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 Seymour Hoffman 1967.07.23~2014.02.02
<여인의 향기>(1992) <남자가 사랑할 때>(1994) <리노의 도박사>(1996) <트위스터>(1996) <부기 나이트>(1997) <위대한 레보스키>(1998) <해피니스>(1998) <매그놀리아>(1999) <플로리스>(1999) <펀치 드렁크 러브>(2002) <카포티>(2005) <미션 임파서블3>(2006)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 <시네도키, 뉴욕>(2008) <다우트>(2008) <마스터>(2012) <마지막 4중주>(2012)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2013) <모스트 원티드 맨>(2014)
“사람들은 날더러 통통하다고 그래요. 아니면 비대하다고. 다른 말들도 많지요, 둔해 보인다는 건 어때요? 그러니까, 나는 그런 남자라는 거예요. 어쨌든 날더러 매력적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나는 누군가가 내게 적어도 귀엽다고는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누구도 그러질 않네요.”
누구도 그러질 않네요.
그 남자는 이제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지 못한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세 아이의 아버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어도 죽음이 낯설지는 않은 나이, 마흔여섯살의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번이라도 그의 영화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창백한 금발의 배우. 그가 사라졌다. 쉽게 붉어지는 그의 얼굴과 흥분하면 굵은 힘줄 대여섯개가 돋아나는 이마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
2014년 2월2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죽었다. 팔뚝에는 주사기를 꽂고 아파트에 65개의 헤로인 봉지를 남긴 채로, 혼자 떠났다. 그에게 헤로인을 팔던 딜러는 재고가 떨어지면 싸구려 마약을 속여 팔곤 했다고 한다. 그날 그를 죽인 마약은 그런 식으로 섞여 들어온 불량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어째서 그토록 많은 헤로인을 쌓아두어야 했던 걸까.
<뉴욕타임스>는 그를 “졸려 보이는 뚱뚱한 금발의 남자, 빗지 않은 머리에, 스타라기보다 일거리 없는 배우처럼 보이는 구겨진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처럼 숱한 인터뷰에서 ‘그 자신에게 편안하다’고 묘사되었던, 누구보다도 할리우드 스타답지 않았던 호프먼이, 참으로 할리우드다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핵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통조림 수백개를 방공호에 비축한다지만, 필사적으로 보일 정도로 헤로인을 끌어모은 호프먼이 진정 무엇을 두려워했던 건지, 그의 목소리를 놓친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야구와 레슬링에 몰두했던 소년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허리띠 위로 뱃살이 넘쳐흐르는” 얼마 전까지의 풍채로는 절대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야구와 레슬링에 몰두했다. 하지만 심한 부상으로 운동을 쉴 수밖에 없었던 그를 누나가 극장으로 데려갔다. 이혼하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로스쿨에 다니는 엄마를 대신했던 누나는 호프먼의 영웅이었다.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게다가 그 극장에서는 열다섯살의 소년이 꿈에서나 만날 것 같았던 소녀가 연기를 공부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극장에 가야지, 생각했다. 정말 로맨틱했다.” 그것이 평범한 외모를 가졌던 소년의 인생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쉬운 길일 수는 없었다. 뉴욕대 드라마스쿨 시절부터 숱하게 오디션을 보았지만, 합격을 하고도 상업성을 추구하는 프로듀서에게 거절당한 적도 있었다. 아일랜드 혈통의 발간 뺨에 금발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호프먼은 세상이 문제라고 믿었다. “내가 가장 마른 상태였던 <카포티>에서 몸무게가 88kg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이상적인 몸무게는 92kg 정도이다.” 살을 뺐다고는 해도 거구의 호프먼은 작고 마르고, 젊은 시절엔 턱이 뾰족했던 작가 트루먼 카포티(<티파니에서 아침을> <인 콜드 블러드>)하고는 전혀 다른 남자였다. 카포티는 흐물거리는 손짓을 과시했고, 모든 모임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만 했으며, 기름 방울처럼 끈적이면서 다른 무엇과도 섞이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더분하면서 세상의 이목을 기피했던 호프먼에겐 그 모든 것이 넘치는 짐이었다. 전투를 위해 발명되었지만 정작 진짜 싸움에선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사슬 갑옷과도 같았다. 무겁고 무거웠다. 하지만 그는 <카포티>로 200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호프먼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카포티를 연기하기 위해 넉달 반을 홀로 보냈다. “내가 움직이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내 성대가 원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카포티가 되기 위해 그는 외롭게 방 안에 앉아 유령과 조우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그가 지친 것은, 그가 두려워진 것은. “연기를 잘하기 위해 집중한다는 건 머릿속에 슈트케이스를 쌓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그건 정말 진을 빼는 일이다. 절대 쉬워지지 않을.”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호프먼은 그 재능과 화해하지 못했다. 수십명의 스탭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연기는 그에게 언제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영화 <해피니스>를 찍던 어느 날,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사각팬티를 입고 세 시간 동안 사람들 앞에 앉아 있는 건 힘든 일이다. 나는 매우 육중한 편이었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비웃을까봐 무서웠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말을 이었다. “연기란 그런 것이다. 세상 앞에서 벌이는, 정말 사적인 일이다.” 모두가 성실하다고 인정했던 호프먼은 그의 재능을 갈구하는 카메라 앞에서, 쉬는 법을 알지 못했다.
