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혁명적 이상주의가 품은 저항의 표징 <캡틴 하록>
2014-01-15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마력의 ‘애꾸눈 선장’ 캡틴 하록이 3D로 돌아왔다.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등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의 세계관에 장엄한 비주얼이 얹힌 스페이스오페라로, 3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SF 초대작이다. 지구를 점유하기 위한 ‘컴홈전쟁’ 종식 뒤 100년, 지구연방정부의 원로로 구성된 가이아위원회는 지구를 불가침 성역으로 지정하여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 홀연 사라졌던 해적선 아르카디아호가 나타나자 가이아위원회는 숙적인 우주해적 하록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를 투입한다. 니벨룽족의 영구엔진기관이 장착된 하록의 해적선에 갓 승선한 애송이 승무원 야마는 은폐된 비밀들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아르카디아호는 미완의 최종병기와 맞선 일대 격전을 통해 고향별 지구를 둘러싼 환상의 게임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초대형 3D로 제작된 만큼 <캡틴 하록>에서는 일본 아니메 최초로 페이셜 캡처를 활용해 배우의 표정이나 입술 움직임까지 담아내며 사실성을 높였다. 무기, 함대, 비행선의 마모 정도까지 디테일하게 살려낸 전투 신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빛을 통해 스캔하듯 공간 이동하는 인스킵 장면에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상황적 버추얼리티를 살리며 재현의 리얼리티를 강조한 영리한 3D애니메이션 전략에선 <아바론>(2001)의 대중적 실패를 만회하려는 야심도 보인다. 원작에서도 드러났듯이 하록은 소년만화의 주인공으로는 이례적으로 압도적 카리스마를 품은 성인 영웅이었다. 하록은 후계자 소년에게 영원과 생명, 반역의 의지를 계승하는 혁명적 이상주의자다. 동시에 인류의 종언과 문명의 몰락을 예감하는 비관에 찬 허무주의자이기도 하다. 비극적 다크히어로 하록에겐 부패한 정권에 맞서 이미 실패한 혁명을 부활시키려 하는 레지스탕스의 이미지가 농후하다.

<캡틴 하록>은 일본 개봉 당시 오구리 슌, 미우라 하루마, 아오이 유우 등 톱스타의 목소리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서는 류승룡, 김보성, 서유리의 한국어 더빙판으로 만날 수 있다. 류승룡의 저음은 매력적이지만, 하록이 품은 날선 예리함이 사라지고 중년의 둔탁함만 부각된 게 아닌가 싶다. 프랑스혁명, 태평양전쟁 등 다양한 역사적 소재를 활용하고 불교, 게르만 신화, 니체주의의 철학을 품은 대하서사가 2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진행되니 흐름이 가파르고 툭툭 끊기는 점도 살짝 아쉽다. 다만 비장하고 장엄하며 대책 없이 낭만적이기에 매혹적인 그 세계관만은 하록 고유의 것이다. 계몽의 환상이 투과하지 못하는 암흑의 상징인 하록이야말로 혁명적 이상주의가 품은 저항의 표징임엔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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