 등이 그러하다. 히라바야시 이사무의 <닌자와 군인>, 나디아 미코의 <소나타>, 올리버 로저스 & 노버트 코트만의 <마지막 흔적들>까지 다양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들도 함께 주목할 만하다.
846편의 출품작 중에서 엄선한 12편의 국내경쟁부문 초청작들은 국내 단편영화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허정 감독의 <주희>(2012)는 여고생들이 벌이는 주술 의식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이슈들을 무리 없이 녹여냈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도 있다.
지반 침하로 기울어가는 집과 그 집에 살고 있는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정소영의 <달이 기울면>은 ‘기울다’라는 단어가 가진 중의적인 의미(‘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다’)를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포착해냈다. 도시 개발의 문제를, 인간이 아닌 집을 주인공으로 삼아 풀어낸 애니메이션 <집>도 흥미롭다. 고형동의 <9월이 지나면>과 이형석의 <소년과 양>, 그리고 현조의 <마포에서 서강까지>는 각각 소재와 형식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찾아오는 순간들을 때로는 발랄하고 때로는 섬세하게 묘사해낸 작품들이다.
전세계 유명 감독들의 초기 단편 연출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시네마 올드 앤 뉴’ 섹션에서는 리안의 <그 어스름한 호수에 있었다면…>과 알폰소 쿠아론의 <도대체 그 남자가 누구야> 등을 만날 수 있다.
일본 최대 국제단편영화제인 ‘숏쇼츠필름페스티벌’과 협업을 통해 마련된 ‘숏쇼츠필름페스티벌 & 아시아 컬렉션’ 섹션에선 올해 칸에 소개된 오카와 사쓰키의 <코유키의 축구공>,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의 삶을 담은 호리이 이쿠마의 <희생> 등 일본 특유의 독특한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총 7편의 단편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
그외에도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 <피고13>과 <이웃들>을 ‘집시 앤드 피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상영하는 ‘이미지 음악을 입다’ 섹션과 오버하우젠국제단편영화제에서 소개된 뮤직비디오들을 경험할 수 있는 ‘오버하우젠 뮤비 프로그램’도 놓치기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