호프먼이 배우로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여인의 향기>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부터였다. 그때까지 배우로 먹고살기는커녕, 스파에서 기도를 하든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를 하든, 잘리기만 했지 정기적인 일자리라곤 없었던 호프먼은 마냥 기뻤다. 그 영화 이후 호프먼은 연기로만 돈을 벌었다. 그리고 괜찮아 보였다. 배역에 빠져 허우적대는 배우들과 다르게 그는 촬영이 끝나면 자신이 맡은 배역을 서랍 속에 집어넣고는 분장실을 나와 “안녕, 내일 아침까지는 보지 말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25년이 채 되지 않는 사이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어느 시기엔가 영화 <락앤롤 보트> 촬영을 끝낸 호프먼은 애니메이션 <메리와 맥스>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고, 빈과 뉴욕에서 정식으로 공연하기 전에 2주 동안 <오셀로> 워크숍을 진행했고, 영화 <다우트> 홍보를 했고, 자신이 참여한 극단 라비린스의 기금을 모집했고, 여러 행사와 영화제에 참석했다. 세 아이와 놀아주기도 해야 했다. “엄청나지?” 그는 말했다. 정말 그가 일을 많이 한다는 건 그를 인터뷰한 기자 대부분의 소감이었다.
그렇게 바빴던 그에겐 한 가지 공포가 있었다.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 <부기 나이트>에서 수줍은 고백을 건네는 게이를 연기한 이후 숱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가 아니면 해내기 어려웠을 독특한 인물들을 맡았지만, 그는 언제나 걱정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점은 점차 비틀려 다른 무언가가 될 거다. 그러면 나쁜 시나리오는 괜찮은 것이 되고, 괜찮은 시나리오는 좋은 것이 된다. 그러다 보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도 괜찮아진다. 오디션을 보고 나서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것, 정말 죽고 싶은 일이겠지.” 무섭도록 빠르고 완벽하게 배역을 갈아입으면서도 호프먼은 근심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타인이 보기에 그에겐 그럴 이유가 없었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젊지도 않았다. 20년 전에 죽었더라도 그는 스물두살에 떠난 리버 피닉스처럼, 낙화를 애도하듯 서글픈 헌사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숱이 적은 금발과 벗겨진 거나 마찬가지인 넓은 이마, 색을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눈동자의 호프먼은, 압도적인 미(美)가 지배하는 스크린에서, 아무도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그의 우상이었던 메릴 스트립이 말했던 것처럼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등을 곧추세우고, 저건 도대체 누구지?”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왜 작아 보였을까
호프먼은 우리 모두였다. 펄이 잔뜩 들어간 립스틱을 바르고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플로리스>의 게이도, 온화한 미소와 천둥 같은 분노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마스터>의 미심쩍은 구루도, 그 자신조차도 스스로의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마는 <카포티>의 스타 작가도, 그는 모호한 얼굴 안에 진실처럼 담아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누구라도 자신을 투영하게 되는 허구였다. 텅 빈 얼굴과 눈동자, 무한을 담은 빈 그릇.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그릇이, 용량을 초과했다. 넘치고 말았다.
호프먼이 연기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행했다. 도덕적인 판단도, 그 판단에 의한 왜곡도 없이 오직 배역에 몰입한다고 말했던 그는 수십명이 거쳤던 기나긴 감정의 여로를 똑같이 밟아야만 했다. 그 수십명의 무게를 짧은 생에 짊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삶이라고 믿었다. 뭔가 근사한 일을 하는 영웅은 아니더라도 “삶이란 어떤 것인지, 조금 더 사실적인 시선을 가지고” 배우 노릇을 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고통 또한 외면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연기한 모든 인물은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내가 그들을 보는 방식이다. 나는 부정적인 캐릭터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 다만 장애물과 분투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찾았을 뿐이다.”
