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와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가고 <헝거게임> 시리즈가 왔다. 1편은 대성공이었고 2편은 이제 막 뚜껑을 열었다. 즐길 만한 오락물이라는 평이 대세다. 게다가 요소요소마다 꽤 다양한 층위로 얽혀 있는 것이 흥미롭다. 1편을 지나 3편과 4편을 기다리는 시점을 맞아 중간점검하는 기분으로 몇 가지 핵심들을 정리해본다. <헝거게임> 관람자를 위한 7개의 키워드별 가이드다.
근미래의 독재국가 판엠. 수도인 캐피탈에 살고 있는 독재자의 지휘 아래 매년 이른바 ‘헝거게임’이라는 잔혹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수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12개 구역에서 소년 소녀들을 뽑아 한 장소에 몰아넣고 단 한명의 생존자만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게 한 뒤 우승자에게는 윤택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70여년 전 힘을 합쳐 반란을 도모했다가 실패한 주변 구역에 독재자가 내리는 피의 형벌인 동시에 많은 이들의 눈을 현혹시키기 위한 잔인한 엔터테인먼트다. 그리고 이 잔인한 게임은 방송을 통해 판엠의 모든 이들에게 강제적으로 방영된다.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은 피타(조시 허처슨)와 함께 74번째 헝거게임의 12구역 대표로 뽑히고 게임 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피타와 연인 행세를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실제 연인 게일(리암 헴스워스)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캣니스와 피타는 최후의 공동승자가 되고 특히 캣니스는 일약 국가적 스타가 된다. 2편에 이르면 그녀는 더이상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혁명의 아이콘이다. 그런 그녀를 없애기 위해 독재자는 다시 한번 캣니스를 헝거게임에 끌어들이지만, 그녀는 전보다 더 강해져 있으며 그녀를 추앙하는 혁명의 무리들은 늘어나 있다.
1 프랜차이즈영화
주인공이 유명 상품 브랜드의 수준에 오른 대형 시리즈물을 두고, 프랜차이즈영화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해리 포터>와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그 예다. 그리고 그들의 시대가 저물자 계승자로 나타난 것이 <헝거게임> 시리즈다. 원작은 수잔 콜린스의 소설이며 2008년부터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모킹제이>라는 삼부작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원작자 스테파니 메이어는 “이 책 덕분에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라고 칭송했다. 영화로는 4부작으로 완성될 예정인데,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가 완성되어 개봉했고, <헝거게임: 모킹제이 파트1>은 2014년 11월, <헝거게임: 모킹제이 파트2>는 2015년 11월에 개봉예정이다. 2012년에 개봉했던 1편은 그해 미국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그해 1위는 <어벤져스>, 2위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였다) 1편의 감독은 게리 로스, 나머지 세편의 감독은 프랜시스 로렌스이며 원작자 콜린스는 각색에도 참여하고 있다. 근래에 유행하는 프랜차이즈영화의 계통을 이어받은 작품답게 십대가 주인공이며 그 주인공의 성장담이 곧 거대한 서사시로 확장되는 이야기 구조다.
2 서바이벌 게임
12개 구역마다 제비뽑기로 18살 이하 남녀 한쌍씩, 총 24명을 뽑고, 뽑힌 이들은 지정된 장소에 가서 오직 한 사람만 살아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헝거게임의 규칙이다. 그런데 실은 이 게임 방식을 두고 말들이 좀 있었다. 일본 작가 다카미 고슌의 소설 <배틀로얄>(후카사쿠 긴지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졌다)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배틀로얄>에서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지배하기 위해 유사한 게임을 만든다. 하지만 원작자 콜린스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첫 소설이 출간되기 전까지도 <배틀로얄>에 대한 존재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의 책을 편집한 편집자에게 “지금이라도 내가 <배틀로얄>을 읽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의 세계를 밀어붙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작 콜린스는 이 게임의 모티브가 된 건 그리스 신화와 로마의 검투 경기였다고 말한다. “9년에 한번씩 소년 소녀들을 죽음의 미로에 보내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싸우게 했다는 테세우스 신화”와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벌어졌던 검투사들의 사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이다.
