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 한편의 영화가 휩쓸고 갔다. 소위 1천만 영화가 이제는 1년에 한두편 등장하는 게 예사가 되었지만, 단기간에 전 국민의 5분의 1이 극장에 가서 같은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단순한 일은 아니다. 대박 영화들의 운명이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간판이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진다. 또 어떤 영화는 그것이 불러일으킨 집단적 감흥의 다층성이 공동의 의제가 되어 하나의 사회사적 사건으로 남는다. 극소수이지만 어떤 영화는 그것을 본 관객수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영화적 질문을 남기고 혹은 재발견의 과정을 거쳐 오래 되새겨진다.
<변호인>은 어떤 운명의 영화일까. 아마도 두 번째 범주에 가까울 것이다. 비평은 첫 번째 범주의 영화에는 대체로 무관심하며, 세 번째 범주의 영화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범주의 영화들을 다루는 비평은 대개 그 영화의 사회적 파장을 잊고 텍스트의 미학적 자질에만 몰두한다.
비평이 제일 버거워하는 대상이 두 번째 범주의 영화들이다. 미학적으로는 평범하거나 첫 번째 범주의 영화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그것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감흥의 폭과 깊이가 특별한 까닭에 평론가의 직무(사회적 요구가 아니라 평론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직무이긴 하지만)라는 자의식이 그 영화를 진지하게 다루도록 요청한다. 그런데 미학적 평범함 혹은 진부함과 사회적 반향의 특별함이라는 바로 그 점이 비평을 난처하게 만든다. 영화평론의 일반적 범주를 넘어서는 사회적, 정치적 의제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루려 할 때 평론가들은 얼치기 사회학자나 서투른 문화연구가 시늉을 내고 있다는, 또는 정체불명의 잡문을 쓰고 있다는 자괴감에 종종 사로잡힌다.
<변호인>이라는 영화 앞에서 나도 그러했다. 비평 쓰기를 몇번 시도했으나 아마도 그 자괴감 때문에 계속 길을 잃었고, 글쓰기는 자꾸 중단되었고 결국 포기했다. 그럼에도 늦게나마 이 영화에 대해 다시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Fantasy’라는 이름의 블로거가 쓴 비판론 ‘<변호인>, 텍스트 안과 밖의 노무현’(http://blog.naver.com/satan_tango/110183981904)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훌륭한 비평이며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무엇보다 <변호인>이 “박정희라는 유령을 불러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노무현을 불러냈다”라는 지적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의 글은 영화평론의 일반적 범주를 벗어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 당당한 글에 화답하고 싶었고 약간의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다.
두 번째 범주의 영화들 중에서도 <변호인>은 매우 특별한, 아마도 가장 특별한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를 다른 영화를 말할 때처럼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그리고 아마 우리 대부분은 이 영화를 한편의 영화로만 볼 수 있는 외국 관객도 먼 미래의 관객도 아니다. 2013년 초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이 개봉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평론을 내놓은 몇몇 진중한 미국 평론가들의 예민한 정치적 반응을, 우리는 외부 관객으로서 여유롭게 지켜보며, 편한 마음으로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씨네21> 895호 참조).
<변호인>에 대해선 그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이 영화의 의제에 깊이, 아마도 미국인들과 링컨이나 오바마의 관계에 비할 바 없을 만큼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연루의 감정과 의식 없이 이 영화를 볼 수 없다. 이 연루의 성격을 말하지 않고 이 영화를 말할 수 없다. 나는 사실에 바탕한 <변호인>의 인물과 시대에 대해 특별히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학생과 같은 세대이며, 그 세대가 평균적으로 겪어야 했던 일들을 겪고 들었다. 나는 이미 연루되어 있다. ‘초연하게’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 아니라고 믿지만, 다수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 이글은 중립적인 영화평이 아니라, 연루자의 편견이 담긴 잡문이다.
2.
연루의 중심축은 <변호인>이 다루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우리의 연루다. 그것은 사적-감정적 수준과 공적-정치적 수준에 걸쳐 있다. 비슷한 사례조차 찾기 힘들 만큼 특별한 점은 전자에 있다.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에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처럼 깊은 사적-감정적 연루의 느낌을 가진다는 건 그 일을 겪기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사적-감정적 연루의 정체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처럼 착한 사람을 우리가 자살로 내몰았다’는 죄의식이다(‘착한’ 외엔 다른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착한’은 ‘위대한’ 혹은 ‘고결한’과 같지 않다. 내가 아는 그에 대한 정보는 극히 한정적이므로, 이 표현은 객관적 평가와는 무관한, 한 존재와의 대면에서 비롯되는 즉각적인 인상 혹은 마음의 동요에 가까운 2인칭적 감화의 표현이다). 그해 늦봄 허공을 향해 가장 많이 던져진 말은 ‘미안합니다’였다.
