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임시완] 조용하지만, 강한
2013-12-30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변호인> 임시완

2013년 송년호 커버스타로 임시완을 초대했다. <변호인>이 첫 영화 데뷔작인, 아직은 신인배우인 그를 얼굴로 내세운 건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변호인>에서 송강호의 폭발하는 듯한 연기와 조화를 이룬 임시완 특유의 고요한 존재감은 분명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리라고 믿는다.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가수로 출발,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허염앓이’를 일으킨 스타성과 <적도의 남자>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이제 막 영화배우의 시작점에 선 임시완을 만났다. 말을 아끼는 조용한 대화법이 그가 보여준 작품 속 캐릭터의 이미지와 데칼코마니처럼 겹쳤다.

<변호인>을 장악하는 캐릭터는 분명 송우석, 송변(송강호)이다. 돈밖에 모르는 세무변호사가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뜨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인권변호사가 되기까지, 송변의 커다란 인생 굴곡이 <변호인>의 드라마를 이룬다. 진우(임시완)는 그런 송변에게 있어 일종의 발화점이다. 송변이 자주 다니는 국밥집의 아들이자, 밤에는 야학 선생님인 순수청년 진우는 정부의 용공조작으로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되고 강제 연행된다.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에 시달려 온몸에 피멍이 들고, 고문의 공포로 만신창이가 된 진우를 보고 송변은 지금까지의 편한 길을 버리고 그의 변호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송강호가 80년대 엄혹한 군부독재하에서 정의를 표상하는 얼굴이라면, 임시완은 그 시절 억압당한 청춘의 얼굴을 아프게 대변하는 역할이다.

“부산 사람, 부산대학교, 공대생, 같은 정서, 같은 말, 나의 선배들 이야기… 진우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과 미팅 때 이 역할은 내가 꼭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연예계 데뷔 전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를 다녔던 임시완은 부산대학교 공대생인 영화 속 진우에게서 뗄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고 한다. 88년생인 그가 그 시절의 아픔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억울함을 겪은 청년의 마음을 읽고 표현해내는 거라면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일단은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어서, 아이돌 출신이라고 걱정하는 양우석 감독에게 확고하게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상황은 신인배우에겐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촬영 들어가기 전 사전대본 연습 때 선배님들 연기를 보는데, 차원이 완전 다르더라. 난 이제 막 덧셈, 뺄셈하는데 선배님들은 미적분을 하고 있더라.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이 흐름을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임시완 나름의 방법은 최대한 캐릭터에 빠지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것보다 그가 힘들었던 건 고문으로 피폐해진 진우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송강호 선배님의 말씀이 해답이 됐다. 연기가 어렵지만, 접근은 어렵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이 때리면 아프다, 맞았는데 아픈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거짓 연기다’라고 하시더라.” 일차원적이지만 정직한 해석. 임시완은 그 느낌 하나에 매달렸다. 물고문의 고통을 체험해보려 물을 받아놓고 숨을 참는 것도 해봤고, 바깥 활동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제했다. 그룹 동료들과의 단체 숙소 생활에서도 말을 아끼면서, 어둡고 우울한 진우의 심리에 가깝게 가려고 애썼다. 송강호의 연기를 스크린이라는 여과 없이 보는 것도 임시완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눈앞에서 송강호 선배의 연기를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송강호 선배는 연기를 하는 동시에 연기를 하는 자신을 보는 눈이 있는 것 같더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자신의 연기를 판단하더라. 반면 내 안에 갇혀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깨질 것 같은 아름다움

<변호인>은 임시완에게 연기의 재미를 더 공고히 해줬다는 점에서도 한층 더 각별한 작품이다. 그룹 ‘제국의 아이들’ 멤버로, 또 연기자 임시완으로 활동해온 지난 4년간 그는 “스스로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이 많았다”라고 말한다.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기까지 애석하게도 그에겐 드라마틱한 사연이 없다. 재능과 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아이돌 세계에서 임시완의 출발은 소소했다. 학창 시절엔 꽤 모범생이었는데 그 이유가 우습게도 ‘공부하기 싫어서’였다. 대학 가면 뭐든지 다 하도록 해준다는 부모님 말을 믿고 일단 공부해서 대학만 가자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때까지 여느 학생들처럼 수업 듣고, 인터넷에 과외 공고도 내는 평범한 대학 1학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친친가요제에 나갔고, 예선 탈락에도 불구하고 소속사 눈에 띄어 명함을 받았고, 그길로 서울 와서 데뷔하고, 연기까지 할 수 있게 됐단다. “이 직업에 매력을 느껴서 시작한 게 아니라 들어와서 매력을 느꼈다. 정말 운이 좋았는데, 그 때문에 막상 데뷔하고 나니 걱정이 생기더라. 아이돌로 활동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이고, 잘하는 동료들이 너무 많아 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능력도 없는데 얻어걸린 거라면, 잘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욕심만 내는 거라면, 이곳에선 민폐인거다.”

그렇게 흔들렸던 임시완에게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엄청난 기회이자 탈출구였다. 열일곱에 장원급제한 수재 꽃도령 ‘허염’은 내성적이고 반듯한 모범생 이미지의 임시완에게 딱 맞춘 듯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강렬한 카리스마의 김수현과는 상반된 또 다른 애틋한 매력으로 임시완은 ‘허염앓이’를 불러일으키며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인기 드라마의 막강한 조연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그렇게 큰 반응이 있을 줄 몰랐다. 얼떨떨했다. 사회에 나와 연기를 통해 처음 나 자신을 인정받은 것 같다.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해를 품은 달>이 신고식이었다면, 드라마 <적도의 남자>는 ‘연기자’ 임시완이라는 말을 어색하지 않게 해준 일종의 굳히기였다. 서울대에 진학한 지방 출신 수재이지만 한편으로는 단짝 친구를 배신하는 냉철한 ‘장일’은 임시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물론 그는 아직 부족하고, 멀었다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촬영 때 송강호 선배님한테도 많이 혼났다. 들어보면 모두 애정 어린 꾸지람이었던 것 같다. (웃음)” 하지만 연기의 기술과 별개로 그가 우리를 들뜨게 만드는 신선한 재능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녀린데 날카로우며 아름다운데 곧 깨질 것 같다. 해맑은 듯 보이나 우수에 차 있다. 배우로서 그가 가진 ‘연기 재료’는 이렇게 모두 상반된 것들이고, 그것이야말로 임시완의 매력이고 분위기다. “여전히 아이돌 출신이라는 데 대해 걱정이 많은 건 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돌이라서가 아니라 경력이 짧다보니 실질적으로 연기를 할 때 문제가 생길 거라는 우려일 거다. 그래서 매번 미팅을 할 때 난 나의 상태를 확실히 이야기한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열의가 대단하다고 포장하기 싫다고. 감독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캐릭터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큰 산 하나를 넘었지만, 그는 섣불리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 이런 규정은 없다. 아직은 다양한 경험을 해볼 때인 것 같다. 연기가 재밌다. 다른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본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다.” 한동안 너무 어두운 상황에 빠져 있다 보니 좀 발랄한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 바람도 있다. “<무한도전>을 빼먹지 않고 보는 팬이고 시트콤, 예능을 특히 좋아한다. 남들 생각처럼 그렇게 진지하지는 않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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