3 여전사
<헝거게임> 시리즈의 여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말 그대로 매혹적인 신종 여전사다. 미국의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은 이 캐릭터를 두고 “활과 화살을 쥔 애니 오클리”라고 칭했다(애니 오클리는 미국 서부시대에 이름을 높였던 명사수다). 누가 캣니스가 될 것인가, 혹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했다. <킥애스2: 겁 없는 녀석들>의 크로 모레츠? 드라마 <니키타>의 린제이 폰세카? <폭풍의 언덕>의 카야 스코델라리오? <써커 펀치>의 에밀리 브라우닝? <디센던트>의 셰일린 우들리? 이중에서 미국의 유력 연예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추천했던 배우는 린제이 폰세카다. 하지만 캣니스 역할을 가져간 것은 제니퍼 로렌스다. 캐스팅이 결정되자 원작자 콜린스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질문은 바로 이것, “그녀는 반란을 고무할 만큼 믿음직스러워 보이는가? 그녀는 다른 이들이 그녀를 따라 전쟁에 뛰어들어도 좋겠다고 느낄 만큼 힘과 저항과 지성을 갖추었는가?”였다며, 제니퍼 로렌스가 그 적임자인 것 같다고 환호했다.
한편 제니퍼 로렌스 또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캣니스가 자신의 남자친구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기보다 자신의 생존과 혁명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전사 캣니스의 아이콘이라면 단단하게 땋아서 한쪽으로 묶은 머리와 그녀의 주무기인 활인데, 가령 2편에서는 독재자의 손녀조차 독재자에게 “요즘은 이런 머리가 유행”이라고 말하며 캣니스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캣니스의 무기는 왜 활일까. 정확한 대답을 알지 못한 채 짐작하자면, 활의 아름다운 곡선의 모양새와 활을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요구되는 어떤 자태가 이 여전사에게 어울렸기 때문 아니었을까?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의 시사회장에는 이 영화의 홍보대사인 걸그룹 ‘포미닛’이 잠시 나와 인사를 했고, 사회자는 퇴장하려는 그들에게 “활 쏘는 포즈를 취해주세요”라고 청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들에게 “창 던지는 포즈를 취해주세요”나 “도끼 휘두르는 포즈를 취해주세요”라고 했다면 그건 좀 이상했을 것 같다.
4 삼각 로맨스
“둘 다 인기가 있다는 걸 제외하면 도대체 뭐가 <트와일라잇>하고 비슷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1편의 감독 게리 로스는 투덜거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비교의 근거가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여주인공 캣니스와 두명의 남자주인공 피타, 게일 사이의 삼각 로맨스일 것이다. 2편의 감독 프랜시스 로렌스의 말을 요약하자면 “피타는 사랑을 배워가는 남자이고 게일은 혁명을 향해 가는 남자”다. 캣니스는 이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린다. 물론 <헝거게임> 시리즈의 큰 축은 캣니스가 혁명의 여전사로 거듭난다는 것이지만, 이 시리즈가 한편으론 십대 소녀의 성장담이며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이 로맨스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삼각 로맨스의 긴장이 영화에 기여하는 바를 아예 무시할 건 못 되는 것 같다. 다만, 피타 역의 조시 허처슨과 게일 역의 리암 헴스워스의 캐스팅 문제가 있기는 한데, 뭐랄까 두 사람은 전통적인 하이틴 로맨스물에 등장할 법한 미남형의 배우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두 배우의 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은 다소 투박해서 더 정겹다고 해야 맞을 인상이다. 이 캐스팅은 영화의 큰 축인 여전사 캣니스의 나아갈 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고려된 무척이나 섬세한 결단이었거나 혹은 그 반대로 안일한 실수였을 것이다.
