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 아버지 역을 맡은 정진영은 “윤제균 감독이 성의 있게 부탁해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묵직한 이야기더라”라며 “부산 바다 하면 해운대만 알고 있었다. 부산 바다가 이렇게 예쁜지 이제 알았다”고 출연 소감을 말했다.
바닷가로 뛰어가다가 다른 사람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위험한 장면은 무술팀의 몫. 최동헌 무술감독은 “이 시퀀스는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치열함을 보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웃으면 계속 찍어야 합니다. 저 배에 타지 못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달려야 합니다.” 11월16일 <국제시장> 촬영이 한창인 부산 다대포항은 슛 사인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상직 프로듀서는 “일주일째 찍고 있다. 오늘이 이곳에서 마지막 촬영이다. 날씨는 따뜻한데 보조출연자들이 물에 들어가면 얼마나 추울지…”라며 안전사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메가폰을 쥔 조감독은 300명 가까이 되는 피난민 무리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앞만 보고 뛸 것을 독려하고 있었다. 촬영 준비로 시끌벅적한 가운데 촬영장 한구석에서 임승희 의상실장이 넝마를 여러 벌 걸친 보조출연자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보조출연자만 300명이라 시대 의상을 500벌 이상 준비했다. 1950년 흥남이 배경이다. 당시 피난민들은 따뜻할 수만 있다면 천이란 천은 모두 몸에 걸쳤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잠시만요, 길 좀 비켜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나타난 분장팀이 가짜 눈을 보조출연자의 옷과 머리카락 여기저기에 뿌린다. “컷할 때마다 ‘간지’내야 한다. 떼신이라 정신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윤제균 감독의 신작 <국제시장>은 6•25 전쟁부터 베트남전쟁, 서독의 탄광을 거쳐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관통해온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 부부와 그들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다. 이날 제작진은 중공군이 밀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덕수 아버지(정진영)와 어머니(장영남)가 아들 덕수와 딸 막순과 함께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6•25 흥남부두 철수 장면을 공개했다. 총 75회차 중 53회차 촬영. “(황)정민이가 출연할 때 와야지”라는 말로 반겨준 정진영은 “어린 덕수에게 가족을 지키라고 말해주는 아버지다. 덕수는 이날 헤어진 가족을 평생 그리워하게 된다”고 일러준다. 임신한 몸으로 차가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는 덕수 엄마 장영남은 “임신한 모습은 찍지 말라”면서도 “오늘은 날씨가 따뜻한 편”이라며 촬영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덕수 가족과 피난민들을 한데 담아내기 위해 투입된 카메라는 총 3대. 최영환 촬영감독은 레드에픽, 알렉사, F65 등 카메라를 각기 다른 위치에 세팅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F65, 체코에서는 알렉사, 타이에서는 레드에픽을 쓰고 있다. 나라마다 광량과 색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떼신을 찍는 오늘은 모든 카메라를 동원했다.”(최영환 촬영감독) 옆에서 앵글을 확인하고 있던, <국제시장>의 VFX를 맡은 디지털아이디어 손승현 제작총괄본부장 역시 물량 공세가 중요한 촬영이라는 말에 동의했다(<국제시장>의 VFX는 총 3개 업체가 참여한다. 디지털아이디어가 흥남부두 철수 신을, CJ파워캐스트가 1950, 60, 70, 80년대 시대별 국제시장을, 아톰이 독일 광산 신을 맡았다). 그는 “(보조출연자 뒤에 설치되어 있는 그린매트를 가리키며) CG가 어려운 장면이냐고? 어려운 건 다 찍었다. 오늘은 물량 공세다. 보조출연자는 300명이지만 나중에 영화로 보면 이들은 엄청난 숫자의 피난민 행렬로 변신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해준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다대포 해변가를 멀리서 한눈에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국제시장>의 ‘야전 사령관’ 윤제균 감독이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만날 이렇게 찍고 있다. <해운대>보다 어렵냐고? 배 이상 어렵다. (웃음) 다시는 <해운대> 같은 블록버스터는 안 찍을 줄 알았는데…”라며 너스레를 떤다. “자, 빨리 가자”는 감독의 목소리와 동시에 특수효과팀이 강풍기를 동원해 녹말가루로 만든 1.5kg 분량의 가짜 눈을 하늘에 흩날린다. “액션” 사인이 떨어지자 해변가에 있던 300명의 피난민들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에 올라타기 위해 바다로 돌진한다.
“개똥이 아바이, 함께 가자우.” “제발 태워주세요.” 부산과 전주에서 불러모은 보조출연자 300명의 울부짖음은 그야말로 살아남겠다는 몸부림이었다. 덕분에 다대포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풍경은 6•25 전쟁 당시 남쪽으로 가려는 피난민들로 가득했던 흥남부두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했다. 보조출연자들이 바다에 뛰어들기를 수십 차례, 석양에 마음이 타 들어갔던 윤제균 감독의 오케이 신호가 무전기를 통해 전해진다. 덕수 가족은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할 수 있을까. 2014년 하반기에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