이 죄의식은 부당한 희생자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죄의식과 같지 않다. 그것은 그를 향해 돌팔매질하는 군중에 끼어 있었다는, 개인적 자책에 가까운 감정이다. 우리는 그가 ‘바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최고 권력자를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바보’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했다. 한때 억울한 사람들의 신음에 혹은 나의 소망에 응답하듯 싸웠던 사람이, 나의 돌팔매에 응답하듯 자살했다. 추악한 권력의 모함으로 그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건 반쪽의 진실이다. 그는 한때 추악한 권력에 대해 싸움을 선택했던 사람이다. 우리의 발신이 달라졌고, 그는 자신의 제거로 답했다. 마지막 날들의 그를 괴롭힌 주변의 비리 혐의의 실체에 대해, 또 그가 느꼈을 치욕과 절대적 고립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발신 그리고 그의 표정과 응답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을 이 사적인 죄의식은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죄의식의 해소가 향해야 할 대상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애도의 대상이 아니다. 애도의 의식은 상실감을 다룰 수 있지만, 죄의식을 다룰 수 없다. ‘노무현 정신의 계승’과 같은 정치적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공적인 과업이 2인칭적 죄의식의 해소를 헛되이 시도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는 응답하는 사람이었고, 최고 권력자까지 거친 정치지도자로서는 유례없는 2인칭적 존재였다. 그가 우리의 돌팔매에 죽음으로 응답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차라리 자살이라는 최종적 응답이 그를 형용모순에 가까운 ‘2인칭 공인’으로 각인시켰다.
일국의 대통령이었고 그의 정치의 효과는 지속되고 있기에 그와의 공적-정치적 연루는 오늘의 한국인 누구에게나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와 사적-감정적으로 연루된 이들에게 공적-정치적 연루의 표정은 좀 복잡한 것 같다. 깊은 사적-감정적 연루를 빚어낸 그의 특별한 2인칭성이 그의 정치의 내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부족마을의 현명한 족장의 방식과 같은 2인칭의 정치를, 질서의 정치가 아니라 응답의 정치를 꿈꾸었던 것 같다. 혹은 보살핌의 정치, 어머니의 정치를 꿈꾸었던 것 같다(응답의 정치는 ‘소통의 정치’라는 유행어와 비슷하지 않다. 소통은 과정의 기술로 환원될 수 있지만, 응답은 응답자의 인격이 걸려 있다. 소통의 정치는 근사하지만 모호한 말이다. 소통의 과정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우리’의 요구가 반영되는 데 이르러야 하는가. 그런데 그 ‘우리’는 누구인가).
그는 최고 권력자로서 실패했다. 스스로 고백했듯, 간혹 오류인 줄 알면서도 실행 버튼을 눌렀고, 너무 많은 응답의 요구들 속에서 종종 길을 잃었다. 무엇보다 시장이라는 유령의 권력을 다루는 길을 찾지 못했고, 스스로 그 유령에 사로잡혔다. 돌팔매라고 표현한 우리의 비난도 그때 시작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응답하려 했지만 응답의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끝내 2인칭의 응답자로 남으려 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헌신적 인권 변호사이며 양심적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실패한 대통령이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하지만’의 자리에 ‘그래서’를 기입해야 할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공백으로 남겨둬야 할 질문의 자리일 것이다). 그 전 과정에 그의 착한 얼굴, 필사적(必死的, 그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실행했다) 응답자의 태도가 어두운 운명처럼 음각되어 있다. 공적-정치적 연루와 사적-감정적 연루는 서로 환원 불가능하지만, 노무현에 관한 한 양자의 경계는 식별 불가능하다.
그의 마지막 응답을 들은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그는 애도의 대상도 회고의 대상도 아닌, 여전히 무거운 질문의 대상이다. 그의 실패는 무엇이었을까. 응답은 정말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를 좌절케 한 시장을 결국 최종적 권력으로 승인해야 하는가. 우리의 돌팔매가 그의 실패를 향한 것이라면 부당하기만 한 것일까. 우리의 돌팔매는 정말 그를 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을 향한 것이었을까. 그 우리는 과연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집단일까.
3.
