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대표는 부들부들 떨면서 인터뷰 장소에 들어왔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한파 탓도 있지만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온 것이다. 한껏 차려입고 나왔다고 했더니 그는 2년 전 <씨네21>과 인터뷰 때 있었던 일화부터 들려준다(<씨네21> 843호 특집 ‘충무로 신 제작자 5인을 만나다’). “그때는 사진 찍는다는 얘기를 못 듣고 제주도에서 시나리오 작업하다가 편하게 나갔다가 결국 사진기자가 빌려준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게 트라우마가 돼서 오늘 좀 신경썼다. (웃음)” 유비유필름 창립작 <완득이>(2011)로 531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잭팟을 터트린 뒤, 그는 지난 2년여 동안 <우아한 거짓말>(감독 이한/출연 김희애, 고아성, 김향기, 김유정, 유아인)의 제작에 매달려왔다.
-<우아한 거짓말> 후반작업은 거의 마무리됐겠다.
=2차 편집본을 수정하고 있는데 영상편집은 끝났고 최종 믹싱만 남았다. 3월 개봉 전까지 무리 없이 완성할 수 있다. 내일 마케팅 시사 겸 블라인드 시사를 진행해 마지막 의견을 반영한 뒤 등급 심사에 보낼 계획이다.
-배급사 모니터링 점수로 4.02점을 받았다고 들었다. 보통 모니터링 평균 점수가 3.6점이라고 하니 잘 나온 셈이다.
=조마조마했는데 일단은 높은 점수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배급사인 CGV 서정 대표도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봤다고 하시더라. 사전 반응이 나쁘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완득이>와 마찬가지로 <우아한 거짓말>도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판권을 구매한 이유가 뭔가.
=영화화했을 때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면 관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아한 거짓말>의 제작 기간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시나리오 작업은 <완득이>가 마무리된 뒤 바로 시작했다. 처음에 이한 감독이 여자들의 심리를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며 연출을 거절했다. 결국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는데 나중에 감독이 혼자 소설을 읽다가 울었다고 다시 찾아왔다. (웃음) 그래서 제작이 늦어졌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1년 정도 앞당겨졌을수도 있다.
-<완득이>의 흥행 성공으로 좋은 조건을 제시한 투자배급사가 있었을 것 같은데.
=<우아한 거짓말>은 CJ, 롯데, 쇼박스, NEW 4대 투자배급사에 모두 거절당했다. 이야기가 상업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던 중 CJ엔터테인먼트가 CGV 무비꼴라쥬에 맡겨보라며 역제안을 해왔다. 제작자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완득이>에 이어 이번에도 직접 각색을 했다.
=<완득이>를 할 때는 바꿔야하는 지점들이 딱 보였다. 이번에는 소설의 설정과 전개 그리고 느낌을 그대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대사는 많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캐스팅은 어땠나. 김희애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기 전이었던데다 오랫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배우를 얹혀봤을 때 이 배우와 캐릭터의 조합이 신선하게 느껴지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느 날, 김재중 PD가 김희애라는 이름을 얘기하자 느낌이 딱 왔다. 김희애보다 신선한 배우가 또 어디 있나. 물론 김희애씨도 처음에는 주저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완득이>의 팬이었다. 이한 감독이 설득해서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꽃보다 누나>에서 보여준 김희애의 활약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
=원래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기에 영화가 관객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물론 이한 감독과 김재중 PD가 이것을 목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라고 부추긴 것도 있다.
-큰딸 만지 역에 고아성, 작은 딸 천지 역에 김향기, 천지의 친구 화연 역에 김유정을 캐스팅했다.
=고아성은 <괴물> 때부터 팬이었다. 김향기양은 이한 감독이 함께 작업하길 바랐던 친구였다. 김유정양은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뛰어나더라. 화연은 악역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단순하게 악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물이 가진 복합적인 감정을 잘 집어냈다.
-유아인도 티저 예고편에 잠깐 등장하던데.
=그의 팬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일 수도 있겠는데 조연이다.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출연하고 있었던 까닭에 늦게 합류했다. 그가 출연하기로 하면서 투자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연기를 기대해도 좋다. 그동안 우리가 봐온 연기와는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줄 거다.
-얘기를 들어보면 제작이 수월하게 진행된 것 같다.
=지금이야 이렇게 차 한잔하면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한 감독과 매일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제도 이한 감독에게 “투자 심사에서 연거푸 떨어졌던 이유는 연출자의 실력 부족”이라고 농담했는데, 이 감독도 그때 생각하면서 “무슨 소리냐. 제작자가 괴팍하게 생겨서 투자자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되받아치더라. (웃음)
-유비유필름을 혼자 이끌다가 <완득이>가 끝난 뒤 노봉조 공동대표를 영입했다.
=노 대표는 유비유필름을 설립할 때 투자를 해준 사람이다. 오랫동안 투자금을 갚지 못하고 있었는데 <완득이>의 흥행으로 겨우 갚았다. <출발! 비디오 여행> <접속! 무비월드> 등 영화 정보 프로그램 PD 경력도 있고 영화쪽으로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어 회사의 비즈니스쪽을 맡아주길 바라며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작품 개발에, 노 대표는 회사 경영과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한 건가.
=서로 특화된 분야에 더 힘을 쏟고 있으나 실은 모든 일을 같이 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업무를 분담하기보다 심적인 부담감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더 좋다.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무엇보다 퇴근할 때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있다는 게 제일 좋다. (웃음)
-특화된 분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달라.
