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12월에 대한 기대와 절망 <디셈버>
2014-02-26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December’(12월)를 지나 ‘January’(1월)라는 자막으로 영화가 시작할 때 관객은 이 영화가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을 예감하게 된다. 그런데 1월이 지나 2월이 쌓일 때 영화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을 향해간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수현(김동원)과 그를 짝사랑하는 고3 수험생 세나(신명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세나가 편의점을 방문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편의점에는 손님이 한명도 드나들지 않는다. 편의점 남자 수현은 항상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다. 어떤 달은 생리대를 사고, 어떤 달은 택배를 보내던 세나는 어느 날부터는 필요도 없는 휴대폰 충전을 부탁하며 말을 붙이더니 급기야 패스트푸드를 건넨다. 편의점은 점점 둘만의 공간으로 변하고,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가장 흔하게 널려 있는 공간이자 즉석식품들의 집결지인 편의점은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주목받는 공간이다. 이러한 ‘인스턴트성’에 시급으로 대변되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더해져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는 씁쓸한 배경이 된다. <디셈버>에서 편의점은 고등학생이 대학생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 역시 관계의 지속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지속성’은 둘의 관계에서 빠진 유일한 하나이자 결정적인 하나인데, 그런 의미에서 극중 인용되는 김애란 소설 속 공간인 재수학원과 편의점은 서로 닮았다. 12월은 크리스마스이브와 연말이 끼어 있는 1년 중 결정적인 달이다. 고3 세나에게는 11월 입시를 버티게 해주는 기대감의 달이다. 이런 12월에 대한 기대와 절망을, 달마다 변해가는 남녀의 관계도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형상화시킨다. 12색 색연필을 선물받은 기대감과 설렘으로 1월을 시작하게 하지만, 1년을 다 거친 뒤에는 거기에서 결정적인 한 가지 색깔이 빠져 있음을 비로소 알게 한다.

달별로 진행되는 각 챕터는 하나의 단편영화로 본다 해도 손색없다. 개별적인 이야기가 묶여 있지만 다 읽고 나면 하나로 꿰어지는 단편소설집을 읽은 느낌이다. <디셈버>를 보면서 몇편의 단편으로 주목받았던 김종관 감독의 시작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장면에 감정을 불어넣을 줄 안다는 것은 두 감독이 공유한 장점이다. 비현실적으로 예쁜 화면을 그릴 때조차 어쨌든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쪽이 김종관이라면, 박정훈은 비현실성에 좀더 가까이 다가간 듯 보인다. 극의 분위기나 감정선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흐릿한 화면 톤과 음악에 과도하게 기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지만 작품에 서린 세심함과 실험성이 감독의 ‘앞으로’에 기대를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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