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블랙박스]
[한국영화 블랙박스] 선구안이 중요해
2014-02-24
글 : 정윤철 (영화감독)
시나리오의 약점보다 강점을 살려 흥행한 작품들
<숨바꼭질>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는 나올 수 있어도,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는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중요하단 말이다. 하지만 좋은 시나리오란 어떤 것인가? 처음부터 ‘나 좋은 시나리오요’라고 딱 써 있을까? 읽는 순간 바로 대박의 확신이 올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건축학개론>은 시나리오를 수십번 고치며 몇년간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고, <해운대>는 투자사 내부에서도 절대 만들어선 안 된다고 반대가 극심했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들은 원래 완벽한 시나리오였는데,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 그걸 몰라봤던 것일까? 결론적으로는 아니다. 완벽한 시나리오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영화제작 전에 미리 볼 기회가 있었는데 결코 완벽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모두 어떤 약점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영화를 보았을 때 그것은 과연 사라졌을까? 아니다.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왜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성공했을까? 시나리오가 지닌 강점이 몇배는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해운대>가 ‘1천만’을 찍었을 때, 이 시나리오의 각색을 거절했던 한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작가님이 받았던 시나리오와 많이 달라졌던가요?” 대답은 “아니요”였다. 결국 걱정했던 이들 대부분이 시나리오 단계에서 드라마의 약점만 보고, 이 영화의 강점인 CG 쓰나미와 각종 시각적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없었던 것이다. <헬로우 고스트> 또한 완성도에 아쉬움이 있다고들 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지닌 독창적 아이디어, 즉 강점은 모든 약점을 날려버리고도 남았다. 그 누구도 <과속스캔들> <연가시> <부러진 화살> <숨바꼭질> <7번방의 선물>, 심지어 현재 상영 중인 <수상한 그녀>의 시나리오를 보고 흥행 성공을 확신하진 못했을 것이다. 결국 흥행영화가 될 좋은 시나리오를 고르는 안목은 그것이 지닌 약점보다는 강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약점은 누구에게나 보인다. 하나 강점은 아무나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 모 신규 투자배급사가 예상 못한 흥행작들을 쏟아내며 정상의 자리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곳은 한때 저주받은 시나리오들의 집합소였다. 심지어 메이저에서 투자 못 받으면 마지막에 그곳으로 간다는 농담마저 있었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시나리오의 약점보다는 강점을 보는 선구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LA 다저스 토미 라소다 감독이 박찬호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변화구를 잘 던지려 하지 말고, 너의 강점인 빠른 직구를 더 잘 던지게 노력하라.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