=나는 원래대로 소설 판권을, 노 대표는 만화와 웹툰쪽을 담당하는 식이다. 노 대표에게 아이가 둘 있는데 작은아이가 웹툰 마니아다. 아이가 아빠에게 추천하면 노 대표가 보고 다시 나에게 추천한다. 나와 노 대표가 동시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하면 그때부터 판권 구매를 준비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화가 가능한 아이템들을 서로의 분야에서 여러 루트로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10개가 넘는다는데 어떤 작품들인가.
=현재 웹툰 한편, 순수 창작 시나리오 5편, 소설 판권이 5편 정도 있다. 모두가 알 법한 작품으로는 <태백산맥>이 있다.
-<태백산맥>은 드라마로 제작하는 프로젝트 아니었나.
=10권 분량의 방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영상화해보고 싶어 드라마로 제작하려 했었다. 방송국과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됐다. 조정래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자 이내 수긍하셨고, 영화로 제작하자는 새로운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이셨다. 노 대표와 함께 많이 공부하고 고민한 끝에 두편으로 나눠 찍자고 결정한 상태다. 감독이나 캐스팅은 아직 결정된 게 없지만 방향만 잡히면 머지않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프로젝트가 있나.
=창작 시나리오는 밝히기 어렵고, 소설 판권을 구매한 작품은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최민석 작가의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라는 단편이 있다. 악덕 기업주 아래서 시달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뒤 광화문에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돌진하는 이야기다. 최 작가의 작품을 보면 굉장히 독특한 색깔이 있다. 다른 사람이 손보기보다는 직접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시나리오 작업을 제안했다. 현재 최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이중 가장 빨리 진행되는 작품은 무엇인가.
=현재 <손님>이 캐스팅 중이다. 이한 감독의 <청춘만화>의 조감독이었던 김광태라는 신인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 감독이 시나리오 작성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 영화화하면 정말 잘 찍을 거라 판단되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두편이나 계약을 했다.
-소설의 공연화 판권도 구입해 연극 제작까지 할 것이라고 들었다.
=김범 작가의 소설 <할매가 돌아왔다>라는 작품이다. 영화보다는 연극으로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고 판단했다. 아내가 오달수 배우가 이끄는 극단 신기루만화경에서 활동 중인 배우인데 현재 육아로 인해 연극 활동을 쉬며 대본 작업을 하는 중이다.
-이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이 정도의 라인업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작품이 먼저 시작될지도 모르고 몇 작품이나 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완득이>로 돈을 벌고 나니 다시 영화를 만드는 데 투자하고 싶어지더라. 영화화하고 싶은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아 계속해서 일을 벌일 수밖에 없다.
-제작자로서 어쩔 수 없는 본능이겠지만 감당하기 부담스럽진 않나.
=그렇지 않아도 노 대표가 계속해서 작품 수를 줄이라고 말한다. 봐라. 지금도 옆에 앉아서 압박을 주고 있잖나. (웃음) <완득이>도 오래 걸려 제작한 작품이지만 그 뒤로 <우아한 거짓말>이 개봉하기까지 2년6개월이 걸렸다. 영화는 기획부터 관객과 만나기까지 2, 3년이 걸린다. 신중하게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해야 회사가 돌아가지 않겠나.
-지난해부터 2015년까지 매년 부산연극협회에 2천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부산에서 연극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부산 연극계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기반은 연극이다. 나에게는 고향 같은 존재다. 지방 연극인들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극에 대한 도움보다는 연극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다.
-부산에서 연극을 하다가 영화를 해야겠다며 서울로 올라온 계기는 무엇인가.
=영화에 대한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영화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방법도, 수단도 없었다. 시나리오 쓰는 게 우선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두편을 들고 무작정 올라온 거다.
-그 두편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포화속으로>다. 제작 경험이 전무해 태원엔터테인먼트와 공동제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작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에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었다. 태원엔터테인먼트와 공동제작하면서 영화제작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 공동제작사의 대표라서 영화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제작자로서의 권한은 거의 없었다. 제작자 대우를 받긴 받았으나 나를 불편해하긴 했다. 아는 것이 없었으니 현장에서는 제작부 막내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제작부 일을 조금씩 거들어주며 영화제작 과정을 몸으로 배웠다.
-올해부터는 그간 뿌려놓은 씨앗을 거두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지난 2년간 작품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올해부터는 제작 편수를 늘려갈 예정이다. 회사 규모가 커지다 보니 <완득이> 때와 달리 내가 내리는 판단을 검토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학력이 고졸이라 일류 대학을 나온 형(노 대표)이 내가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많이 도와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상호 보완이 될 수도 있겠다. (이 말을 들은 노봉조 대표가 “무슨 소리냐. 김대표와 내가 취향이 비슷해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웃음)”고 말하자) 내 학력을 두고 대표이사가 회사 평균 학력을 깎아먹는다며 욕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발뺌하는지…. (웃음)
“우리가 보고 있으면 되게 뻘쭘하겠다. 비켜줍시다. (웃음)” 인터뷰 자리에 뒤늦게 합석한 노봉조 대표가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던 김동우 대표를 지켜보다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을 던졌다. 그 모습이 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비즈니스 파트너 같다기보다 의좋은 형제처럼 보였다. 이같은 관계라면 1+1은 2가 아닌 3이나 4도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유비유필름이 여기저기에 뿌려놓은 프로젝트들을 좀더 빨리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