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문신을 하나 했다. 가업을 물려받은 달인이 운영하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문신 가게에 가서, 달인은 비싸니까 그 가게 막내에게 시술을 받았다(그럴 거 뭐하러 굳이 달인의 가게를 찾아갔을까). 도마뱀을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도안을 고르러 갔다가 웃고 있는 돌고래를 발견하고는 깨달았다, 아, 이것이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구나. 파멜라 앤더슨은 말했다지, 문신은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상징한다고. 그렇게 나는 청록색 돌고래를 얻었고 사람하고도 해본 적이 없는 첫눈에 반한 사랑의 상징을 남겼다.
그런데 한번 하고 나니 계속 하고 싶어졌다. 다음엔 식물성으로 해야지, 장미로 할까 덩굴 무늬를 새길까, 몇 년째 고민만 하다가 <카운슬러>를 만났다. 앗, 표범이다! (치타던가? 어쨌든.) 심 봤다! 바로 저거야! 카메론 디아즈의 표범 무늬 문신을 보니 저것만 있으면 모피가 없어도 되겠구나, 싶었다. 바로 문신 가게를 찾아 검색에 들어갔다. 이러다가 내 몸 위에 동물의 왕국을 세우는 건 아닐까.
사실 동물성 문신, 하면 용이다. <레드 드래곤>이야 제목 자체가 용이니 그렇다고 쳐도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도 등짝을 시원하게 수놓은 용 문신이 나온다. 동양 여자는 털이 없고 부드러워 너무 좋다며 나를 고급 비단이나 캔버스 쳐다보듯 했던 타투이스트도 등에 용 문신을 하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동양 용으로 그려주겠다고(지금 그게 문제인가), 손가락 두개만 한 돌고래로도 너무 아파서 울고 있는 나에게 강요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살이 없는 손목에 해서 그렇게 아픈 거지 살이 많으면 덜 아파, 너 등에 살 많잖아. 아이고,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문신은 진짜 아프다. 시술이 끝나고 타투이스트는 말했다, 맥주 마시러 가자, 안 그러면 아파서 밤새 못 잘걸? 진짜였다. 다음 날 술이 깨고 나서 나는 퉁퉁 부은 손목을 부여잡고 울었다. 그러고 나니 분장이 아니라 진짜 문신으로 도배한 조니 뎁이나 안젤리나 졸리가 예사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옛날 애인 위노나 라이더의 이름을 팔뚝에 새겼던 조니 뎁은 헤어지고 나서 그 이름 일부를 지웠는데, 문신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아프다고 했으니, 그 아픔을 상상하면… 아, 그렇게 실연의 아픔을 덮었겠구나. 그때 기억이 사무쳤는지 조니 뎁이 그다음에 새긴 이름은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사이인 아들 잭의 이름이었다. 아무튼 <미이라>의 이모텝처럼 자기 이름이 아니라면, 이름은 함부로 새길 게 아니다.
<메멘토>에서 단기기억상실증을 앓는 남자는 아내의 살인범에 관한 단서를 문신으로 남긴다. 몸자체가 수첩인 셈이다. 조니 뎁도 그랬다. “나의 육체는 나의 일기이고, 나의 문신들은 나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용을 문신하고 아들은 호랑이를 문신한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던 <가문의 위기>의 김수미는 문신 때문에 목욕탕도 못 간다며 서러워했지만, 어떤 문신은 그 주인에게 기록이고 기억이기도 하다.
제법 널찍한 문신을 새긴 날엔 맥주로는 부족해 위스키를 마시며 아파서 운다고 했던 타투이스트에게 그 많은 문신은 달인의 가게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했던 연습장이었다. 그리고 그가 만난 한 부부에겐 혹시라도 잊을까 두려운 기억이었다. 나이가 지긋했던 부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기의 사진을 가져와 그 얼굴을 자신들의 몸에 문신으로 남겼다. 아기 얼굴이 자꾸 희미해졌는데 다행이라며, 부부는 그를 붙잡고 한참 울었다고 했다.
그나저나 타투이스트는 차츰 문신 색이 바랠 거라며 몇년 뒤에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그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데, 큰일이다. 차비가 없다. 이러다가 청록색 돌고래가 살색이 될지도 모른다. AS를 받지 못해 슬픈 나의 문신은 나의 가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