<변호인>은 감동적이다. 왜 아니겠는가. 여기엔 돈 없고 ‘스펙’ 없는 청춘의 서러운 안간힘이 있고, 그의 존중받지 못했지만 애틋한 사적 성공이 있으며, 마침내 성공을 내팽개치고 공동선에 투신한 영웅적 결단이 있다. 부모 없는 그의 곁에, 품어주고 꾸짖고 오열하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국밥집 아줌마)가 있어, 이 궤적에 인간적 온기를 불어넣는다. 사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 어머니의 미소와 눈물이며, 주인공 송우석은 그 미소와 눈물에 응답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 솜씨를 폄하할 수는 없다. 동요 없는 악과 의심의 여지없는 불의, 명백한 선과 이미 정해져 있는 정의의 선택, 그리고 선과 정의의 도덕적 승리의 이야기. <변호인>은 오래된 그리고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될 대중영화의 이 보편적 도식을 영리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것에 대해선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노무현과 우리 시대를 다루는 한, 창작자의 취사선택을 물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그것은 선택된 것들이 어떻게 배열되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라는 평자의 질문이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라는 연루자의 질문이다. <변호인>은 ‘젊은 날의 노무현’의 이야기다. 한 포털사이트의 <변호인> 소개 페이지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노통은 미워해도 노변은 미워하지 맙시다.’ 온갖 악성댓글에 대한 이 감동적일 만큼 순박한 옹호의 문장은 <변호인>의 취사선택 전략을 적절하게 요약한다. 변호사 노무현과 대통령 혹은 정치인 노무현을 분리시킬 것, 그리고 전자에만 집중할 것. 취사선택은 불가피하니, 이것 자체엔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돌려 말할 필요가 없겠다. <변호인>은 ‘영웅적 결단’의 즉각적이고 강력한 감화를 위해 중요하지만 논쟁적 사실들을 모두 버린다. 간단하게 물어보자. 1981년의 부림 사건을 다루면서 왜 1982년의 부산미문화원방화 사건은 다루지 않는가. ‘노변’이 역시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부산미문화원방화 사건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을 미국이 묵인한 데 대한 항의로 문부식 등이 벌인 사건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으로 문화원에서 공부하던 동아대생 1명이 사망했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민주화의 대의와 무고한 희생의 충돌 앞에서 어떻게 변호할 것인가. <변호인>은 그 딜레마를 질문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부독연사건으로 지칭되는 부림 사건을 다루는 방식도 순박한 척 영악하다. 물론 문제의 그 모임은 독서회였다. 하지만 1980년대는 독서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 이념적인 행위였던 시대다. 어떤 책은 읽고 나면 다시는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겁 많고 멍청한 대학 1학년생이 과격한 시위자가 되었던 건 어제 밤에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혹은 <우상과 이성>을 읽었기 때문이다. 용공 조작에 눈이 멀어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자유주의적 역사서조차 불온서적 명단에 올리는 멍청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당대의 권력이 금서 혹은 불온서적 목록을 작성한 건 그들 나름의 ‘합리적’ 행위였다.
‘송변’은 그러나 법정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만 거론하고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거론하지 않는다. 리영희는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고, 당대의 대학생들은 그의 글들을 읽고 레드콤플렉스의 미몽에서 깨어났다. 리영희는 좌파이론서가 아니라, 미 국무성 문서와 자유주의적인 영미 저널리즘의 인용만으로 베트남이 부당하게 적화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통일된 것이며 중국 공산당이 주목할 만한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금지된 이념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 혹은 경도는 당시 대학생들에게 보편적인 것이었다. ‘좌경화’ ‘의식화’라는 당시 관제언론(군사정부의 보도지침에 충실한 당시 대부분의 언론을 그렇게 불렀다)의 용어는, 악의가 담겨 있다 해도,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표현이었다.
당시 학회로 불린 대부분의 대학생 독서모임은 분명히 ‘정치적’ 조직이었고, 한동안 학생운동의 기본조직이었다. 이건 비화가 아니며, 그 시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변호인>에 등장하는 야학에서 피천득의 수필을 읽는 장면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모든 야학이 그렇진 않았지만, 대학생 독서회가 참여한 노동자 야학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연계를 위한 첫 단계였고, 거기선 국정교과서로 공부하는 일은 드물었으며 대개 노동자용 의식화교재가 따로 사용되었다. ‘순수한’ 독서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독서는 당당히 불온했다. <변호인>의 잘나가던 ‘속물변호사’ 송우석은 변호해야 할 대학생이 읽었다는 책을 쌓아놓고 밤새 읽는다. 하지만 그가 이 불온성과 대면하는 순간을 다루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읽었던 걸까. <변호인>은 의로운 자의 불온성도 질문하지 않는다.
이 모든 취사선택의 목적은 명백하다. 의심과 토론의 여지없이 자명한 선악 대비를 위해, 논쟁적 사실들을 버리는 것이다. 이 땅의 권력자에겐 보검과 같은 레드콤플렉스의 가공할 위협 앞에서 그 레드콤플렉스와 싸우는 대신, “나는 피천득의 수필을 읽는 실존주의자에 불과해요”라며 자신을 포장된 ‘순수’로 방어하려는 것이다. ‘붉은 악마’ 대 ‘하얀 천사’의 폭력적인 이분법의 프레임과 맞서는 대신, 자신을 그 프레임 안의 ‘하얀 천사’라고 강변하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법정에서의 송우석의 변호전략이 아니라, <변호인>이 시대와 인물을 그리는 이분법의 방식을 말하고 있다. 국가주의자의 폭력적인 이분법과 대중서사의 순진한 이분법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잔혹하고 폭력적인 권력 대 순박하고 가련한 민중, 혹은 사악한 저들 대 순수한 우리, 혹은 오염된 세상 대 순결한 나. 대중서사가 오래 사랑해온 이 도식이, 노무현과 우리 시대라는 절박한 질문의 사실들로부터 빚어진 서사에 작동할 때, 우리는 이것마저 창작자의 선택으로 존중해야 되는 걸까.
