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건달의 순수한 사랑과 파국 <창수>
2013-11-27
글 : 이화정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창수(임창정). 양아치 창수의 특기는 ‘남의 징역살이 대행업’이다. 덕분에 전과만 무려 17범. 돈만 준다면 몇달 정도는 기본이고 길게는 2년까지 살아주기도 한다. 부모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는 삶에 그다지 애착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를 만나면서 창수의 삶에도 일대 변화가 찾아온다. 폭력조직 지성파 보스의 애인인 미연(손은서)은 2인자 도석(안내상)과 내연의 관계를 맺다가 내쳐진 여자로, 창수는 아름다운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창수>의 시작은 신파 멜로다.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부유하던 창수에게 미연은 단순히 ‘사랑’을 떠나 지금껏 한번도 누리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 곧 안정된 삶을 의미한다. 미연 역시 그런 창수에게서 순수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묵배미의 사랑>류의 끈끈한 러브 스토리는 갑작스런 미연의 죽음으로 중지된다. “나 곧 살림 차릴 것 같아”라던 창수의 설렘이 “하필 왜 우리 집에 와서 죽어가지고…”로 바뀌는 순간, 신파 멜로는 누아르로 장르를 탈바꿈한다.

영화는 창수의 행복 보다 한갓 양아치 전과자에서 이제는 살인 누명까지 쓰게 된 남자의 진퇴양난을 지켜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수는 이 시점에서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데, 미연과 나눴던 어이없을 정도로 짧은 추억이 그 동기를 부여한다. 영화의 짠한 울림도 이 지점에서 온다. <파이란>의 조감독 출신인 이덕희 감독의 데뷔작. 건달의 순수한 사랑과 파국을 그린다는 점에서 메시지는 <파이란>과 일정 부분 겹친다. 오랜만에 연기를 하는 임창정의 실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창수라는 사내가 처한 상황에 꼭 맞게 재단된 듯한 어투나 몸동작은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는 이 영화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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