그의 죽음을 접하고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생각했다. 그가 왜 그토록 작아 보였을까. 그건 호프먼이 그 거대한 체격마저 짓누르는 투명한 그림자를 짊어지고 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중심에 서고 싶지 않다.” 성공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그 무엇도 내주고 싶지 않다던, 먹이 따위 주고 싶지 않다던 그는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람은 누구나 중심에 서고 만다. <마스터>에서 호프먼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처럼 삶에 “휘둘리고, 휘둘리고” 휘둘려서, 정신을 차리고 나면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을 포박한 회오리를 원망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도대체 몇개나 되는 회오리가 호프먼의 불룩한 배와 커다란 머리를 휘젓고 있었을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다.
스물두살에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한 호프먼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40대 초반에 담배도 끊었다. <가디언>과 인터뷰를 끝내고는 흐린 런던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던 “세상에서 가장 암울한 낙관주의자”는 모든 자잘한 즐거움을 버리고 세 아이의 다정한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 2013년 5월에 그는 약물중독 때문에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고백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멋진 일
그리고 죽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와 자라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니, 나이 먹는 건 진짜 멋진 일이 아닌가” 하고 반문했던 중년 남자는 마흔여섯살에 나이 먹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두지 않는다. 날마다 그의 죽음에 관한 새로운 속보가 전해져서, 호프먼은 그토록 꺼렸던 중심에서도 중심에 놓여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뭐라고 할까, 인터뷰도중에 버릇처럼 말했듯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라며 투덜대지 않을까. 이미 늦은 일이겠지만 그처럼 많은 말을 쏟아내는 그들 중에서 다만 한명이라도 진실한 한마디를 전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해서, 댁은 그렇게 귀엽지는 않아요, 많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공부하고 사랑하고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에게 XXX이란?
배우가 된다는 것
공부해야 한다. 좋은 선생은 몽땅 찾아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연기와 관련된 건 모조리 해야 한다. 명성이나 돈을 좇아서는 안 된다. 단지 돈을 원한다면 연기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다. 연기를 사랑해야 한다.
연기라는 것
연기란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다르다. 시작할 때마다 다시금 처음처럼 여기저기 다치고 긁힐 것이다. 차라리 골프와 비슷하달까. 골프채를 어떻게 휘두르는지는 알고 있겠지만, 공을 치고 나면 멀거니 서서 생각할 거다. 내가 제대로 쳤나? 이번엔 뭐가 잘못된 거지? 연기할 때마다 초보로 돌아가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해야만 한다.
명성이라는 것
어떤 사람들은 유명해진다는 것의 물결을 능숙하게 헤엄쳐간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관심받고 싶지 않다. 명성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행동하면 사람들은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만들 수 있다. 허구한 날 별거 아니라는 듯이 산책하다 보면 나를 봐도 “어? 필립 호프먼이네?” 그러고 말겠지.
산다는 것
위험천만하다. 산다는 건 근본적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상황에 처하는 일이 이어지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고난이 있고 의미가 있으며, 결과가 있다. 유머만 있다면, 만사는 재미있어질 수 있다.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꽤 웃기지 않은 일이란 없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저 위에서 우리 삶을 관찰하고 있다면 우리가 하는 짓을 보고 벌써 몇번은 웃지 않았을까.
아이들이라는 것
요즘은 시간이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나갈 궁리만 한다. 그리고 나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궁리도. 머릿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보물을 잃은 할리우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죽음에 대한 반응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죽음을 전해 듣고 정말 놀랐고 슬펐다. 나는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그와 함께 즐겁게 연기했다. 그는 정말 멋진 남자였고, 엄청난 재능이 있었던, 진짜 보물이었다. _제프 브리지스
무엇보다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진실하게 살고 일했다. 그의 재능이 정말 그리울 것이다. _숀 오스틴
그가 연기하는 윌리 로먼(<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을 놓쳤다면, 윌리 로먼을 영영 놓쳐버린 것이다. _스티브 마틴
그는 그저, 특별했다. 로드 스타이거 같았던 그는 위대한 배우였다. _케빈 코스트너
<25시>에 출연하여 우리에게 축복을 내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을 만난 건 일종의 계시였다. 신이 내린 그의 재능이 그리울 것이다. _스파이크 리
친애하는 필립, 아름답고 아름다웠던 영혼. 우리 중에서 가장 예민했던 그에게 세상은 너무 시끄러운 곳이었다. _짐 캐리
그는 시대를 초월해 가장 뛰어났던 배우 중 한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그처럼 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를 존경했다. _에런 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