4.
더 중요한 문제는 ‘노변’과 ‘노통’의 분리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반복건대 그의 변호사 시절만을 다룬다는 선택 자체에는 시비걸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 1981년의 독서회 사건 법정공방 이후, 영화는 1987년 봄으로 점프한다(아마도 생략된 6년 동안 그는 앞서 말한 딜레마와 불온성이라는 의제와 만났을 것이다). 송우석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이끌다가 구속돼 법정에 수의를 입고 나타난다. 그를 변호하러 나선 99명의 변호사들 앞에서 그의 눈은 젖어가고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은 숏에서 영화는 끝난다. 불의의 시대에는 수의를 입은 자만이 정의롭다는 듯, 이 장면은 송우석의 도덕적 승리를 찬미한다.
그런데 왜 1987년인가. 6월 민주항쟁의 해이고 직선제개헌을 쟁취한 승리의 해였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노무현 변호사는 1988년 노무현 의원이 되었다. 단순하게 물어볼 수 있다. 왜 ‘노변’ 이야기의 결말에 1988년의 국회의원 배지가 아니라 1987년의 수의가 필요했을까. 변호사로 시작된 이야기가 피고인으로 끝난다는 구성상의 묘미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장면의 강렬한 파토스를 설명할 수 없다.
오프닝에서 ‘허구’임을 밝힌 자막이 떴지만, 마지막 장면에는 ‘부산 지역 142명의 변호사 중 99명이 변호인으로 출석했다’는 다큐멘터리적 자막이 뜬다. 이 자막은 그것의 내용보다 마지막 장면의 진실성을 특별한 방식으로 강조한다는 점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송우석은 이제 온전한 노무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실제 노무현의 마지막 장면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선택은 앞서 말했듯, 우리의 사적-감정적 연루와 공적-정치적 연루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가 명료하게 떠올렸든 그렇지 않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노무현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진다. 송우석의 마지막 눈물은 노무현의 마지막 눈물과 겹쳐진다. 송우석의 수의(囚衣)는 노무현의 수의(壽衣)다. 이것은 송우석-노무현의 도덕적 승리를 찬미하면서 동시에 그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중의적 결말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하는 효과적인 수사학이지만, 나는 이 수사학에 찬사를 보낼 수 없다. 두 수의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의 연루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것은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송우석의 수의는 도덕적 승리의 훈장이지만, 노무현의 수의는 풀 방법이 보이지 않는 사슬이다. 송우석의 수의는 고통받는 민중과 사악한 권력, 인권과 억압, 정의와 불의, 민주와 반민주의 선명한 대립의 세상, 그러니까 선과 악이 자명한 세상에서, 전자의 편에 섰던 이들의 단문의 웅변이다. 노무현의 수의는 시장이 모든 것의 경계를 지워가는 세상, 한때 그것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싸웠던 대의민주주의가 더이상 ‘우리’의 소망에 응답하지 않는 세상에서 실패와 좌절, 무기력과 수치, 오인과 고립, 자책과 회한,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이 어지럽게 얼룩진 긴 질문지다.
<변호인>은 노무현의 수의를 송우석의 수의로 대체한다. 앞서 말한 블로거가 ‘노무현의 유령’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대체된 수의일 것이다. 이 수의는 말끔하게 살균되고 표백되어 지나치게 깨끗하다. 살균과 표백으로 제거된 것은 우리의 죄의식과 질문들이다. 이 수의가 많은 사람들, 이 영화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울게 했다면, 실은 우리가 살균과 표백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죄의식의 연루와 대답 없는 질문들의 미로를 벗어나고픈 욕망, ‘선한’ 우리의 고단함과 불행이 ‘악한’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믿고 싶은 충동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응시해야 할 것은, 이 한편의 영화 이전에 그 욕망과 충동일 것이다.
송우석은 “국민이 국가입니다”라고 감동적으로 변호했지만, 그 ‘국민’이 노무현을 수의에 감금한 정파의 계승자들을 선택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노무현이라는 거대한 질문은 아직 위인전, 전설의 서사가 되어선 안 된다. 살균되고 표백된 박정희의 서사를 원치 않는다면 그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노무현의 서사에도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평자의 판단이 아니라, 연루자의 판단이다. 나는 <변호인>에 동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