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장애인인 정씨(조재현)는 시체 안치실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시체를 닦아내고 화장시키는 일을 한다. 이번에 들어온 시체는 여배우와 그의 남편이다. 여배우는 불륜을 저지르다 남편에게 들켰고 남편은 부인을 죽이고 자살했다. 시체 안치실에 온 헬멧을 쓴 남자는 노모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다 옆에 있는 여배우의 시신을 강간하고 정씨는 이를 묵인한다. 정씨는 가끔씩 정장을 입고 외출한다. 지병인 결핵으로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고 시체의 금이빨을 빼서 팔고 고기를 사오기도 한다. 시체 안치실에서 청소를 하는 아줌마는 정씨를 유혹하지만 정씨는 무덤덤하다. 정씨의 취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정씨의 배다른 동생인 동배(박지아)는 성기를 잘라내고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 성적 정체성에 힘들어하는 동배에게 정씨는 호르몬 주사 값으로 돈을 주고 양어머니에게 찾아가 성전환 수술비를 건넨다.
영화의 중심인물들은 다 선천적인 신체 장애를 가지고 있다. 정씨는 등에 혹을 달고 있고 동배는 성기를 달고 있고 헬멧을 쓴 남자는 얼굴이 기형이다. 그 무게는 신체적인 무게이면서 삶의 무게이며 그들은 그 무게로 힘들어하지만 무게를 내려놓지 못한다. 이러한 삶의 무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전규환 감독은 이번엔 판타지를 끌고 온다. <타운> 시리즈와 <불멸의 시대>까지 전규환 감독은 전작들에서 직구를 많이 던져왔다. 그냥 끝까지, 바닥까지, 나락까지 밀어붙였고, 갈 데까지 가는 그 불편함 속에서도 불편하지만 목도해야 될 우리 삶의 진실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무게>에선 직구에 변화를 준다. 많은 상징과 이미지들이 직구의 모서리에서 넘쳐흐른다. 변화구를 쓴다고 해서 투수가 바뀐 건 아니다. 일례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문제 삼았던 신체 노출은 여전하다. 전규환 영화에서 신체 노출은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기 위한 선정적인 노출이 아니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우리의 신체를 그냥 보여주는 행위다. 내적 자연인 신체를, 이 사회의 시스템은 외적 자연을 정복해왔던 것처럼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자본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 시대의 에로티시즘은 금기시되고 쫓겨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에로티시즘이 지닌 본연의 에너지를 전규환 감독은 되찾고 싶어 한다.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섹스하게 하는 그의 영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의 작동 때문일 것이다. 변화구를 던지면서 투수는 한층 여유로워졌고 우리는 이 투수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