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뜻밖의 여정> 이후 절대반지의 주인이 된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의 여정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계속된다. 시끌벅적하고 말 많은 드워프들과 함께이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오크들도 도사리고 있다보니 물론 순탄하지 않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편가르기가 쉽지 않은 엘프족도 빌보 배긴스와 드워프들의 여정에 우연히 동참하게 되는데,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레골라스(올랜도 블룸)의 활쏘기 액션에 두눈이 휘둥그레해졌던 경험이 있다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를 통해 다시금 활약하는 엘프족 특유의 액션을 기대해도 좋다.
지난 12월4일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는 <호빗>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기자회견이 열렸다. 빌보 배긴스를 연기한 마틴 프리먼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피터 잭슨 감독, 각본가 필리파 보이엔스, 필리 역의 딘 오고먼, 킬리 역의 에이든 터너, 바드 역의 루크 에반스, 타우리엘 역의 에반젤린 릴리, 토린 오켄쉴드 역의 리처드 아미타지, 스마우그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출연진과 제작진으로 가득 찬 자리였다. 영화 속 로케이션 장소들을 옮겨 만든 특별한 무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전한다.
우리 모두의 DNA가 이 영화에 있다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피터 잭슨 감독,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인터뷰
-TV시리즈 <셜록>을 통해서 큰 인기를 얻은 마틴 프리먼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빌보 배긴스와 스마우그 역할로 호흡을 맞춘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피터 잭슨_두 사람을 캐스팅한 건 우연이다. 베네딕트를 처음 만난 건 그가 <셜록>으로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 뒤 <셜록>을 보고 팬이 되었는데, 문제는 마틴 프리먼을 빌보 배긴스 역할로 캐스팅하고 싶어졌다는 거였다. 물론 그는 <셜록> 시즌2로 바빠서 <호빗: 뜻밖의 여정>과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벽 4시까지 <셜록>을 보면서 마틴이 빌보 역할에 딱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고, 운명이 왜 이런 장난을 치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러고 나서 마틴이 촬영할 수 있을 때까지 영화 촬영 스케줄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한 사람을 위해서 프로덕션 스케줄을 중지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스마우그 역할의 경우, 내가 원한 건 그저 드래곤 목소리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하며 빌보 배긴스를 압도할 만큼 똑똑해야만 했다. 참고로 영화를 위해 두 사람이 한자리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하지만 우리 모두 마틴으로부터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나?
베네딕트 컴버배치_(웃으며) 오, 그럼! 누구나 필요하다. 그리고 스마우그 입장에서 빌보는 새끼손톱보다도 작기 때문에 안 보인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셜록> 밖에서 마틴과 연기하는 것은 즐거웠다. 같은 배우와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이라 재미있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공동각본가로 참여했다. 그는 이 영화의 작업에 어떤 영감을 불어넣었나.
=피터 잭슨_기예르모는 두 번째 각본이 나올 때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누가 어떤 부분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야말로 콜라보레이션이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와의 작업은 그렇게 자유롭게 진행됐다. 그런 점에서 그의 손길, 그의 DNA는 분명히 이 영화 안에 있다.
-배우들이 대답해주면 좋겠다. 피터 잭슨과의 작업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에반젤린 릴리_피터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유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 요만큼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다. (전원 웃음) 그래서 그는 촬영장에서 농담을 하면서 돌아다닌다. 어떤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가 고귀한 예술이고 마법의 순간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런 생각은 나를 두렵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피터와 웃으며 시간을 보냄으로써 그런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그는 꼭 맞는 타이밍에 “액션”을 외칠 줄 알고, 내게서 최고의 연기를 꺼냈다고 생각한다.
루크 에반스_(웃으며) 그의 취향에만 맞는다면, 피터는 괜찮은 감독이다. (일동 웃음) 그는 촬영장에서 기운을 얻는 감독이다. 레이크 부카키의 지붕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액션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는데, 내가 촬영장에 나오기도 전에 그는 이미 나의 지붕 액션을 연마하고 있었다. 피터는 직접 해보는 것을 선호한다. 감독이 배우만큼이나 장면에 신경쓰고 투자한다는 걸 아는 것은 배우로서 기분 좋은 일이다.
피터 잭슨_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시선 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촬영장에 갈 때 디렉션을 가지고 가는 편이 아니다.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연기하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의 몫이다. 내가 촬영장에서 하는 말의 절반은 관객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내가 관객이라면 이 장면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장면들이 영화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한 조각 한 조각이 되고, 내가 전달한 이야기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_한마디 덧붙이자면, 마스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과 있을 때 배우가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는 거다. 피터는 친숙하고 유쾌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내 경우에는 모션 캡처 의상을 입고 불을 내뿜는 드래곤인 척하는 거였지만, 피터와 함께였기 때문에 그걸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는 내가 만족시키고 싶은 단 한 사람의 관객이었다.
피터 잭슨_계속해서 나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했으면 좋겠다. (전원 웃음)
-영화를 촬영하면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액션 장면이 있다면.
=피터 잭슨_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술통으로 급류를 타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영화의 마지막에 스마우그와 대면하는 장면이다. 술통 장면은 다양한 촬영기법이 사용된 액션 장면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펠로러스 강에서 촬영했는데, 실제로 내가 9살 때쯤 가족과 함께 펠로러스 강으로 휴가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여기서 괴물과 싸우는 액션 장면이 만들어진다면 대단하겠다’라고 생각했고, 그 상상은 40년이 훌쩍 지나서 이번에 현실화됐다. 물론 실제로 그 장소에서 배우들이 술통에 들어간 채 촬영하는 것은 위험해서 불가능했고, 물의 흐름이 느린 곳에서 촬영하는 방법과 술통만 따로 찍은 뒤에 CG로 드워프를 합성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1995년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시작하고나서 20년이 지났다. 인생의 1/5을 바칠 만큼 이 작업에 몰두하게 하는 톨킨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피터 잭슨_딱 집어서 톨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자라면서 영화가 가져다주는 판타지와 현실 도피 역시 사랑했기 때문이다. 20년을 톨킨과 보냈지만, 20년을 영화라는 현실 도피와 보내기도 했다. 그건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꾸었던 꿈이다. 10살 때 품은 꿈을 이루는 건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