5 혼종성
<헝거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12구역이라 불리는 탄광촌을 비롯하여 그 밖의 빈곤한 주변부 타 구역들이다. 둘째는 캐피탈이라는 상상 초월의 대도시다. 셋째는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는 야생의 게임장이다. 미술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한마디로 “복고 미래풍이다”. 복고 미래풍이란, 과거에 존재했던 고대의 것들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것들이 뒤섞여 있는 상태라는 뜻일 것이다(의상과 헤어를 담당하는 스탭 역시 비슷하게 “하이패션과 아방가르드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빈민층 구역은 현실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낡은 탄광촌이나 포로수용소처럼 그려지고 있다. 반면에 수도 캐피탈은 현란하고 화려한 금속성의 도시다. 코리오라누스, 세네카, 시저 등등이 캐피탈에 살고 있는 주요 고위층들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 도시는 과거 로마 제국의 화려함을 미래에 비추어 상상해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에 야생의 서바이벌 게임 장소는 1편에서처럼 거대한 숲이거나 2편에서처럼 무서운 밀림이다. 최첨단 우주복에 가까운 의복을 입은 인물들은 그러나 가장 원시적인 무기들만 제공되는 이곳 숲과 밀림에서 또한 원시적인 격투를 벌인다. 말하자면 고대와 미래, 부와 빈곤, 고급과 저급이 뒤섞여 있다.
6 리얼리티 쇼
원작자 콜린스는 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새삼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뜨거운 경쟁을 벌이는 리얼리티 쇼가, 또 한쪽에서는 이라크 침공에 관한 뉴스가 동시에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불분명한 방식”으로 뒤섞여 <헝거게임> 시리즈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 게임은 판엠의 전 국민에게 텔레비전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무 방영되는 리얼리티 전쟁 쇼다. 게임 참가자들을 위한 성대한 전야제가 열릴 때, 2주 뒤에는 여러분 중 한 사람만이 이 자리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같은 <슈퍼스타K>식의 말은, 2주 뒤에는 여러분 중 한명만이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같은 끔찍한 말로 변경된다. 리얼리티 쇼의 경쟁의 담보가 음악이 아니라 목숨이라면, 이라는 상상이 여기 깔려 있는 것이다. 헝거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른바 리얼리티 쇼의 생리는 멈추지 않는다. 가령 캣니스와 피타는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의 연인들이나 마찬가지이고 숲과 밀림에서 그들이 벌이는 생존의 노력은 <정글의 법칙>의 ‘병만족’들의 행동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리얼리티 쇼에 대한 반감도, 응용도 함께 느껴진다.
7 독재사회
미디어를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는 건 세속 정치의 진리다. 그래서 영화 속 독재자는 나름대로 고안하여 국민들을 겁주고 어르기 위해 헝거게임을 만들었다. 독재자가 1편에서 강조하는 바를 요약하자면, 무조건적인 두려움을 주기보다 실낱같은 희망의 미끼를 던져주고 국민들을 순종하게 하라, 이다. 그 미끼란 바로 헝거게임을 시청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우승자들에게 느끼는 공감일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이 원대한 국민 훈육 프로젝트는 그의 예측과 달리 빗나가버린다. 게임에 나가기 직전 참가자들에게 응원이랍시고 사회자들이 던지던 1편의 그 유명한 말, “해피 헝거게임! 확률이 여러분의 편이기를!”이라는 이 말은 2편에서 이렇게 분노로 바뀌어 벽에 씌어 있다. “확률의 신은 결코 너의 편이 아니다.” 캣니스가 그 변혁의 맨 앞에 서 있다. 앞으로 2년에 걸쳐 찾아올 <헝거게임> 시리즈 3편과 4편은 단순히 게임을 넘어 캣니스와 동료들이 독재국가라는 시스템과 벌이는 본격적인 싸움을 그려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