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고(故) 장국영에게 바치는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
2013-11-27
글 : 주성철

백타산의 황무지 주막에 은거하는 구양봉(장국영)은 10년 전, 사랑하는 여인 자애인(장만옥)을 형의 여자로 내어주고 떠나왔다. 매년 복사꽃이 피는 시절이면 황약사(양가휘)가 찾아와 그녀에 대한 얘기를 전해준다. 그렇게 사람들이 주막으로 살인청부를 부탁하러 하나둘 찾아온다. 모룡언(임청하)은 자신의 여동생과의 결혼을 어긴 황약사를 죽여달라며 찾아오고, 검객에게 남동생을 잃었다는 완사녀(양채니) 또한 돈 한푼 없이 나귀와 달걀만으로 살인청부를 부탁하고,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검객 맹무살수(양조위)는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겠다며 살인청부 일을 자청해서 나서며, 이름을 떨치고 싶은 가난한 무사 홍칠공(장학우)도 구양봉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나타난다. 찾아오는 모두가 구양봉만큼이나 슬픈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008년 칸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동사서독 리덕스>는 창고에 처박혀 있던 15년 전의 작품을 새로 복원하고 재편집한 버전이다. 1995년 개봉한 <동사서독>은 김용의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고 당대의 스타들을 모두 불러들였으나, 제작비 수급과 촬영기간의 난항 등 우여곡절 끝에 흥행에서는 참담한 결과를 맛봤다. ‘리덕스’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삭제 장면이 대거 추가되거나 편집 순서가 바뀌면서 영화의 무드가 확 달라진 느낌은 없다. 세월의 흔적을 담아내는 CG 장면이 추가되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백로, 입춘 등 계절에 어울리는 절기의 소제목이 첨가되면서 순환의 의미를 덧붙인 정도다. 전반적으로 ‘시간의 재’(Ashes of Time)라는 영어 제목에 충실한 느낌이다. 물론 ‘고(故) 장국영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왕가위의 말처럼 편집을 일부 바꿔 영화의 끝과 시작을 그의 얼굴로 마무리한다. 이처럼 원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편집본이라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걸까, 왕가위의 최고작이라는 느낌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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