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패밀리와 로맨스의 변증법에 관하여
2013-12-12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감독

‘로맨틱 코미디’를 가장한 ‘로맨틱 성장영화’라고 할까.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워킹타이틀과 오랜만에 작업한 신작 <어바웃 타임>이 12월5일 개봉했다. 지난 8월8일, 런던의 만다린 호텔에서는 영국 내 영화 개봉에 맞춰 <어바웃 타임>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리처드 커티스 감독을 비롯해 레이첼 맥애덤스와 빌 나이가 참석했다. 유럽 전역에서 모인 기자들의 상당수는 행사 하루 전 관람한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커티스 감독이 인터뷰 장소에 입장했을 때에는 참석했던 기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영화를 잘 봤다”는 인사를 전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커티스 감독은 간담회에 참여한 모든 기자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독 은퇴 소식을 들은 뒤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서인지 영화가 어쩐지 더 당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해변가에서 촬영하던 어느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날은 정말 더웠던, 하늘의 해가 유난히 반짝 빛나던 화창한 날이었다. 촬영을 잠시 쉴 때 빌 나이가 나에게, 다음번에는 배우와 감독이 아닌 빌 나이와 리처드 커티스로 이 해변을 그냥 걸어보는 것이 어떻냐고 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으로서의 내가 아닌 나의 삶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부터 은퇴에 대해 생각했다는 말인가.
=그전부터 했던 생각이다. 사실 <러브 액츄얼리>를 쓰는 동안 가족 3명을 잃었다. 그러면서 무엇이 진정한 삶의 행복인지, 내가 나의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크게’ 슬퍼할 사람이 많을 것 같지도 않고! (웃음) 하지만 글은 계속 쓸 계획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 당신이 전하는 ‘삶의 순간순간 속에 깃든 현재의 작은 행복을 찾으라’는 메시지가 더 인상적이었다. 역시 당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인가.
=정말 그렇다! 내가 쓴 예전 작품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 ‘가족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만나 결혼하라!’라는 걸 알고 좀 놀랐다. ‘잠깐, 이들이 결혼하면 다시 가족이 되고, 자녀가 생길 텐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로맨틱 코미디는 가족의 이야기로, 가족의 이야기는 다시 로맨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사랑에 대한 향수’가 나의 예전 작품들을 관통한 테마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소소한 일상이 던지는 지금 이 순간의 감동’에 좀더 초점을 두고 싶었다.

-이번 작품에는, 두개의 러브 스토리가 있다. 아들 팀과 아버지, 팀과 그의 아내 메리의 사랑이 그것인데, 이 두 이야기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이번 영화가, 두 남녀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키스로 재회하는 순간으로 막을 내리는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길 바랐다. 사실 빌 나이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감정선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는 이것이 모두 그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빌 나이에게 관객이 자연스럽게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를 투영하면서 부자간의 사랑 이야기에도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큰 힘이 실렸던 게 아닌가 싶다.

-‘시간여행’을 이야기 전개를 위한 단순한 도구로만 활용할 줄은 정말 몰랐다.
=처음에는 시간여행 장면에 멋진 시각효과를 입히고 싶었다. 하지만 슬로모션 효과에 3D를 입히고 음악까지 삽입해 만든 장면을 보는 순간, 영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때 나는 ‘안티-시간여행 시간여행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한 이 영화가 특수효과로 치장한 일반적인 SF영화로 묘사되거나, 시간여행이 삶의 모든 문제들을 고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자고도 다짐했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시간여행을 통해 바꾸고 싶은 과거의 순간이 있을 것 같다.
=글쎄. 영화 <엑소시스트>를 봤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당시 내 뒤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신이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땐 어렸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를 믿었다. (웃음) 영화를 본 뒤로 나는 근 1년 동안 방에 불을 켜놓아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